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36:1-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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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 주의 공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10.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악인,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오늘 시편 36편은 먼저 “죄인은 누구인가?” 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 그 반대편에 서 계신 그러면 “선하신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이렇게 두 편을 대조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런 후에 결론은 “의인은 주를 따르며 복된 자의 길을 걷게 하소서” 하고 마무리를 짓습니다.
죄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시인은 제일 먼저 “죄인은 그 마음에 아무도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1절에 보니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서슴없이 죄를 짓겠지요?
성경에 보면 “선한 양심”이 있고 또 “양심에 화인 맞는 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선한 양심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저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행24:16) 그런가하면 반대로 화인 맞는 양심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4장 1절과 2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그러니 양심이 죽었어요.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철면피의 사람이죠. 죄를 상습적으로 범합니다. 왜 그렇다고 했습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단의 조종을 받는 자입니다.
둘째로 그 악인은 왜 악인이 되는가? 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워함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라고 착각합니다. 2절에 있는 말씀이죠. 그러나 세상의 죄도 결국 드러나지 않습니까?
요즈음 뉴스에 보니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본인은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밝혀지고 있으니 본인은 얼마나 놀랬을까요? 이제 그는 미래의 소망이 없습니다. 감옥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던지 아니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못 찾은 사건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둘은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는 본인이 알고 있을 것이고,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다 보고 알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든 지옥에서든 그 죄과를 받게 될 것입니다.
3절에 악인은 속임수를 일삼는다고 했습니다. 지혜롭지도 못하고 더 이상의 선행도 없습니다. 4절에 이 악인의 극한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잠자리에서도 악을 꾀하고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양심의 소리는 눈곱만큼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인생이요, 사단 마귀의 조종 속에 마음을 빼앗긴 인생입니다.
인생이 이렇게까지 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써, 즉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므로 써 이 죄성이 인간이 성품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자신의 자녀들 중에 형 카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너무나 비참한 일을 보게 됩니다.
이 罪性(죄성)의 해결은 오직 한 가지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감옥을 만들고 벌을 가하고 가둔다 하여도 그 본래의 마음이 변화를 받지 않고서는 또 다시 죄가 반복됩니다.
그러니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만 합니다. 이미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 죄악의 괴수인 사단 마귀를 이기시고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이 예수님을 마음에 구주로, 주인으로 모신 자는 선한 양심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심령에 내주하시니 새로운 존재,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5절 이후로 9절까지 이 악인과 대조적인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시편기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5절과 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인자하심, 진실하심, 의로우심과 죄에 대한 심판하심, 그리고 사람도 짐승도 구하시는 사랑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오늘도 그 믿음을 갖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 하고 선한 길을 택하고 견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지키신다. 복된 인생으로 살게 하신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9절에 시인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음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내 생명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고백이죠. 인간의 생명력이 어디에 있는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내가 먹고 사는 음식에 있다고 여깁니다. 적절한 운동과 수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생각합니다. 아니요. “내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우리 삶에 언제고 원동력이 됩니다. 생명력이 됩니다.
불꽃같은 복음전도자의 인생을 살아간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목사님은 좀 쉬면서 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녹슬어서 없어지느니,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나는 닳아서 없어지는 망치가 되지, 녹슨 망치가 되고 싶지 않다" 고 했습니다. 누구나 다 바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들도 끝까지 그렇게 건강하게 쓰임 받다가, 하나님 나라 가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력의 원천은 하나님께서 주심을 잊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이게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증명한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내 힘, 내 능력, 내 노력이 아니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라고 말씀합니다. 누구겠습니까? 이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연결되어지는 고백은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그랬습니다. 주께서 보여주시는 진리 안에서 우리가 진리를 봅니다. 주께서 보여주시는 소망 중에서 우리가 소망을 봅니다. 주께서 보여주시는 지혜안에서 우리가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은총입니다.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봅니다.” 이와 같은 자는 절망이 없습니다. 환란이 와도, 역경이 와도 그 가운데에서 빛을 봅니다. 전화위복의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세상은 아니라고 말하고, 끝났다고 말하는데, 주의 빛 안에 있는 자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를 보통 “영안이 열렸다.” 라고 표현합니다. 영어로 SPIRITUAL INSIGHT 라고 합니다. 혜안이라고도 말하고 통찰력이라고도 말합니다. 세상 말로는 “신의 한수”라고도 합니다. “영안이 열리게 하옵소서!” 제가 늘 주 앞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늘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얽히고, 설킨 가운데에서,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방팔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어디로 출구를 찾아야 할지 몰라 고심할 때에, “주께서 주시는 빛으로 우리가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빛이 중요한 때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중요한 일을 할 때에, 사명 감당할 때에, 여러분의 눈을 비추어, 여러분의 영안을 열어주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으로 알려진 헨리 포드는 어린 시절 급한 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어머니의 병을 돌보아 줄 의사를 부르러 간 일이 있었는데, 그런데 거리가 멀어서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지요. 과거에 시골에서 병원은 멀고 바로 사용할 빠른 교통수단은 없었습니다. 제 어머니도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고 정신을 잃으셨는데 그 시골에서 병원으로 모시고 갈 교통수단이 없는 거에요. 그냥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기지 못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어린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소년 헨리 포드의 영안을 열어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내가 말보다 더 빨리 달리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리라” 하는 생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 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날에 주신 그 영감이 포드를 만들어 갑니다. 그날 그 사건을 계기로 포드는 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 평생소원을 두고 연구한 결과, 휘발유를 태워 엔진을 움직일 수 있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에디슨이 말했지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언뜻 들을 때에 노력 없이 되는 일이 없다. 99%니까, 영감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여러분, 누구나 다 노력을 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노력을 해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1%입니다. 영감이 없는 99%의 노력은 허사인 것입니다. 이 영감을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빛으로 보여주시고 그 빛 가운데에서 믿음의 자녀들이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은총이요, 선물입니다.
이 새벽에 여러분의 마음에 이 구절을 담으시고 또 새기시기 바랍니다.
“주여, 주께서 나의 눈에 빛을 비추사 나의 영안이 열리게 하옵소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소서. 그 신비한 능력으로 역사하사 깜짝 놀랄만한 놀라운 일을 이루게 하소서 그러므로 주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의 이름을 영광을 나타내소서~!”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시는 이 새벽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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