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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새벽기도회6] 예수님의 장사와 의로운 사람 요셉
운영자 2018-03-31 추천 1 댓글 0 조회 830
[성경본문] 누가복음23:50-56 개역개정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예수님의 장사와 의로운 사람 요셉

 

 

누가복음 23장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어찌 보면 가장 슬픈 장입니다. 죄인으로 심판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십자가의 수난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에 의해서 고소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목요일 밤 밤새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난 후에 금요일 새벽에 당시 유대 지방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빌라도는 여러 정황을 조사하던 중에 예수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러므로 4절에 말합니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그런데 빌라도의 이와 같은 변호를 들은 무리가 더욱 광폭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강하게 항변하여 예수를 고소하는 죄목을 말합니다.

그 죄목은 크게 세 가지였는데 첫째는 대중을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키게 했다는 것

둘째는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

셋째는 유대인의 왕의 행세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무리들의 고소내용을 듣던 중 예수가 갈릴리 지방에서 온 사람이란 것을 안 빌라도는 갈릴리 지방 총독인 헤롯에게 보내기로 작정합니다. 왜냐하면 마침 그 헤롯 분봉왕이 예수살렘이 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예수를 만난 헤롯은 처음에는 예수를 만남에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푼다고 하니 그저 호기심에 그 능력을 보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예수가 한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기적을 베풀 리가 만무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고 삶이 어렵고 지치고 힘든, 병자를 살리기 위해서 배고픈 자들을 먹이기 위해서 행하셨지 자신의 능력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재판의 과정동안 예수님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죄함을 말하지 않으세요. 헤롯 앞에서도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예수께서 침묵을 지키신 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셨으니, 죄인이 아니었지만 십자가의 형을 받아야 만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불리한 입장에 있었더라고 항변하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자 죄 없다 항변하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시며 그 처참한 십자가형을 스스로 원하시는 예수님의 이 큰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어떠한 죄를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월절 명절에 한 죄인을 사면하는 일이 있으니 예수를 풀어주려면 되겠다고 맘을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와는 대조적으로 실제로 로마제국에 대하여 백성들을 선동하며 반란죄를 짓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바라바를 등장시켰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백성들이 바라바보다는 예수님을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가 아닌 바라바를 살려달라고 바라바! 바라바! 하고 소리치며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죄값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습니다. 당황한 빌라도는 22절에 무리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러나 사람들은 더욱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이 거센 백성들의 요청에 빌라도는 그만 재판관으로써의 정의를 지켜야 할 본분을 잃어버렸어요. 자신의 뜻을 굴복하고 저희의 구하는 바를 만족시켜주었습니다.

25절 후반부에 보니 기록하기를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정의를 지켜야 할 빌라도 재판관은 그저 백성들의 인기에 영합했습니다. 양심을 저버렸어요. 24절에 보니 빌라도는 저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판결합니다. 무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그 이유로 오고 오는 세대는 그 이름을 잘못된 재판관으로서 예수를 죽도록 만든 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을 통해 모든 기독교인은 외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고....” 라는 그 신앙고백 속에서 그 이름을 영원히 지울 수 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영원히 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정의롭게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목사의 모습으로, 선교사는 선교사의 모습으로, 장로는 장로의 모습으로, 위정자는 위정자의 모습으로......., 양심에 꺼리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또는 저들이 두려워서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는 결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예수님의 수난과 연관하여 빌라도와는 아주 대족적인 두 번째로 인물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는 아리마대 지방 사람인 요셉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52절에 보니 그는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인가 51절에 보니,저희와 결의와 행사에 가타하지 아니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50절과 51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

공회는 유대의 최고 사법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그런데 그 높은 관리들 중에 유독 이 요셉이라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결국 이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받게 되었어요. 세마포로 예수의 주검을 싸았고, 공들여 판 바위 무덤 속에 넣고, 큰 돌을 굴려, 그 입구를 막았습니다.

 

이 아리마다 사람 요셉은 마태, 마가, 누가와 요한복음, 4복음서 모두에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예수의 수난과 연관하여 그의 이름을 빼 놓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장사와 연관하여 아주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50절에 설명한 대로 그는 존귀한 공회원이요, 선하고 의로운 자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자였어요. 저는 이와같은 관원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믿을만한 정치적 지도자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얼마나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권력남용, 물욕, 성추행, 권모술수, 꼼수, 갑질...., 이러한 치부들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자라나는 학생들은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없습니다.

