- [성경본문] 출애굽기2:11-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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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위대한 실패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언제고 먼저 하신 일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하여 훈련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훈련의 목적은 자격 구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에 합한 자의 모습이 되도록, 먼저는 성품훈련, 그리고 일에 따른 적합한 기술과 능력을 연마하도록 훈련과정을 겪게 하십니다.
모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장차 200만의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인도할 지도자로 세우는 일이니 그 훈련의 과정은 길고도 철저합니다. 처음부터 모세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관여하십니다. 히브리 산파를 통해 생명을 살린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물에서 건져내어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입양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받는 유아기, 아동의 시절에 그의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 그 우상이 많은 애굽땅에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그리고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알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기 위한 전초과정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40이 되기까지 모세는 많은 것으로 교육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문명적으로 아주 우수한 나라였어요. 역사자료에 의하면 특별히 공학, 수학, 그리고 천문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므로 피라미드를 세우는 것과 건축기술이 대단했고 발달된 천문학을 통해 정교한 달력도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영혼불멸설을 믿고 있어 사람이 죽어도 그 육신이 영원히 보관되도록 미이라로 만드는 기술도 뛰어 났습니다. 이 모든 역사를 이루기 위한 국가 운영의 체제도 뛰어 났습니다. 그 시대 최고의 왕국이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배운 모세입니다.
이제 그의 나이 40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민족을 위하여 무언가 하리라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본문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노역으로 시달리는 동족의 아픔으로 보기 위해 국고성을 짓는 현장에 나갔다가 애굽인에 의해 심하게 맞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보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그 모습을 보니 모세의 마음에는 분이 일었습니다. 참지 못하여 그를 그만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래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자신의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 누구나 다 자신의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우리나라가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의 속국이 되어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독립운동가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은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사람들도 많았겠지요. 오늘 본문 13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함께 읽겠습니다.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동족끼리 싸우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중재를 하려 하자 오히려 저들이 모세에게 대듭니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 당신이 재판관이냐?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고 하느냐?”
모세가 깜짝 놀랐습니다. 애굽인을 죽이기 전 말씀에 보니 좌우를 살펴보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아 그를 죽이고 모래에 묻었는데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이에요. 당연하지요. 모세가 구해 준 사람이 거기 있었쟎아요? 설마 그가 얘기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실이 소문이 되고 애굽왕 바로에게 들어가면 큰일입니다.
그러쟎아도 모세가 친혈육이 아니쟎아요? 입양된 왕자 아니겠습니까? 거기에다 애굽인이 아니고 히브리인 이쟎아요? 거기에다 그 모습마저 준수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모세의 부모가 그 아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했어요. 장차 애굽의 왕이 될 지도 몰라요. 두려움의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애굽왕 바로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모세는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히브리민족을 살리는 일을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음을 당할 처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바로가 모세를 죽이고자 찾았습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미디안 땅은 가나안 땅과 애굽땅의 중간에 있는 지역으로 광야지대입니다.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척박한 땅입니다. 그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며 그곳에 거했을까요? 인생의 어떻게 그렇게 하루 아침에 당시 가장 크고 강력한 왕국의 왕자의 모습으로 있다가 이렇게 도망자가 되고 무명의 양치는 자의 모습으로 내려 앉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는 누가 봐도 불행이요, 인생실패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처럼 자신 만만했던 모세, 누구도 부럽지 않은 권좌, 한 사람의 생명도 거침없이 죽였었던 권력이 주는 자만심, 그러나 그 성급한 성격, 거친 성격, 참지를 못하는 성격, 그 모습으로는 장차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지도자 훈련과 연관하여 성경을 자세히 묵상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것은 성품훈련입니다. 그리고 그 성품훈련은 꼭 고난으로 옵니다. 그 목적은 ‘자기부인’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 내 능력으로는 안돼!” 그 결과는 이러한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너무 자만했어. 교만했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여! 나를 도와 주소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넙니다. 예수님이 먼저 가 있으라고 명하셨죠. 때는 캄캄한 밤이고 돌연 강풍이 불어옵니다.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때에 산위에 올라가서 하루를 마감하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배가 나아가지가 않아요. 그러는 사이 제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호언장담을 하는 베드로가 그럴 수 있어요. “내가 누구냐? 평생을 이 바다에서 놀던 내가 아니냐? 나 만큼 이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나 만큼 노를 잘 젓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이 정도 바람은 이겨나갈 수 있지?”
그래서 버팁니다. 어찌하든지 전진하려고 합니다. 되돌아간다는 것은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마가는 이 상황을 기록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요한은 기록하기를 해질 무렵에 출발한 배는 사경 즉 새벽이 다 되어 가는데도 십리를 가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을 예수님은 다 보고 계셨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바로 와서 도와주시지 아니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경까지 기다리신 이유가 있었어요.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 것이지요. 제자들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돼~! 도무지 나갈 수가 없어~!” 그게 결론입니다.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는 마음” "Total Commitment!"
보십시오. 모세의 성품 중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은 선한 마음이에요. 그러나 지도자로써 아직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의 생각대로입니다. 그래서 동족을 구하기 위해 애굽인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자신의 가진 권위와 기술을 믿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창검에도 당연히 능숙했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셋째, 그 때를 기다리지 않고 급하게 행동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탈출 할 때는 하나님의 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같이 급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결국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다시금 광야로 그를 인도하십니다. 광야는 사람들의 눈에는 몹쓸 곳입니다. 척박하고 인적이 드물고 풍요와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광야는 배움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배움의 학교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모세는 미디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도 그 광야에서, 엘리야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에서, 그리고 세례요한도, 심지어 예수님도 40일간 주야로 금식하시며 사단의 시험을 받으신 곳이 광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광야는 어디입니까? 거친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 광야는 여러분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입니다. 자녀의 일로, 직장과 사업의 일로, 건강의 문제로, 실직을 당하거나, 재정적으로 한 없이 침잠 할 때에, 실패자와 같은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에 회오리 칠 때가 광야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적어도 믿음의 사람은 빨리 알아야 해요. “아~! 훈련과정이 시작되었구나!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기에 나는 부족한 부분이 있구나~!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를 원하시는 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과 같이 이 믿음의 고백이 여러분의 가슴으로부터 터져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도 기도하는 거에요.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모세에게 일어난 이 일은 그러므로 ‘위대한 실패’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위대한 주의 종으로, 위대한 승리를 준비하는 자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광야학교, 그는 거기에서 그 불같은 성격이 변하여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됩니다. 민수기 12;3절 말씀이지요.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자신의 뜻은 죽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능력은 죽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그 때를 하나님의 하실 때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모습,
모세는 비로소 주의 종으로,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성품과 자질로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 삶 가운데 오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겨나가시기 바랍니다. 더욱 더 뜨거운 기도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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