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출애굽기7:1-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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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명을 주시고 이루시는 과정
우리는 출애굽기를 함께 읽어가면서 특별히 ‘사명’이란 주제에 대하여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 전에 우리가 함께 묵상한 창세기는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약한 믿음, 또는 강한 믿음, 그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출애굽기는 모세 한 사람에 집중하면서, 그의 사명, 출애굽을 함에 있어서 지도자로 부르시는 사명, 그 사명에 거절했던 모세, 그러나 마침내 그 사명에 순종하는 모세, 그리고 순종한 이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오늘 7장에 이르기까지 그 사명에 관한 주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옵는 것은 여러분들도 주께서 주시는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받아드리셔서,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동참하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 사명에 대하여 한번 더 그 원리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만세 전에 택함을 받고 태어나는자는, 누구에게나 사명이 주어집니다. 아멘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택한자, 어미 복중에 짓기 전에 미리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갓난 아기시절, 모세를 물에서 건지신 이유가 있고, 사무엘을 늦게 보내셔서 한나가 “아들을 주시면 주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하고 서원하게 하신 이유가 있으며,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막내로 태어나게 하셔서 형들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에도 그 야수의 발톱과 이빨 앞에서 홀로 양들을 치게 하신 이유가 있으며,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목수의 아들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바울은 원래 계획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가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자들을 감옥에 잡아넣는 일을 했었는데......, 뒤 늦게 하나님이 생각을 바꾸어 저에게 사명을 주시기로 하셨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맞습니까? 그런게 어디 있어요?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하나님께서 괜히 저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사명이 있습니다. 각자에게 은사대로 주시는 사명이 있어요. 자각하시고 믿으시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영광이 나타납니다.
둘째,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인가 하면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반드시 부르십니다. 먼저는 구원받도록 부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믿는자에게 은혜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천국백성이 됩니다. 영생을 얻게 되었어요. 천국갑니다.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끝나지 않아요. 천국가기 전까지 삶으로 살아야 해요. 전쟁터 같은 세상, 죄악이 난무하는 세상, 때로는 좋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가 눈물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여전히 살아야 해요. 뭐하고 살아요? 예, 먹고 살아요, 일하고 살아요, 땀 흘리고 씨를 뿌리고 수고하고 거두고......,
그런데 어떤 분들은 사니까 사는 거래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살아 있어요. 심장이 뛰니까, 온몸으로 피가 도니까, 죽지 못해서 그냥 사는 거래요. 그런데 살아 있고 보니 배가 고파요. 그래서 먹을 것을 구하는게 삶이래요. 뭐와 비슷해요? 집에서 키우는 개와 비슷해요. 아니면 자연 속에 삶의 목적 없이 살아가는 동물과 비슷해요. 여러분 키우는 개들 중에 하루는 밥을 먹지 않고 “아! 내가 왜 살고 있는거지?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모습 한 번이나 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삶의 목적의식 없이, 사명없이, 사는 모습이 인생 중에 많이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중에서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 중에서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사명감 없이 사는 모습들이에요. 예수는 믿었는데 그래서 천국은 보장 받았는데 그 다음이 없어요. 그냥 대충 살아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자들, 교회는 다니는데 사명을 깨닫지도 못하고, 사명이 주어졌음에도 순종하지 않아요.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로 말씀하셨어요. 누구에게나 달란트를 주시고 거기에서 이윤을 남기라 명하셨어요. 순종하며 충성하는 자, 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는 자는 땅에 묻어두었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는 정말 비참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그런 분들 안계세요. 인생의 목적이 뚜렷하고, 목표설정이 확실합니다. 그러니 기도제목도 남 달라요. “주여! 내게 주신 사명을 이루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주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옵소서~!” 아멘~! 이런 분들은 나를 넘어서서 “주여, 내 자녀들도 그렇게 사명 깨닫게 하옵시고, 그 꿈을 이루게 하옵소서~!” 뿐만 입니까? 내 구역원과 내 직장 동료들과 섬기는 교회와 나아가서 나라와 민족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이 뭔지를 아는 거에요. 그리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명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셋째, 사명을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능력도 주십니다.
