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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22] 삼손의 출생
운영자 2018.8.23 조회 1186

[성경본문] 사사기13 : 1 - 7 | 개역개정

  •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삼손의 출생

 

사사기 20장 중에서 이제 오늘 우리는 12번째 사사로 등장하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주인공 삼손의 출생을 보게 됩니다.

 

삼손,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인식하기를 힘이 센 장수, 그의 힘의 원천은 깍지 않는 그의 긴 머리인데 데릴라라고 하는 못된 이방 여인에 꼬임에 빠져, 결국 그 비밀을 알려 주니, 저가 잠든 사이에 머리가 깍이고, 힘을 잃어버린 비운의 주인공...., 뭐 이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얘기지요.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인물 삼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생애가 담겨진, 4장에 걸쳐서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를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삼손의 드라마틱한 출생과 삶과 장렬한 전사를 통해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귀한 영적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먼저 그의 출생입니다.

삼손의 부모는 단 지파에 속한 자로서 소라라고 불리우는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소라'(Zorah)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으로서 오늘날 사라‘(Sarah)라고 하는 지역과 동일 시 되는 지역입니다. 소라 땅은 원래 유다 지파에 속한 땅이었으나 사사시대 당시에는 단 지파에 속해 있었습니다(15:33, 19:41).

 

삼손의 지파인 단 지파는 다른 지파와는 달리 기대감이 없었던 지파였습니다. 요셉지파인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지파 또는 유다지파처럼 영향력 있는 모습이 아닐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단 지파에 대해 예언할 때에 그 내용이 창세기49:16-17에 있습니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단 지파에 대해서는 별로 언약 적으로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식과 환경을 가진 단 지파에서도 블레셋의 압제에서 민족을 구원한 훌륭한 사사 삼손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지극히 평범하거나 혹은 무시당할 만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그런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크게 쓰임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출생부터 신비한 하나님의 손길이 임합니다. 2절에 한 부인의 남편인 마노아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의 아내는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알려줍니다. 수태고지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임신하게 될 것이다 그런 말이지요.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오늘날에는 임신 여부를 병원에서 또는 알기 쉽게 검사기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만 이러한 의료적 혜택이 없던 시대에는 태몽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꿈은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 잉태의 주관자가 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천사를 보내어 알려주십니다. 특별한 경우입니다.

 

특별한 인물이 탄생될 때에 이렇게 수태고지를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세 인물이 천사들로부터 수태고지를 받고 출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삭이 그랬고 오늘 성경본문의 삼손이 그랬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아시는 대로 예수님과 또 한 사람 세례 요한이 그 인물입니다.

 

왜 미리 알려 주시는가? 그것도 천사들을 통해......, 그것은 출산 전까지 당부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당부입니다.

 

