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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1] 최초의 살인사건
운영자 2024-03-12 추천 0 댓글 0 조회 45
[성경본문] 창세기4:1-15 개역개정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짐을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최초의 살인사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우주만물과 지구상의 에덴동산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그 선한 모습들이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호흡으로 생령, 즉 영적인 생명체가 되어 영원히 살 존재였으나, 하나님을 거역한 이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어요. 영원히 살아야 할 존재가 생로병사의 단계를 거치며 결국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영혼은 하나님 없는 어두움 속에서 영원한 고통 속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였고, 그 본성의 선함은 사라지고 두려움과 수치감이 얽히고설킨 죄성이 인간의 성정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죄성(죄악된 성품)은 본성이 되어 마치 DNA, 유전인자처럼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나는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전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성의 기원을 안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

 

이 죄성이 너무나 안타까운 열매로 나타났으니 아담과 하와의 자녀 중에 형이 아우를 죽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가인이 마음에 있었던 죄성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거짓말이었습니다. 이 죄성은 결국 아우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내 자녀 중에 장남이 동생을 죽였다

이 인륜이 파괴되는 모습에 부모는 얼마나 그 마음이 충격을 받고 얼마나 아프고 슬프겠습니까?

 

죄의 결과는 이러한 비참한 결과를 불러옵니다. 인생 그 어누 누구도 이 죄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이후 나타난 인류의 비극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나타난 결과에요. 스스로가 그 죄악의 본성에서 자유함을 가질 수가 없으며 가질려고 하는 마음도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시금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서, 이 낮고 천한 땅 위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게 하도록 친히 십자가의 화목제물이 되어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용서함을 받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죄의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새 생명을 입게 되었어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멘!

 

창세기 4장에 가인의 살인 사건과 연관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의문을 갖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의문을 갖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는데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 답은 이미 말씀 본문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받으실 때에 물질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드리는 자의 마음을(중심) 보시고 삶의 모습을 보시고 나서야 그의 제물도 받으십니다. 본문 말씀 성경 창세기 445절 말씀을 자세히 보시겠습니다. 4절의 후반절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시고...” 5장 전반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아벨과 그 제물 또는 가인과 그 제물 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어요. 아벨의 제물 또는 가인의 제물 이라고 사람과 제물을 분리시키시지 않았습니다. 드리는 사람과 제물을 같이 묶어서 보시는 거에요. 제물을 드리는 자의 인격과 중심과 마음을 보시고 그의 제물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연보를 드리고 헌금할 때에 꼭 기억해야 할 영적 교훈이에요.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중심이 담기지 않고 또한 하나님 앞에 성결하지 못한 삶을 살면서 드리는 자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5:24)"

 

그러면 가인은 무엇이 잘 못 된 것입니까? 그 성품이 잘못되었어요.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기에는 그 마음이 준비가 그리고 삶의 모습이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제물 자체가 잘 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농사한 소출을 드리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낯을 들지 못하다이는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을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모습을 안 보시니까? 왜 안 보실까요? 평소에 선을 행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얼굴 뵙기가 창피했어요. 영어성경은 이 부분을 아주 명료하게 해석했어요. “If you do what is right, will you not be accepted?” 만일 네가 선을 행하였다면 네가 안 받아들여졌겠느냐?” 이 말씀은 네가 선을 행하였다면 너는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죄성으로 인해 죄에 노출된 인간이지만 그러나 죄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양심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런데 그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죄에 굴복했습니다. 8절의 내용이 그것이지요. 형인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 죄에 대하여 7절에 이어 말씀합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그 다음 가인의 죄로 물든 성품을 보는 구절이 또 나옵니다.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요. 그러나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이는 거짓의 영이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우리가 배우는 영적 레슨이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물질로 주님 앞에 드리는 것 좋습니다. 귀하게 쓰이겠지요. 그러나 드리는 자의 언행심사가 주님 앞에 아니면 그 제물은 어떻게 귀하게 쓰일지 몰라도, 정작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불쌍한 존재입니까? 세상 말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이는 성경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돈을 벌을 때에도 옳게 벌어야 합니다. 땀을 흘린 만큼, 씨를 뿌린 만큼, 거두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마음과 자세가 주님 앞에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그 모습을 보시고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더 부어주셔서 3060100배의 결실로 축복하십니다. 이 모습 가지고 수확한 물질을 마음으로 중심으로 정성으로 주님 앞에 드릴 때 주께서 기뻐 받으시고 큰 복을 주십니다.

 

이 모습이 바로 가난하게 홀로 사는 한 여인이 드린 두 렙돈의 헌금입니다(6:37). 그 헌금은 비록 액수는 적으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이 됐습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시장에서 문안하며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워하는 서기관을 삼가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저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라고 했어요. 이들의 연보를 주님께서 받으실까요? 아무리 많이 드려도?.....전혀 아닌 것이지요.

 

바라옵기는 오늘의 우리들도 진정 주님이 기뻐 받으실 수 있는 연보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벨과 같이 선한 마음, 옳은 삶으로 살면서, 주님 앞에 드릴때에, 주께서 기뻐 받으시고 흠향하시고 큰 복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번째로 의문을 갖는 것은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은 어떻게 아내를 구할 수 있었습니까? 아담의 후손들 이외에도 다른 부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더불어 가인은 죄의 심판을 받고 유리하는 자가 되었는데요, 그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14절 말씀이지요.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카인이 두려워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나은 자녀가 성경에는 카인과 아벨과 셋이 나오는데 그 이외에 또 다른 자녀들이 있었단 말입니까?

 

이 문제로 인해서 성경의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 분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은 이것을 근거로 하여 아담과 하와를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 기록한 성경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는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3명의 아들 이외에도 다른 아들과 딸들이 있었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53-5절에는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모두 몇 명의 자녀를 두었는지 성경에는 적혀져 있지 않지만,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다는 점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생각해보면 많은 자녀들을 낳았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는 그가 쓴 책에서, 오래전부터 유대인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아담의 자손은 33명의 아들과 23명의 딸들이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아담이 130세 때 셋을 낳았는데 하와가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창세기 4:25)고 생각한 것으로 보아, 셋이 태어나기 얼마 전에 아벨이 죽었다고 가정한다면, 가인의 출생과 아벨의 죽음 사이에는 100년 이상의 시간적 간격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아담의 후손들이 이미 많이 퍼져있었을 것입니다.

 

정리는 해 보면 이렇습니다. 추론입니다만 아담의 나이 20세에 하와는 카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00세에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담의 나이 120세 즈음에 카인이 아벨을 죽였어요. 그리고 아담의 나이 130세에 셋을 낳았습니다.

 

그러면 카인과 아벨 사이 100년간 아담과 하와는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이들을 카인이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죄인 카인입니다.

 

성도 여러분! 죄를 범한 자는 언제고 두려움이 그 마음에서 가시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죄를 범하고 살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질문은 왜 다른 자녀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성경에 다 기록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카인과 아벨, 그리고 이후에 셋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셋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셋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합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진리로 믿고 기도하는자, 하나님께서 복으로 함께 하십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복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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