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출애굽기20:7-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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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3계명과 4계명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입니다. 이어 말씀하시기를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죄 다” 그런 말씀이지요.
“망령되다”란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벼이 여겨 함부로 들먹이지 말라” 그런 뜻이에요. 여기에서 하나님이란 이름은 “야웨”라고 표현되는 이름인데요. 그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쓰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하늘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말은 삼국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지요. 동탁의 양아들인 여포가 전쟁에서 주도인 서주를 잃고 분개하여 남아 있는 군사들 앞에서 다시금 서주를 찾겠다는 맹세를 하면서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망령되이” 라는 반대말은 “존귀히”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계명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였으면 반드시 지켜야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함을 받는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런 말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축복을 할 때에 사용되어야 할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좋겠는데 “하나님이 너를 가만두나 봐라”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에이~! 이 천벌을 받을 놈아~!” 하늘의 벌이죠. 저주입니다. 상대방이 정말 아주 못된 짓을 할 때에 화가 나서 외치는 말입니다만...., 서양에서는 비슷한 말로 Goddam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안좋은 말입니다. 이렇게 누구를 원망하고 저주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쓰면 안됩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이 또한 우회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이 아닌 낮임을 받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믿은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뭐가 달라도 다를 거야~!” 그런 기대가 있어요. 그런데 하는 짓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이 소인배다, 밴댕이 소갈딱지다 하면, 여러분들이야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 사람만 아니라 그가 믿는 하나님이 같이 낮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믿는 사람다워야 한다” 는 뜻으로 제3계명을 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 망령되이 일컫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히 여겨 그 이름이 높임을 받는 일에 쓰임 받으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제4계명은 “안식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또 지키고 있는 계명입니다. 이 안식일이 오늘날은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9절에 보니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이레째 날은 쉬라 그런 말씀인데요.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그 다음날은 안식하신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엿새 동안도 힘써 일하지 않고 또 주일이라고 쉰다? 그러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 못된 모습이에요.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안식의 기쁨도 회복도 주어지고 하나님의 주시는 복도 있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제 아들이 어릴 적 중학생 시절로 기억을 합니다. 학교에서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태평해요. 공부를 안해요. 제 맘속으로 생각해요. 저렇게 시험공부도 안하고서 어떻게 좋은 성적이 나오겠나~! 염려가 되요. 그렇다고 사춘기가 시작되었는데 “왜 공부안하냐~?”고 다그칠 수 도 없고 해서 가만히 두고 보는데요. 저녁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떡하니 밥상에 앉아서 밥은 맛있게도 잘 넘어가요. 참~! 제 속이 부글부글 거리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해요. 그런데 그렇게 공부 안하면서 시험이 내일로 다가왔어요. 그 날 저녁에 밥을 먹는데 아들이 말해요. “오늘은 일찍 자야 해요. 선생님이 그러는데 시험 전날은 잠을 충분히 자둬야 뇌가 쉴 수 있어서 기억력이 더 좋아진데요. 그러니까 오늘은 밥 먹고나서 바로 일찍 자야 되요.” 참다 참다 못한 제가 드디어 터졌어요.
“야 임마, 뭐 머리에 집어넣은 것이 있어야 기억이 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냐~! 아이고~! 정말~! 속 터져요 속 터져~!”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그리고 주일에 안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이지요. 주중에도 쉴 거 다 쉬고, 놀거 다 놀고, 잘 거 다 자고 그리고 주일에는 안식일이라고, 교회 간다고 1부 예배 휙~! 마치고....안 드리는 것 보다 백번 낫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또 쉬고 자고 놀고....., 그러면 안 되겠습니다. 주일에 영업하는 분들이 그런 모습이에요. 그러나 십계명대로 문 닫는다. 대신 평일에 두배 이상 일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갑절로 더 복을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누가 쉬는가? 그 범위가 있어요. 함께 읽겠습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자신과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가축이나 집에 계신 손님....., 그러니까 생명이 있는 그 모든 피조물이 일을 멈추고 쉬라 그런 말씀이에요.
이 말씀은 “안식일은 누구에게나 선물이다” 라는 뜻인데요. 일꾼들에게도, 일하는 가축들에게도 엿새 동안 일을 시켰으면 이 한날은 쉬게 해줘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야 원기가 회복이 되고 또 새로운 한 주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안식일을 보게 되었어요. 거리가 한산해요. 차도 안다녀요. 정말 쉼이 있어요. 집안에서 친가족이 모여 안식을 지키는 거에요. “야~! 대단하다~! 역쉬~! 유대인이네~!” 감동이 되었어요. 그런데 궁금했어요. 호텔에서는 어떻게 하나? 아침식사는 주나? 서빙은 누가하나? 그런데 식당에 내려오니 다른 날과 다를 바가 없어요. 열심히 일하면서 웨이터가 서빙을 해요. 그래서 궁금해서 물었어요. “오늘이 안식일인데 왜 일 하냐고”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나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팔레스틴 사람입니다.” 그러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어요. “그러면 이 호텔 주인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유대인이 주인이래요. “아하~! 안식일을 지키기는 지켜야 하는데 호텔은 닫을 수가 없고 돈은 더 벌고 싶고....그러니 자신은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하고....., 그러니 종업원은 팔레스틴 사람을 써서 안식일에도 일을 시키는구나~!”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가축이나 그 누구도 쉬라.”
옛날 전기가 없을 때에는 탄광에서 석탄을 캐낼 때 흔히 노새를 사용하였습니다. 노새가 흔한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꼭 하루씩은 햇빛 나는 바깥에 매어두고 쉬게 하였습니다. 만일 그렇게 안하면 노새는 어두운 곳에서만 있어서 눈이 멀어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동물들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러니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 소를 부리고 나귀를 부리고 말을 사용한다면 이것도 잘못된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이 날이 구별된 날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날들과는 달리, 안식일 전날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이틀 분을 주셨어요. 안식일 당일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거 먹을 것을 주으러 다니느라 바쁘게 땀 흘리며 힘쓰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과거 구 쏘련에서 공산 혁명을 성공시킨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생산량을 높이고자 기독교 문화의 산물인 주일 휴무를 깨뜨리고 10일 동안 일한 후에 쉬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엉망이었어요. 예상했던 결과와는 달리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이 속출하는 바람에 시행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주일 휴무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우리 인간을 잘 아시지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회복이 되는지, 그래서 주어진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래서 ‘행복지침’으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든 날이 하나님의 날인 줄로 믿습니다.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인 것은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드셨기 때문이지요. 어느 한 날도 주님의 날이 아닌 날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이지요. 다른 날에는 복되다고 하지 않으셨는데 일곱째 날은 복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거룩”이란 성별하였다 그 말입니다. 즉, 따로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7일은 나머지 6일과는 다른 특별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굳이 일곱째 날을 구별하시고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곱째 날이 다른 날과 다른 이유는 이 일곱째 날은 모든 창조를 마치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과 별과 달과 육지와 바다와 그 안에 거하는 식물과 짐승과 사람에 이르기까지 정말 위대한 창조를 이루셨어요. 그리고 그 모든 우주만물 삼라만상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근본정신인 것입니다. “그 위대하고 아름다운 창조를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연도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능을 찬미합니다. 하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도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합니다. 그러기 위한 날이 일곱째 날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성일로 지키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으시고 복된 인생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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