오늘날은 임신하는 순간부터 소위 태아교육이 시작됩니다. 내가 생명을 잉태하였구나~!” 너무 감사하고 또 여자로써 큰 기쁨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 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 음악도 들려주고 과일을 먹어도 기왕이면 크고 잘 생긴 것으로 골라서 먹습니다. 그렇게 정성으로 태아를 키웁니다. 그런가하면 배를 쓰다듬으며 계속 아빠의 음성, 엄마의 음성을 들려주며 얘기해 줍니다. 그러니 태어나도 바로 그 익숙한 음성에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 천사의 방문과 예고를 통해서 임신하게 될 것을 알게 되니, 무엇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까?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 아니라 임신하기 전부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로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주여, 이제 주의 여종이 생명을 잉태하기 원합니다. 정결한 마음을 주시고, 건강한 몸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귀한 아가를 선물로 이 몸에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미리 기도하면서 준비하면서 생명을 주님께 간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믿음의 사람들로써 기도하시면서 몸도 마음도 정결히 하시면서 주께서 주실 태아를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결혼한 자녀들을 위해 또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왕이면 그렇게 기도하고 있음을 자녀에게 꼭 알리시고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함께 기도하겠지요. 그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기에 이 수태고지는 마노아와 아내에게 큰 기쁨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천사가 등장하여 앞으로 임신할 것을 알려 주었는가? 특별한 인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내용이 4절과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4.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그 오래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태아 교육을 이렇게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태어난 이후로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을 당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이가 태중에 있기 전이나 있은 후나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무슨 말씀입니까? 태중에 아기가 술에 취하지 말도록...그 말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거죠. 그 다음에 보니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며....”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규례로 준 부정한 음식은 굉장히 많습니다. 육지 짐승의 경우 먹을 수 있는 것은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는 소, , 염소, 사슴, 노루 등등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새김질은 해도 굽이 갈라지지 않은 낙타나 토끼는 부정 (unclean) 하여 먹지 못합니다. 굽은 제대로 갈라졌어도 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돼지도 역시 부정하여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수중 생물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 입니다. 강과 바다와 물에서 사는 것 중에서 많은 경우 지느러미로 헤엄을 치고 비늘로 물속에서의 삶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물에서 살면서도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이 사는 것들이 있습니다. 연체류인 오징어나 문어, 갑각류인 게나 가재, 그리고 뱀이나 뱀장어 등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공중의 나는 새의 종류가 또 있습니다. 대부분의 새들을 먹을 수 있으나 가증하게 여겨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제시하셨습니다. ,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매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 (horned owl, 뿔달린 올빼미)와 다호마스 (올빼미 종류)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노자 (가마우지)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 (펠리컨)과 올응 (물수리)와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 (오디새)와 박쥐 등입니다. 금하신 새들의 공통점이라면 다른 동물을 잡아 먹는 육식 조류라는 점입니다. “를 먹거나 만지는 것을 엄히 금하신 하나님이 다른 동물의 피를 흘리며 먹은 육식 조류를 부정하고 가증한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곤충의 경우에는 대부분을 먹지 못하게 하십니다.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다 그러셨습니다. 그래도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부정한 음식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였는지는 아주 다양한 이론이 등장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생태계에 종이 적은 종류는 먹지 말게 하셨다 라는 주장과 또는 모습이 가증하다라는 말을 통해서 해석하기를 보기에 꺼림직한 것들을 삼가라 하는 주장도 있고, 종교 신학적 이유로 부정한 짐승들은 대부분 이방 종교에서 신으로 경배되거나 우상예배에 연계된 동물들이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금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해석하기를 구별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라야 할 것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구별하고 분별하였다. 마치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선악과에 어떤 독성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느냐를 보시겠다는 것이지요. 사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은 없다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보면 거리낌이 없이 먹을 수 있으면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고 지켜야 할 세 가지가 있으니 너무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라는 1) 과유불급과 심리학적으로 보기에도 좋은 것을 먹으면 마음도 즐거우니 2) 기왕이면 보기 좋은 싱싱하고 건강한 과일과 음식을 먹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3) 건강음식입니다. 요즈음은 얼마나 건강 챙깁니까 검증을 통해 증명된 몸에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본문에 보니 삭도를 대지 말라 그랬습니다. 성경에 보면 풍성한 머리카락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징했습니다. 압살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굳이 이렇게 머리카락의 풍성함을 강조했던 것은 왕이 될만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는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풍성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못하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보십시오. 엘리사는 머리카락이 없었던 선지자였으나 얼마나 크게 쓰임받았습니까? 또한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그 시대, 사사시대의 미의 기준이 그랬기 때문에 그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구별된 성별된 모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구별됨입니다. 세상과의 구별됨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연관이 깊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선하지 못한 모습을 육에 속한 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분나는 대로, 기분 가는대로, 그렇게 몸도 마음도 쫓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옷차림을 통해서도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가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말투를 보아서도 알 수 있으며 태도를 보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얼굴 인상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내적인 마음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실인이기에 그렇게 제약을 받고 절제하고 살아라 그 시대에 그랬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였기에 특별히 더 그래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강림 이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강림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 모두가 다 만인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성별된 모습으로, 구별된 모습으로, 그러기에 절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갖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장하실 수 있도록 내어 드리십시오. 그러면 절제가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마음에 기쁨으로 절제를 이루어 갑니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하심으로

주여 나는 이 시대의 나실인입니다. 잘라 버려야 할 세상적인 것들, 육적인 것들, 기분에 좌우되어 빠져드는 것들, 주여, 성령의 검으로 잘라내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으로 평강으로 가득한 종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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