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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새벽기도회4] 이후에야 알리라
운영자 2018-03-29 추천 2 댓글 0 조회 666
[성경본문] 요한복음13:12-17 개역개정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이후에야 알리라

 

 

이제 3일이 지나고 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주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주께서는 두고 가는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임박한 주님의 임종을 알지도 못한 채, 서로 누가 크냐?” 다투는 철부지 같은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마지막 영적 교훈을 남기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서로 섬기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므로 주님은 주와 선생이셨으나 종의 모습으로, 종의 형체를 가져,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긴다는 파격적인 귀한 영적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깜짝 놀라 그 일을 막으려던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피차 서로 섬길 때에만이 깊고 진실된 관계형성이 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깊은 가르침을 보면서 우리는 또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같이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하겠습니다.

 

셋째, 본을 보이는 것은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해서 그들의 발을 씻기셨지만 그 일에는 분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섬김으로 서로를 사랑하라 하는 것이었죠. 그러므로 14,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성도 여러분, 본을 보이며 가르치는 방법은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네팔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교육학 책을 늘 보게 됩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영향력을 미치기로 말한다면 대학교 교수보다는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더 앞설 것이다.”

이 말은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 초등학교의 선생님의 역할이라면 대학교 교수님은 가진바 어느 한 특정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또한 그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 흉내를 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가르치는 분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대학교 교수님은 교수님이라고 부릅니다. 대학교 교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지식을 전달하고 제자들을 가이드하는 대학교 교수님의 모습도 있으셨고, 함께 더불어 먹고 지내시므로, 행함으로 본을 보이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모습도 함께 겸비하셨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을 인도했었지만 늘 이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했습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억지로라도 새벽에 깨어 신학생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억지로라도 하하~!

 

어떤 날은 새벽이 되어 일어나기는 했어요. 그런데 계속 졸리니까 침대에 앉아서 눈을 감은채로 잠의 여운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등 뒤에서 제 아내가 발로 확 저를 밀어 버립니다. 뭐해~! 신학생들이 기다릴 텐데...!” 그러는거죠.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어서 기도회에 갑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육신은 언제고 편한 쪽으로 쏠립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도 나오고 또 보세요. 계단이 있는데 걸어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사람이 올라서면, 계단이 스스로가 올라가요. 에스컬레이터죠. 그런 성향이 있음을 알기에 스스로를 자신을 묶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신학교에 신학기가 되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신학생들 앞에서 약속을 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새벽기도회를 하겠습니다.”

 

새벽기도회가 없는 네팔에 새벽기도회의 전통을 세우려면 본을 보이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편하고자 하는 죄성이 있는 저를 묶어 놓습니다. 그러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기도하게 되고 일어 날 때는 에구 힘들어~!” 하면서도,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게 되면 마음에는 언제나 기쁨이 넘칩니다. ~! 오늘도 승리했다!” 그러는 사이 제 자신도 영성관리가 되고, 기도의 응답이 오고, 그리고 신학생들도 이 4년간의 신학교에서 새벽기도회를 통해, 졸업하고 교회 개척을 하게 되면, 성도가 없는 개척지에서 혼자서라도 텅빈 예배당에서 새벽기도회를 하는 주의 군사로 서게 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식을 전하는 것보다 행함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 언제고 더 힘드는구나!” 아직도 제 영성이 부족해서 그렇지요. 그저 저절로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니까 성숙하지 못한 저의 모습인 거지요.

본을 보이는 삶, 이 일이 쉽지 않치만 우리가 예수님을 스승이라 여기고,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이라면 섬김에 있어서도, 기도와 전도에 있어서도, 응당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잘 하고 계시지만, 계속해서 본으로 가르치시는 장로님들, 권사님들, 안수집사님들, 주일학교 선생님들, 또 구역장님들, 교역자님들, 그리고 부모님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 넷째로 오늘의 말씀을 통해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디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이게 참 예수님의 말씀만은 아니더라고요. 저희 부부의 주제가였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을 키우면서 수도 없이 아이들과 전쟁을 하다가..... 결론에 가서 포기하면서 하는 말이 느그들이 부모의 맘을 알어? 니들이 부모가 되어봐야 알지, 그때서야 알지!”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후에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서야 알리라.”

제자들은 왜 예수님이 자신들이 발을 씻기시는 지를 그때에는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후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신 이후를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제자들 중에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써 이스라엘 왕이 되시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키재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아주 세상적인 생각이었어요. 주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가 회복하실 하나님의 나라섬기는 자의 나라라는 것을 알리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진리를 알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몰랐습니다. 왜 그처럼 죽어야 하는지 당황하여 뿔뿔히 흩어져 도망갔을 뿐이에요. 자신들도 그렇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다락방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들에게 평강이 임할 것을 축복하시고, 다시금 사명을 주셨을 때에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변한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함께 전혀 기도에 힘쓸 때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불같은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들은 함께 유대인들 앞에서 함께 서서 복음을 증거했어요. 그리고 함께 협력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협력을 했습니까?

 

2:14,베드로가 (열한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것이니 내 말에 귀를 귀울이라!”

 

그처럼 서로 누가 크냐고 경쟁하던 저들이 비로소 함께 돕고 협력을 하고 함께 주의 사역을 감당하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아멘!

 

그처럼 예수님 곁에서 함께 먹고 배우고 기적을 체험하였을 때에 저들은 잘 알지 못했어요.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러나 예수님은 실망하지 아니했습니다. 끝까지 섬김으로 저들을 사랑하고 이 일에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하는 것을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선을 행하다가 상대가 변하지 않아 낙심하고 있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저는 필리핀에서 그리고 네팔에서 정말 여러 번 경험했어요.

그처럼 사랑으로 돌보고 아껴주며 키워주었던 형제가 획 세상으로 떠나버립니다. 그런가하면 변심으로 하고 돌아서서 대항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진이 빠지고 뚜껑이 열리고 맥이 빠집니다. 그런데 그러기를 몇 번하고 절망가운데 있던 어느 날 주님께서 제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연정아! 네가 그 형제를 섬기는 일로, 나는 이미 영광을 받았느니라. 됐다~!”

리고 이어주시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의 섬김이 어찌 저 형제만을 위한 것이었겠느냐? 부족한 너의 영성을 더 성숙하게 세우기 위함 이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은 제자들이 바로 변하지 않을 것을 아시면서도 묵묵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 제자들 가운데 그를 팔기로 작정한 가룟유다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맡겨준 믿음이 연약한 형제, 자매, 성도들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지금 우리의 섬김과 사랑이 저들에게 깨달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해도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가 속 썩이는 남편일 수도 있습니다. 말도 정말 오부지게 않듣는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내 동기일 수도 있고, 구역원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그 마음가운데 역사하지 않으시면 변화는 어렵습니다.

 

비록 그날이 더디 오고 변화되지 않는다 해서 포기해버리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변화될 날이 올 것이다!”

 

오늘도 섬김으로 선을 행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같이 한 음성으로 따라하시겠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그와 같은 자에게 주님께서는 17절에 이렇게 축복으로 말씀으로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 예수님의 모습이 금번 고난주간에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가슴에 쟁 쟁 울림으로 울려 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모습 따라 사랑으로 섬기되 끝까지 섬기시고 변화의 새날을 맞이하는 모두가 다 되시기를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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