오늘 모세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무명의 한 목자가 세계 최강의 왕국의 왕인 바로왕 앞에 섭니다. 그리고 능력을 행사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에요.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바로왕 앞에서 하나님의 권세를 행사하는 능력으로 부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권세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권세요, 필요할 때에 주시는 권세에요. 오늘날 주의 종들이, 이른바 사명자들이 나에게 신적권세가 부여되었다. 마치 영원히 그 권세가 자기에게 있는 줄 알아요. 자기 것이 되었는줄 안단 말입니다. “신유의 은사가 있다” “예언의 은사가 있다” “귀신 쫓는 은사가 있다.” 왜 없겠어요.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주시지요.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 이신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자신이 뭐 대단해서 받은 것으로 여기고, “봐라, 나는 이 정도다” 교만해 지면, 사람이 올라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 두시면, 이단의 교주가 되고, 거두어 가시면 다시금 겸손해지면 되는데........., 그래도 여전히 은사가 있는 것처럼 행사하려고 한다면, 사이비가 되고, 존경은 잃고, 그 결과는 너무 비참해 지고, 초라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실 때에 능력도 주십니다. 보십시오. 첫 번째, 대결은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보니 애굽의 박사와 술사도 이 일을 해요. 마술로 하는 것이지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당시에 애굽땅에는 요술, 마술이 성행했는데 뱀까지 최면을 걸었다고 합니다. 화를 나게 해서 고개를 들고 바짝 서 있을 때에 최면을 걸어서 그대로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고 그러면 지팡이처럼 보이는 거에요. 최면을 풀면 다시금 본래의 뱀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고 결과는 무엇입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뱀이 된 모세의 지팡이, 그 뱀이 그 애굽왕의 현인들과 마술사들이 만든 ‘지팡이 뱀인지,’ ‘뱀 지팡이’인지를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삼키니라” 11절과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게임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견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사명을 깨닫고 사명에 순종하는 자, 이러한 능력을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로마서의 1장 17절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점 점 더 믿음이 성장해 갑니다. 쓰임받는 그릇, 큰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 사명 감당할 때에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보면 반대편에 있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바로왕과 그의 현인과 술사들, 악한 회입니다. 그 중심에는 적그리스도, 악한 영적 세력입니다. 보십시오. 첫 대결에서 모세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바로왕이 듣지 않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이러한 경우 흔히들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쉽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서 출애굽하게 만드시면 좋을 텐데 왜 계속해서 듣지 않고 거절하고 반대하게 하실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에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셨습니다. 인격체로 만들었어요. 소위 말하는 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어요. 그러니 바로왕이 그렇게 완악하고 강퍅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로봇처럼 조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대로 내 버려두신 것”입니다.
모든 죄악의 출발이 그렇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로마서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4절 이하에 죄를 범하는 악한 세대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을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24절), 26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또한 28절에 말씀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 두사.....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렇게 내버려 두시지 마시지....” 하고 우리는 안타까워 할 수 있어요. 그것이 우리의 마음이에요.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죄로 말미암아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 죄악에 빠져 있는 인생은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그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배후에는 음흉한 사단의 미소가 있습니다.
바로왕은 권력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신적존재로 여기고 있어요. 사람이 세운 신입니다. 그러니 그 권세를 믿고 노예로 삼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쉽게 떠나게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다섯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명자를 도우셔서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모든 장애물을 거두십니다. 이 과정은 더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왜 더디 걸리게 하시는가? 이 내용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왜 우리의 기도의 제목의 응답이 더디 오는가? 이 시간 다시 반복할 시간은 없고요,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2월 16일자, 제목이 “왜 실패하게 하시고 또 반복하시는가?”를 다시 보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사명자를 도우셔서 모든 장애물을 거두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 땅에 이루어가십니다. 바로왕의 마음을 꺽는 데에는 열 번의 재앙이 필요했습니다. 신적인 존재들, 코브라 뱀도 그렇고 나일강도 신의 현현이라 일컫는 바로와의 장자까지 거두어 가십니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꺽어 가시면서......, 애굽왕 바로의 마음에, 또한 모든 애굽인들에게...., “아~! 히브리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더 크고 강하시고 권세가 있으시구나~!” 하는 것을 아주 철저히, 처절하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 다섯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 일에 사명자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행여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세를 80세에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기도하실 수 있음은 여전히 소망이 있다는 싸인입니다. 사명을 자각하시고 그 사명에 순종하시고 충성하셔서 복된 인생, 승리로운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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