 

학생들의 5대 미래 선호직업을 살펴보니 초등학교 학생들은 1위가 교사, 2, 운동선수, 3, 의사, 4, 요리사, 5, 경찰, 그리고 6위에 가서 판검사가 나옵니다. 중학생은 교사, 경찰, 의사, 운동선수, 군인, 요리사, 생명/자연과학자, 정보시스템/보안전문가, 가수, 그리고 10위에 가서 공무원이 나옵니다. 고등학생들을 조사해보니 교사, 간호사, 생명/자연과학자, 경찰, 군인, 정보시스템 및 보안전문가, 요리사, 의사, 기계공학기술자 및 연구원, 승무원 순이었습니다. 과거의 국회의원이니, 대통령이니, 여하튼 정치인, 선호직업 10위권에 들지를 못합니다. 이러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국민을 사랑하고 민족의 미래를 열어가는 정치인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일이 안보이던 구한말 그 소용돌이 치던 정세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던 민족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서재필, 윤치호, 안창호, 이상재, 이승만, 김구, 김규식, 조만식 장로님 같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기도하며 이 대한민국을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지도자들이 우리 자녀들 가운데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리마대 요셉에 대하여 기록한 마태는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고 묘사를 했습니다. 재물이 많았던 부자로 기록하였어요. 요한은 그를 소개하기를 본디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예수의 제자임을 감춘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감추어진 예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면 그는 유대의 관원이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요, 그러나 관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죽이려 하는 유대 관원들 앞에서, 내놓고 예수를 따를 수는 없는, 그런 위치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자 더 이상 자신의 예수를 향한 신앙을 감추기를 포기했어요. 그리고 당당히 등장합니다. 그것도 예수를 죄인으로 인정하고 십자가에 달리도록 내어준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는 빌라도 총독에게 나아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였어요. 그처럼 극악무도한 죄인만이 달리는 십자가 처형으로 죽은자를 달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의 위엄을 낮추는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그 일에 나섭니다.

같은 내용을 담은 마가복음에서 마가는 기록하기를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돌히 라는 이 말은 영어표현으로는 boldly 라고 번역되었는데 이는 용감하게 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주 정성이 들어간 훌륭한 돌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안장합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신분 때문에 예수를 따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면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신앙을 감춘 것이겠지요. 자신의 안전을 염려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직분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에서 우리는 여전히 믿음이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야 예수 믿는 다는 것이 뭐 숨길 일도 아니겠으나 때때로 세상 속에 거하다 보면,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직장과 또는 믿지 아니하는 직장의 상관 앞에서 적극적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인간이기에 믿음에 연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자라면 반드시 드러나야 합니다. 은연중에라도 들어나야 해요.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두어야 마땅하지 등경 아래에 두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특별히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자리에서 우리가 예수 믿는 존재로 등장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곳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직장일수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절을 하는 장례식장에서 절을 하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믿음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경우에라도 우리는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힘과 용기를 주시고 복을 내리십니다.

 

마태복음 1032,33절에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오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마침내 그 중요한 때에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고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의 주검을 달라고 용감히 요청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작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고백하였던 베드로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베드로뿐이겠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죄인으로 잡혀 가는 모습에 놀라고 겁이나서 줄행랑을 쳤던 다른 제자들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에 비하여 마침내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고 예수의 주검을 달라고 용감히 요청하고 자신의 무덤에 안치하므로 자신이 마련한 그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일에 한 역할을 했던 그의 이름은 오늘도 이 성경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록되어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 가운데 그 빈 무덤이라고 하는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곳이 진짜 그 무덤인지 아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러가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형태의 모습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었겠지요.

 

바위가 깊이 파여 있고 견고한 원형의 돌문이 있고.... 그 안에 무덤에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가 이틀 동안 누워 있었던 그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덤을 마련한 아리마대 요셉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어떠한 연약한 모습으로 믿는이의 모습을 보이고 행했는지는 몰라도

또는 어쩌면 강한 믿는 이의 모습을 가졌었는지는 몰라도, 정작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세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넓은길과 넓은 문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 원하시면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고 말세가 되어 예수 믿는 자들을 향하여 박해와 핍박이 온다 해도 끝까지 믿음을 드러내고, 그 귀한 믿음을 지키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이 시간으로 우리는 금년도 고난주간 다니엘 특별새벽기도회를 마칩니다. 이 한 주간 새벽제단을 쌓으시면서 우리 모두 예수님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죽음을 한 주간 앞두고 행하신 그의 사랑 많으신 모습을 말씀으로 들으며 또 성경을 찾아가며 묵상했습니다. 저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을 깊이 묵상할 때에는 감동이 되어 눈물이 흘렀습니다.

 

또한 그 어려운 십자가의 죽음을 코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기 까지 기도하시던 예수님, 그러나 그를 죽기까지 따른다던 제자들은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예수님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예수님의 음성이 생각나서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고 자신이 미워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는 베드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안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그 눈물이 내 눈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이후에 갈릴리 바다에 제자들을 친히 찾아오셔서 조반을 손수 마련하시고 실의에 잠겨 있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다시금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회복시키시므로 종래 초대교회의 큰 일꾼으로 세우시는 그 사랑 많으신 모습에 감격이 되어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밤에 우리가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서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다 받아 주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연약하면 연약한 대로 죄인이면 죄인의 모습 그대로 다 받으시고 안아주십니다. 그러시기에 죄인 아니신 그 분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 이제 다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다시 한번 이 부족한 나를 강하게 세워주시옵소서,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위하여, 주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겠습니다.

주께서 주신 은사를 십분 발휘하며 또한 주신 직분을 가지고 주의 몸 된 교회를 더욱 잘 섬기겠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제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교우를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다짐과 약속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찬송을 부르고 기도로 나아가시겠습니다.

찬송: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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