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30:1-8 개역개정
-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위로하시는 하나님, 응답하시는 하나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를 많이 갖는 것은 축복의 상징입니다. 구약성경 시대에도 이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시편 기자인 솔로몬은 이 복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이어 말씀합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127:4,5)
자녀가 많음이 복인 이유 중에 하나는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한다” 무슨 뜻인가요? 자녀가 많으면 그 자체가 힘이 되고 원수 앞에서도 당당하다는 말이지요.
저도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왜 어렸을 적에는 남자들 사이에 “누가 더 힘이 세냐?” 이게 왜 그렇게 큰 관심사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힘 좀 쓸 것 같으면 “너 쟤 이겨?” 하고 누가 더 쎈 지 보려고 싸움을 붙였어요. 저 한테도 그랬어요. 남들보다 좀 더 키가 커서 그랬나 봐요. 그런데 저의 형제가 남자만 여섯이고 저는 그 중에 막내이니까, 다른 집 애들이 저를 건드리지 못했어요. 저를 건들이면 형들이 가만히 안 있을테니까 미리 생각하고, 계산하고, 아예 처음부터 저를 건드릴 생각을 안하는 거죠.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은 라헬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삼으려고 무려 14년을 라반에게 봉사해야 했어요. 그런데 잘 견뎠죠. 집념이 강하고, 꾸준하고, 한번 마음을 먹으면 종래 이루고야 마는 야곱다운 기질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불쌍한 여인이 있어요. 바로 레아였죠. 라헬의 언니인 레아는 야곱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결혼 첫날밤에 야곱을 속이고 합방을 하게 해서 비록 아내가 되기는 했지만 그 결혼은 야곱이 원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뭐 잘못 한 것 있습니까? 이는 야곱보다 더 꾀가 많은 아비 된 자 라반의 술수였지 않았겠습니까? 레아가 불쌍해요. 그런 말이 있지요. “남자는 인정받기 위해 살고....,” “여자는 사랑받기 위해 산다.”
그런데 야곱이 언제나 라헬만 사랑하니, 여자로써 그 인생이 기구합니다. 야곱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었어요. 그것은 바로 라헬보다 먼저 야곱의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가져 보세요. 못된 남편도 그 때만큼은 아내를 돌보려고 하지요. 맛있는 거 사다주지요. 과일도 잘 생기고 큰 것을 사다주지요. 함께 출산의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자녀를 낳아보세요. 옛날에는 남자를 선호했는데요.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나 귀여워하고 예뻐합니까? 아기 때문에 아내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레아가 야곱의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자식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에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여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봅니까?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레아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사랑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소외된 자의 위로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모르게 아픈 마음으로 속 태우는 자를 우리 주님은 위로해 주십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29장 31절 말씀을 찾아가서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레아가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태의 문을 여셔서 야곱의 장남인 르우벤을 출생케 하십니다. 그 이름이 뜻이 “보라 아들이다!” 예요.
그리고 이어 둘째 아들도 레아를 통해 주십니다. 그 이름이 시므온입니다. 셋째 아들도 라헬이 아닌 레아를 통해 주십니다. 그 이름이 레위입니다. 넷째 아들도 레아를 통해 주십니다. 그 이름이 유다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아주 좋은 이름이지요.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켜 유대인, 유대인 하는데 그 이름의 뜻이 그렇습니다. 왜 유대인인가? 유다가 장자권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유다의 후손이라고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왜 요셉이 아니고 유다가 장자권의 축복을 받았는가? 의아하죠? 이 내용은 다음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유다의 가문을 통해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나 자녀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레아를 위한 하나님의 위로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야곱이 그토록 사랑하는 라헬을 살펴보겠습니다. 라헬이 신체적으로 건강합니다. 왜 자녀를 갖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함께 보았습니다만 양들을 치는 데에도 선수였어요. 그 만큼 건강한 것이지요.
야곱이 고향을 떠나 여러 날을 거쳐 지친 몸으로 하란에 도착해서 목자들과 양이 모여 있는 우물가에서 목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압니까?” 저들이 안다고 그래요. 다시 물었어요. “그가 평안합니까?” 그러자 평안하다고 하면서 저들이 하는 말이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옵니다.” 여자인 라헬이 양을 몰고 온다는 것입니다. 보통 남자들이 하는 일인데 라반의 딸인 라헬이 이 일을 해요. 그리고 정말 라헬이 양떼를 몰고 나타납니다.
