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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4]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의 사람 노아
운영자 2024-03-15 추천 0 댓글 0 조회 56
[성경본문] 창세기6:9-22 개역개정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의 사람 노아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아서 두고, 두고, 오고 오는 세대에, 그 빛의 다함이 없이, 영원토록 그 빛을 발하고 있어요. 이들은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밤이 더 어두워질수록 별빛은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과 같아서, 어두운 세상, 죄 많은 세상, 허탄한 풍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좁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오늘 창세기 6장에 등장하는 노아가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성경본문은 9절에 이 노아를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의 그 모습은 첫째, 의인이요 라고 그를 묘사했어요. 이 의인이라는 말이 구약성경에 오늘 6장에서 처음으로 쓰여 졌는데요, 그가 노아입니다. 에스겔 1414절에서도 노아를 의인으로 히브리서 117절에서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로 그리고 베드로후서 25절에서도 의를 전파하는 노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노아가 의인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그가 의로운 일을 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브라함의 의도 그가 정말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었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 그 믿음 때문에 그러므로 그 말씀에 순종하기에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따라 살았고,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었어요.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11:6~7)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4: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3:9)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비록 의인의 모습은 갖추고 있지는 못하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그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받고 복을 받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믿음은 언제고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도 못한다고 말씀했으며,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의 심령에 이 믿음이 임할 때, 우리의 영혼이 변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합니다. 따라서 그 결과로 우리의 삶도 행동도 새롭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먼저에요? 행함이 먼저입니까? 믿음이 먼저입니까? , 믿음이 먼저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To Be? or To Do? 존재가 먼저냐? 실천이 먼저냐? 나의 심령의 변화가 먼저냐? 아니면 억지로라도 실천을 하면 나의 심령도 변하느냐?

 

우리 기독교 신앙은 믿음이 먼저입니다. 심령이 변화되면 실천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에요.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 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복으로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의 심령에 주의 성령이 내주하시고 역동적으로 역사하면서 능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이 새벽도 이 믿음이 샘솟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에 노아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으나 믿음이 있었기에, 주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난 것이에요.

 

그의 이와 같은 믿음은 의인이 되게 하였고 둘째 그의 이와 같은 믿음 때문에 그를 당대에 완전한 자로 소개하고 있어요.

 

완전하다 이 말은 blameless, 즉 흠이 없다는 표현인데요, 이는 제사에 바치는 짐승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흠 없는 짐승을 제물로 드려야 하겠지요. 그런데 노아, 왜 그가 흠이 없었겠어요. 술에 취했던 노아, 그래서 하체를 노출했던 노아, 인간은 누구나 다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이 없으셔서 완전한 어린양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사하실 수가 있으셨어요.

 

그런데 왜 완전한 자로 말씀하고 있을까요? 바로 앞에 있는 단어를 보셔야 합니다. 당대에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이 말의 뜻은, among the people of his time, 즉 그 뜻이 그 시대의 사람들 중에서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악을 일삼는 그 시대에,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믿지도 않는 사람들 중에,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했던 노아의 그 모습이 완전하였다. 흠이 없었다. 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믿음이 있는 자는 세상을 쫓지 않습니다. 좁은 문을 찾고 좁은 길을 걷습니다. 남은 자의 모습입니다. 바알의 발에 무릎을 꿇지 않고 입을 맞추지 않은 칠천명의 남은자의 모습이에요. 사오십명의 거짓 제사장들과 다른, 한 사람의 참 선지자인 엘리야의 모습이에요. 세상 사람들이 보면 왜 꼭 저렇게 살아야 하나? 꼭 저렇게까지 예수 믿어야 해?” 비난하면서 자신들이 옳은 것처럼, 자신들이 더 행복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모두를 자고 있는 이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도, 새벽이 힘들지 않아요. 왜 그렇습니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행복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기에 힘이 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에 행복합니다. 부를 쌓아두고 누리고 살지 않아도,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심으로 인하여, 천하를 얻은 것 보다 더 행복과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게 믿음 있는 자의 기쁨입니다. 얼굴이 훤해요.

 

선교사들 어떻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랑하는 조국과 가족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고생하는 삶을 사는 것 같은데도, 세상이 주지도 알지도 못하는 평강이 저 선교사님들 마음속에 있습니다. 누구하나 억지로 간 선교사가 없어요. 좋아서 가고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와요. 참 신비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해가 되겠어요.

 

네팔에 처음으로 도착해서 네팔 문화를 배우다 보니 여자들의 신분이 정말 너무 열악했어요. 여자는 남편의 종이에요. 집안일, 밭일, 짐승 풀먹이는 일, 다 여자가 해요. 딸만 나으면 시댁에서 쫓겨나요.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에요. 그러니 여자고아들이 너무 많아요. 왜 그런고 하니 쫓겨나니 과부로 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다시 결혼하려고 하니 자신이 나은 딸들이 걸림돌이 되요. 그래서 고아원으로 보내져요. 그래서 저희도 버림받은 열 다섯명의 여자 아이들을 딸들로 삼아 지난 20여년간 키워왔어요.

 

그래서 그럴까요? 네팔의 여자들의 표정을 보세요. 어두워요. 그늘이 져 있어요. 그런데 제가 네팔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파탄 코이노니아 교회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침 1부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네팔 여자 성도들을 보게 되었는데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랬는데요. 얼굴들이 훤해요. 보통 네팔 여자들의 그 그늘진 모습하고는 너무 달랐어요.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신비한 기쁨이 저들의 심령을 채우고 있는 것이에요. 주의 성령께서 내주하시니 그처럼 얼굴이 환해요. 그 능력으로 살아가니 어려운 세상이 어렵지가 않은거에요. 감사가 있으니 삶이 변해요, 주의 능력으로 살아가니 복된 가정이 되어가는 거에요. 믿는 사람은 달라요.

 

세 번째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였으며 라고 노아를 소개합니다. 동행하다, 하라크 이 뜻은 함께 걸었다 또는 따랐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르며 함께 걸었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며 주와 함께 걸었다

 

우리도 찬송합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아멘!

저와 여러분 모두도 에녹과 같이 노아와 같이 주와 함께 동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노아를 의인으로 만들었으며 믿음이 노아를 당세에 완전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믿음이 노아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만들었어요.

 

제가 어릴 적에 겨울이 되면 논마다 얼음이 얼기 시작했어요. 학교를 가는 길도 이웃 마을 가는 길도 원래는 돌아가야 하는데 얼어붙은 논길로 가면 지름길이 되었어요. 그런데 얼음이 살얼음판이면 짜각 짜각 소리가 났어요. 겁이 나서 살살 걸어야 했어요. 그러다가 얼음이 꺼져서 그 추운 겨울에 발목까지 차가운 물에 젖어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 차갑기가 말도 못했어요. 에이~! 돌아가야 했는데....!!”

 

성도 여러분, 이 얼음판은 세상입니다. 우리는 깨어지기에 십상인 얼음판과 같은 세상에 믿음을 두는 것이 아니에요. 깨어집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믿음이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결코 깨지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실패가 없어요. 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심령이 변합니다. 새로운 삶으로 삽니다. 세상이 주지도 알지도 못하는 신비한 기쁨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이 믿음에 견고히 서서 노아와 같이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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