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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06] 평범한 한 날, 일터에 찾아오신 하나님
운영자 2018-02-08 추천 1 댓글 0 조회 650
[성경본문] 출애굽기3:1-12 개역개정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평범한 한 날, 일터에 찾아오신 하나님

 

드디어 역사적인 날이 왔습니다. 출애굽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일로 시작되었습니다. 바야흐로 하나님의 때가 된 것입니다. 이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역사적 상황을 준비하셨습니다. 2장 23절에 있는 말씀처럼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이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탄압하고 또한 모세를 찾아 죽이려고 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 죽었습니다. 왕이 바뀌면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 때까지 기다리게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처럼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고센땅이 싫어집니다. 비옥한 땅, 풍요로운 땅, 다산과 번성이 있었던 땅, 그런데 싫어집니다. 노역과 압제로 인해 이제 싫습니다. 부르짖었다고 했어요. 저들의 마음에는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약속의 땅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출애굽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그 때입니다. 이제 모세가 등장할 때가 된 것입니다. 40년 전 모세가 시도했던 사람의 때가 아닙니다. 그때에 모세는 실패했어요. 40년이 지난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들이 무르익었습니다.

 

셋째, 모세 자신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자신을 믿었던 모세, 자신을 믿었던 예수님의 제자들, 그래서 자신의 힘을 믿고 이루려고 했으나 결과는 그 반대였어요. 애굽 병사를 죽이고 동족을 구했던 모세,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로 인해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그 바람 속에 갈릴리 바다에서 노를 저었던 제자들은 밤새도록 십리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모세는 성품적으로 신앙적으로 급하고 거칠었던 성품이 변하여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의 역사 속에 친히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만들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듬어 가시고, 빚어 가시고,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그 일을 하시지요. 어떤 사람은 주일학교 때부터, 어떤 사람은 중년에, 어떤 사람은 질병을 통한 고통을 통해, 어떤 사람은 철저한 실패를 통해, 어떤 사람은 여러 해 인내의 날들을 겪게 하시므로, 다양한 모습으로 준비시키십니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을 때에 주의 영광을 위해 부르십니다.

 

제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글쓰기도 좋아했습니다. 노래를 좋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자연을 좋아하고 사람의 정이 좋은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고난의 때가 있었습니다. 열 한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서울로 보내어져 큰형님과 형수님 밑에서 자라게 하셨어요. 어린 나이에 새벽 5시에 일어나 가겟집 셔터를 올리고 무거운 음료수 박스를 내놓고 진열을 하고 11시에야 잠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습관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습관과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만들고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고 사람사이의 정을 좋아하는 모습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앙심이 깊어지고 새벽기도회를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목사로 부르시고 일을 맡기시려고 하나씩 둘씩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사용할 일꾼으로 준비시키십니다. 환경과 여건과 상대하는 주변사람들과도 연관을 지어서, 여러분의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시고, 여러분 자신을 만들어 가시고 그리고 때가 되면 부르시고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세의 부르심과 연관하여 꼭 알기를 원하는 영적 렛슨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름의 현장입니다. 모세가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던 날, 그날도 모세는 목축을 치는 목자의 일에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질문합니다. 목자의 일이 하챦은 일입니까? 개중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가축을 치는 일 자체가 천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원래 신분도 목축을 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신분이 왕자에서 목자로 갔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최강의 왕국인 애굽의 왕자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의 삶 이후에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간혹 혹자는 그 위대한 두 신분에 비해서 그 중간의 목자의 삶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심지어는 패배자로 낙인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겁한 도망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아기때부터 그의 생명을 나일강에서 건지신 하나님께서 또다시 그의 생명을 보존시키신 것입니다. 큰일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보존 시키시고 또한 그 일로 준비시키신 것이지요. 성경은 모세의 삶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출 4: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이제 다 죽었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전 삶에 함께 계셨으며, 미디안으로 피신시키셨고, 그곳에서 함께 하셨으며, 그 돌아갈 날을 모세와 함께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목축을 치는 자의 삶을 통해, 모세는 비로소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궁에서만 산 왕자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미디안 광야에서의 삶….., 여러분은 광야에 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두번 이집트와 시내산이 있는 미디안 광야를 가본적이 있습니다. 40도가 넘는 뜨거운 햇볕, 밤이면 급강하하는 기온, 그 넓은 끝없는 광야에 인적은 없고 어디서 불어오는지 뜨거운 바람이 정처 없이 불어오고 또 어디론가 향해서 사라입니다. 양들에게 풀을 먹이는 베드윈들만이 그곳의 유일한 인적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과거 수천년을 거쳐 오늘날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광야는 사막과는 다릅니다. 광야의 흙은 작은 돌들이 섞인 거친 박토입니다. 그 위로 솟아나는 거친 풀들이 있습니다. 밤사이에 급강하안 기온으로 인해 새벽이면 찬 이슬이 안개처럼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이슬을 머금고 이 풀들이 자라납니다. 하루라도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양들이 먹을 풀은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도 짐승도 풀도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광야입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의 40년간을 보냅니다. 그는 여느 평범한 다른 목자들과 같이 양떼를 짐승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야생짐승들과 더불어 싸웠을 것입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40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에 오늘도 이 광야에 계신 분이 있으실 것이라고 여깁니다. 모세를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찌 보면 여러분이 원치 않은 그곳으로 보내셨다고 여길지 몰라요. 비록 여러분의 의지가 필요하긴 했지만, 여러분의 인생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현재의 장소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그 일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그 환경이 여러분을 높은 곳에 올리시는 점핑보드로 만드시는 과정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주 무대로 보내시기 위한 과정이요, 그러기에 지금의 자리는 준비의 자리요, 만들어 가시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적에 모세에게는 광야의 삶이 필요했습니다. 그의 기나긴 광야의 삶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올적에 애굽의 리더가 아니라 광야의 리더가 되는 일에 손색함이 없게 하신 것입니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낯선 광야의 삶을 지도하는 일에, 그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광야에서의 서바이벌의 능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으로 1절로 돌아갑니다. 어느 평범한 날 아침, 목자 모세는 여느날과 다름이 없이 양떼를 이끌고 더 좋은 풀을 먹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일은 변함없이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였어요. 그날은 특별히 풀이 좋은 곳을 찾아서 양무리를 광야 서편에 있는 호렙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여호와의 사자는 불이 붙은 떨기 나무 가까이 있었어요. 그 모습에 놀란 모세가 가까이 가서 보려고 하자 여호와가 그 떨기 나무 가운데서 말씀을 시작합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 날 모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민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그 이방인의 땅에도 하나님은 계셨어요. 그리고 그 특별한 날은 모세에게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일상생활을 행하던 날이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양들을 치는 일에 성실하게 충성하고 있을 때에 주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지 않았나요? 마태는 세리의 일을 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는 그 날도 어부의 모습으로 열심히 고기를 잡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찾으시고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일상생활 중에 만납니다.

아직 어두운 새벽, 변함없이 성경책을 들고 교회로 향하십니까? 그때도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고 쌀을 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십니까? 그때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변함없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출근을 하는 순간에도….. 그리고 열심히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것은 어떤 특별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성실하게 변함없이 하루의 일과를 진행하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변함없는 하루 하루의 삶이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가운데 기다리는 그 밝은 미래의 자락을 밟고 나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해요. 왜냐하면 오늘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며, 영광을 받으시고 계시며, 순간 순간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한날도 주님께 드리십시오. 모세와 같이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십시요. 주께서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자, 영광의 날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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