아들이 없었던 라반, 그에게 라헬은 이처럼 아들 노릇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그렇게 얼굴도 예쁘고 몸도 건강하고 그러니 얼마나 사랑을 받겠어요? 더욱이 일도 열심히 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여자로써, 아내로써, 당시에 너무나 중요한 역할인 자식을 낳지 못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 어려운 상황을 탈출해 보려고 하는 라헬의 애쓰는 모습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본문에 나옵니다. 어느 날 레아의 장남인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합니다. 이 합환채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약초입니다. ‘두다이’ 라고 불리우는 이 약초는 그 시대에 자녀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되는 약초로 여겨졌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땅에 있습니다.
금번 성지순례하면서 갈멜산을 들를 때에 현지 가이드가 그곳에 자라나고 있는 합환채를 보여 주었습니다. 보는 순간, “이 거 캐 가지고 갈 수 없나?그래서 교회에 필요한 성도에게 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지요. 뿌리 채 채소나 식물은 국내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약초는 르우벤이 구해서 어머니인 레아에게 주었는데 라헬이 알았어요. 그래서 찾아갑니다. 그리고 합환채를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 충분히 이해될 상황이에요. 그런데 레아가 줍니까? 여러분 같으면 주시겠어요? 안 줘요. 그런데 라헬이 조건을 겁니다. 그래서 받아냅니다. 어떤 조건인가요? 30장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그 약초를 내게 주면 대신 남편 야곱을 언니에게 보내어 동침할 수 있게 해 주겠다” 그런 흥정입니다. 그리고 합환채를 얻습니다. 어찌하든지 자녀를 갖고자 하는 라헬의 애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레아는 또 다시 아들을 낳게 됩니다. 다섯째 아들을 낳았어요.
이처럼 레아는 계속해서 자녀를 가지는 동안 라헬은 자녀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 어려움의 날들을 보내야 했을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영적교훈입니다.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받는 동안 레아는 외로웠습니다. 아니 야곱이 그녀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그 마음이 아픈 아내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레아의 간청을 들으시고 자녀를 주셨습니다.
17절 마지막 부분에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레아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낳은지라 라고 했어요. “소원을 들으셨다” 이 시대의 언어로 표현하면 저가 간절히 하나님께 그 소원을 빈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한편 라헬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으면 자녀는 저절로 얻을 줄 알았어요. 그러나 그러지를 못했어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합환채를 가지면 자녀가 생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 합환채를 구하고자 언니와 협상을 해요. 그 협상의 자리에 물건처럼 남편을 겁니다. 그 어투가 어떠합니까? 15절에 표현입니다. “오늘 밤에 내 남편이,” 내 남편이 “오늘 언니와 동침하리라” “내 남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야곱은 오직 자신의 소유였습니다.
라헬의 이 욕심 많고, 질투 많고, 자기중심적인 성품이 들어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30장 1절 말씀입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내가 죽겠노라” 이런 말은 남편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옳은 말투가 아니지요.
그런데도 자녀가 없으니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믿음 없는 행동으로 자신의 여종 빌하를 야곱과 동침하게 합니다. 그래서 단이라는 아들을 얻게 되지만 마음에 양이 차지 않습니다.
레아가 여섯명의 아들을 낳고 또 디나라고 하는 딸을 는 동안 한명의 자녀를 갖지 못하는 라헬은 부끄러운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저가 비로소 겸손해 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내 욕심으로, 시기와 질투로, 그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는지 몰라도,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비로소 겸손한 모습으로 성품이 변한 라헬의 모습이 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라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런 표현입니다. 그때야 태를 여셔서 비로소 요셉을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의 간청을 들으시고 자녀의 축복을 통해 위로하셨습니다.
한편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던 라헬, 시간이 가면서 그 투기하는 성품이 변화되고, 인간의 방법을 끊고,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구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녀의 복을 주사 요셉과 그리고 나중에 베냐민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4월이 시작됩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4월에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더 하루, 하루, 매일, 매일을 기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셔서, 주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받으시는 이 한 달, 복된 4월이 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