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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2] 생육하고 번성하는 인류
운영자 2024-03-13 추천 0 댓글 0 조회 55
[성경본문] 창세기5:1-8 개역개정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생육하고 번성하는 인류

 

 

하나님께서 온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인류는 급속도로 그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창세기 5장은 노아의 홍수 전 열 명의 족장들의 이름들을 소개하면서 인구 증가가 급속히 이루어져 나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사람들이 장수하였어요. 그러기에 많은 자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100년 남짓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면 그 인간의 수명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고 그이 아들 셋은 912세를 향수하고 죽었으며 그의 아들 에노스는 905세를 살았으며 마할랄렐은 895세를 살았고 야렛은 962세를, 에녹은 365세를 살았는데, 그가 수명이 짧았던 이유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늘로 데려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장수를 하였는데 969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그 이름이 익숙한 노아는 950세에 죽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보통 900살을 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대단하지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오래 사실 수 있으시면 좋겠죠? 그러면 손주는 물론이거니와 증손주, 고손주, 그 다음에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고고손주로 불러야 할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인간이 수명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셈은 600년을 살았고 그의 아들 아르박삿은 438년을 살았고 그의 아들 셀라는 433년을 살았으며 에벨은 464년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평균 400세 이상을 살더니 에벨의 아들 벨렉은 239세로 죽었고 그의 아들 르우는 273년을 살았고 스룩은 230년을 살았는데, 그의 아들 나홀은 139년을 살고 죽었습니다. 이 나홀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낳았는데 그는 175년을 살았고 그의 아들 이삭은 180,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147세를 살았습니다. 모세는 아시는 대로 120년을 살았을 뿐입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인간은 원래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존재였었는데 인간의 범죄와 타락 이후로 유한한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마지막에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의 장수를 보면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에고~! 100년을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900년을 살아? 얼마나 힘들고 지겨울까? 80만 넘어도 온몸이 쑤시고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에 90이 넘으면 치아도 다 빠지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걷기도 힘든데, 900년 동안을 살아야 하다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이 상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늙지 않으면서 젊음을 유지한 채로 천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살아보고 싶지요? , 사망은 분명 죄악의 형벌이니, 영생이 더 축복이요, 성경은 또한 장수를 복이라고 했어요. 그러기에 여러분도 장수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프지 않으시면서 장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백두산(살까지 발로 책하자) 멤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신비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25세 정도까지 성장을 해 놓고서 그 젊음을 단 몇 년도 유지하지 못하고 곧바로 늙어가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인간이 이토록 빨리 늙고 병들어서 죽게 된 것은 앞서 말씀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인간의 원래 모습은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누리고 사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오늘날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들은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타락되고 피폐해진 상태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에 원래 하나님께서 누리게 하고자 하셨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채로 짧은 인생을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그나마 900세를 살던 인간의 수명은 노아 시대의 대홍수를 기점으로 급격히 짦은 수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창조과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발견하게 되었어요. 노아의 대홍수로 인한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창세기 16~8절에 기록되어 있는 궁창(하늘) 위의 물입니다. 창세기 17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궁창 아래의 물은 강과 바다가 되었고 그러면 궁창 위의 물은 어떤 물일까요?

창조 과학자들은 이것은 오늘날 하늘의 구름이나 안개라기 보다는 눈에 뵈지 않으면서 빛을 투과시키는 수증기였을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창조과학자들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하늘 위의 물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고안하신 매우 특별한 옷이었다.

그 첫 번째 역할은 빛을 선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지구에 들어오는 빛의 대부분은 태양으로부터 오는데 인간의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외에도 그보다 강한 자외선, 엑스선(X-ray), 감마선(우주선) 등이 있다.

 

이러한 빛들은 생명체 내의 세포들을 파괴시키는 빛으로서 그중 자외선은 피부노화의 원인이 되며, 결국 사람의 수명을 감소시킨다. 이와 반대로 약한 빛인 적외선, 원적외선,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등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원적외선은 생명체의 활성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채소나 고기 등의 음식물에 원적외선을 쏘이게 되면 싱싱하게 보존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 위의 물(수증기)층이 지구를 감싸고 있었을 때는 강한 빛들은 이 물 분자들에 의해 차단되므로, 지구 표면에는 수증기를 통과하는 약한 빛들 곧 가시광선, 원적외선 등만이 가득하게 된다. , 생명체에 해로운 빛들은 걸러지고, 생명체의 활성을 높여주는 빛들이 충만하였던 환경이 바로 노아홍수 이전의 지구환경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노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으므로, 모든 생명체가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아 때까지의 평균 수명이 900세 이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아홍수로 궁창 위의 물이 40일 주야로 다 쏟아지므로 인간의 건강을 지켜주었던 궁창 위의 물은 없어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참으로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인한 타락은 결국 사람이 영원히 살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어요. 땅도 자연도 저주를 받아서 선한 모습은 일그러지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홍수 이전,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좋았던 환경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피조물의 세계는 탄식 가운데에서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로마서 821절과 22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게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라고 말씀했으며 이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언제 이 회복의 날이 올 것입니까? , 주님께서 다시금 재림하시는 그 날에, 주께서 영광 중에 구름타시고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때 새하늘과 새땅이 시작이 되고 이 선한 창조의 모습은 완전히 회복이 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이사야 11장의 말씀처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이 되고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장수가 아니라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두 번째로 오늘 5장을 통해 배우는 교훈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운명 속에서도 구별되고 성별된 자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 등장하는 선한 인물은 524절에 등장하는 에녹이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데리고 가셨다 라는 말씀은 죽었더라 와는 대조적인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죽어갈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여줍니다. 죄 가운데 있는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가 있다 아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죄인인데 가능한가?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성품 중에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성품의 잔존이 있습니다. 여전히 희미하게 빛이 남아 있는 것은 양심이라고 했어요.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도 양심이 있어서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그 양심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요. 은혜가 먼저인 것입니다.

이 양심은 하나님께서 악한 세상이 더 악하지 않도록 일반은총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인도합니다.

 

본문 24절의 에녹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어요. 동행하였다 원어에 보니 동행하였다 라는 하라크로 쓰이는데 이는 함께 걸었다 또는 따랐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르며 함께 걸었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며 주와 함께 걸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매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3:3)라고 말씀합니다. 즉 두 사람이라도 함께 동행하려면 서로 생각과 뜻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나의 뜻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순종해야 합니다. 이 모습을 히브리서에서는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다라고 결론 짓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세상에 죄악은 관영하고 사방팔방에 악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 땅에 강림하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 그의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힘주시고 능력 주십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습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과 같은 형통함의 역사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모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자의 모습이 되셔서 심령이 잘되고 가정과 자녀가 잘 되고 건강하시고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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