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8:6-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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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경고의 나팔이 울려 퍼지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큰 특권 중에 하나인 기도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창조세계를 창조하시고 운영해 나가실 때에 홀로 하시지 아니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함께 하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온 우주만물의 창조 시부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함께 창조하셨으며 물론 지금도 함께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또한 일을 이루어 가심에 있어서 우리의 탄원과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모습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 4절과 5절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드린 것입니다.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성도들의 기도를 모아 담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제목들을 하나님께 올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기도제목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 기도가 담기었던 금향로에 응답을 담아 다시금 세상으로 내려 보내십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주님의 방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 본문에서는 5절에 보니 그 응답은 ‘불’ 이었습니다. “환란과 고통과 핍박 속에서 언제까지 우리가 견뎌야 합니까? 이제 이 악한 자들을 심판하소서~!” 간절히 기도하니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써 불이 떨어지고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습니다. 악한 자들을 향한 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보여줍니까?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올라갑니다. 천사에 의해 하늘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시는 한 방편이니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특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원래 계획하셨던 일을 유보하실 수도, 당기실 수도 있으시고, 때로 취소하시며, 때로 새로운 방법으로 역사하실 수도 있으니 기도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종권한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히스기야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에 그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 친히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이사야가 대언합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사38:1) 청천벽력과 같은 죽음의 선고를 받았어요. 사람의 생명의 수한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였습니다.(사38:2) 히스기야 왕이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는 것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자세의 표현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저가 믿었기에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절망이 닥쳤을 때에 저가 그대로 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드리는 기도가 다 그렇게 사람의 편에서 응답을 받습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십시오. 저가 자신의 신하인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아들을 얻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이 아들이 병에 걸려 죽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의 그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금식하며 애절하게 간절하게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하신 말씀, “그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밧세바을 통해 낳은 첫 아이의 죽음은,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고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윗의 두 가지 죄를 하나님께서는 묵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첫째, 남의 아내를 탐내어 간음한 죄 둘째, 그 아내의 남편인 순전하고 죄 없는 우리아를 간계를 써서 죽인 죄, 하나님은 다윗의 이 두 가지 죄에 대한 대가 지불로써 그 첫아이를 치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와 연관하여 무엇을 보여주십니까? 히스기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야와과 더불어 유다왕 중에 선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열왕기하 18장3절에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또한 열왕기하 18장 5절과 6절이 그가 어떤 자인지를 보여줍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그러니 어떠한 결론이 유출됩니까? 어떤 자가 기도의 응답을 받는 다는 것입니까?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하겠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야5:16) 그렇습니다. 아주 중요한 영적 진리입니다. 의인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질 때에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응답하십니다. 이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우리가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환란과 고통과 핍박 중에 있는 선한 자들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이제 심판이 시작됩니다. 세상에 악한 자들을 향한 심판이에요. 6절에 보니 먼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경고의 나팔소리죠. 여러분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딩동댕~!” 하고 먼저 소리가 나고 나서야 알리는 내용의 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니 “딩동댕~!” 하고 소리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해요? 예, 하던 일 멈추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오늘 엘리베이터 수리관계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엘리베이터 운행이 중단됩니다.” 이거 잘 안 들으면 고생합니다.
롯데 아파트가 40층이 넘어요. 40층에 사시는 분이 이 광고를 부주의해서 안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거 몰라서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온 것이 오전 11시이면 40층을 올라가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그건 얼마나 다리가 튼튼한가에 달려 있겠지요? 저 같으면 올라갑니다. 아주 씩 씩 거리면서 "지가 듣지 못한 것은 생각안하고...."이러 저러한 불평을 쏟아내면서 걸어 올라가겠지요? 올라 가다가 지치면 기어 올라가겠지요?
경고의 나팔이 울려 퍼집니다. 그 다음에 단순히 광고말씀이 아니에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먼저는 자연에 손을 대시며 재앙이 시작됩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우리는 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 있었던 산불의 모습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4월 3일 저녁부터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에서 4월 4일엔 초속 30m에 이르는 태풍급의 강풍이 불었다고 했습니다. 이 바람이 산불의 초진화가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방대한 지역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속수무책인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자연에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여 붙은 불에 강풍만 불게 하시면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얼마나 정부가 막아보려고 애썼습니까? 그러나 이 산불로 인해 2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한 인근에 거주한 4000여명이 대피를 하였으며, 1,757ha에 달하는 막대한 산림과 주택과 시설물 총 916곳이 전소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저들의 어려움을 돕자, 격려하자고 해서 헌금을 하고 바자회를 하고 참여했습니다. 가서 보게되었지요. 산속 깊은 곳에 은퇴하신 목사님이 지은 집이 있었어요.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지었는데, 소나무 숲은 시커먼 숲이 되었어요. 오늘 말씀에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아무리 생기를 자랑하는 이제 갓 피어난 풀도 여지없이 타 버렸다. 하나님의 불 심판 앞에 살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 좋은 소나무 숲이 화염으로 타게 되니 그 주변의 온도가 얼마나 뜨겁겠습니까? 그 온도가 얼마나 뜨거운지 그 집은 타기도 다 탔지만 아예 플라스틱 창틀도 유리창도 밖에 연결된 플라스틱 수도관이 그냥 다 녹아버렸습니다. 그때에 이 목사님은 집에 계셨는데 화재가 있기 2시간 전에,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부니,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리고 나서 2시간 뒤에 그 숲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게 된 것이에요. 참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산불이 멈추고 집에 와보게 되니 완전히 타서 재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지요. 마음 아픈 것은 집에 있었던 개가 까만 숯이 되어 있었어요. 키우던 개를 좀 데리고 가시지....., 왜 안데리고 갔을까요? 그렇게 불이 그곳까지 붙어 오리라 생각을 못한 것이지요. 우리는 잠시 앞을 내다보지 못해요.
그러니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을 통해 말씀이 선포됩니다. 40일 주야로 쏟아질 비로 인해 물로 심판하실 때에도 노아를 통해 알려 주셨어요. 그것이 경고의 나팔이었습니다. “홍수로 세상은 물에 잠길 것이다.” 그로부터 120년 후에야 홍수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믿은 저들만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재창조의 역사에 참여합니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만 세상은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 심판이 어디있어?” 그저 살아가는 일에만 골몰합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몰려오고, 태풍이 불어오고, 가장 가까운 가족이 생명을 잃을 때에야 비로소, “아~! 이게 뭐지? 왜 이런 재난이 하필 나에게 일어나야 하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연적 재앙이 임할때에 우리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고 그러기에 주인이 되시니, 저가 자연을 통해 경고하신다. 마음에 준비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말씀에 귀 기울어야 하고, 주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이 재앙은 먼저 자연을 치시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점차로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고의 심판의 방법입니다. 애굽에서도 마지막에 바로왕의 아들을 칩니다. 그러니 재앙을 바라보면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선한성품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8절과 9절에 보니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는데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는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어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자연의 재앙이 이제는 인간이 만든 문화가 파괴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로마제국, 저들이 지중해의 패권을 잡을 때에 수 많은 배들을 건조했습니다. 해상권을 잡지 않으면 그렇게 제국을 세울 수가 없지요. 또한 정복한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때에 곡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배가 없으면 안되지요. 지중해를 건너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과거의 시점에서 보면 사도요한이 본 환상은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로마는 멸망했어요. 그러나 현재의 시점과 미래의 시점으로 이 말씀을 보면 여전히 남아 있는 심판이 진행 중에 있으며 또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보여주십니다. 천사는 경고의 나팔을 붑니다. 쑤나미로, 태풍으로, 배는 가라앉고, 바닷물속의 생물은 고온 증상에 의한 엘니뇨 현상으로 양식장의 해조류과 물고기가 다 죽습니다.
10절에 보니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이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은 쓴 쑥이라”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큰 별은 큰 인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와 같은 존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한 중앙에서 실력행사를 하던 자가 죽게 될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인 헤롯대왕은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에게 먹혀 죽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행12:23)
과거 독일 나찌즈 당의 히틀러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자살하게 됨으로 그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이 자살을 하거나 재판을 받고 사형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독재를 일삼는 자들의 비참한 결과를 우리가 봅니다. 리비아의 가다피가 그렇고 이라크의 후세인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의 보존자가 되시며 또한 심판주가 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통해 여전히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7절에도 삼분의 일이 타 버리니 2/3가 살아 남습니다. 8절에 보니 바닷물도 2/3는 해를 입지 않습니다. 9절에 보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적으로 세워진 문화는 해를 당하지 아니하고, 여기에서는 바다위의 배 로 표현되었습니다만, 지켜 보존하십니다. 11절도 그렇습니다. 12절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두 가지이죠. 첫째, 의인은 멸망당하지 않는다.
둘째, 하나님은 재앙을 보여주시며 돌아올 자들이 어서 회개하고 돌이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현재 21세기 이 땅에 기독교인구가 전체인구의 1/3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말세에 마지막 날에 1/3을 심판하신다고 하시니, 그러면 2/3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인가? 저는 스스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전도와 선교에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2/3가 구원받는 모습이 되도록 이 전도와 선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교회는, 한국교회는 복음이 없는 지역을 향해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야 하고, 우리는 우리가 사는 현장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모습 되어야 하겠습니다.
질문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구원의 반열에 선 것이 확실합니까? 그럼요. 아멘입니다. 정말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환란과 고난과 핍박속에서도 믿음의 확신으로 이겨나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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