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6:12-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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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너희도 이와 같이 기도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9년 열두 달 중에, 두 번째 달, 2월의 첫날입니다. 이 한 달도 우리는 기도로 시작을 하고, 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니, 이 한 달도 복된 달, 승리하는 한 달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날에 우리가 마음에 담고자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제목은 “너희도 이와 같이 기도하라”입니다.
이 땅의 사역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그의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며, 사도라고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제자와 사도는 같은 직분이 아닙니다. 제자는 땅 위에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그분으로 배우기를 자처했던 사람들이라면, 사도는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으로부터 부활 선포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승천이후 초대교회를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면에서 사도바울은 제자는 아니었지만 사도였어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그로부터 배운 바는 없지만, 특별히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사도로 부름 받은 자였습니다.
오늘 성경 누가복음 6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장차 사도가 될 후보생들을 세워야 할 제자들을 선발하는 일로 밤새도록 기도하십니다. 장차 주의 몸 된 교회를 출범시키는 일을 주도할 사람들을 택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12절,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신앙생활의 기준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이를 성화구원이라고 하지요. 점차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평생을 거쳐 이루어져 갑니다.
우리가 닮아가야 할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중요한 모습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요즈음에는 그 모습이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지만, 한국교회가 한참 부흥의 불길로 타오를 때에, 성도들은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기도하고자 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하곤 했었습니다. 저도 선교사로 나가기 전, 우리교회 청년들과 함께 주로 안양 수리산 골짜기에 있는 기도원을 찾았고, 말씀집회가 마치고나면 기도원 건물 밖, 산기슭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에 매진하곤 했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도 그처럼 밤새 기도하셨다면, 우리와 같은 믿음에 연약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그리고 자주,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그 분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온갖 질병을 물리쳐 병자들을 고치시고, 심지어 이미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사랑하는 친구 나자로를 죽음에서 살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았어요. 그런가하면 파도로 요동치는 갈릴리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 명령하실 때에, 놀랍게도 자연도 주님 앞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에서 당황해하는 주인의 모습을 보시고, 물로 포도주로 만드시는 모습과, 주의 말씀을 듣느라 시간이 가고 또 가서 사흘이 되도록 듣다보니 먹을 것이 없는 배고픈 무리,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보리떡과 물고기로 먹이시데 원 없이 먹게 하시는 엄청난 역사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떻게 그런 놀라운 기적들이 벌어 질 수 있을까?
그러한 제자들은 언제 부터인가 보기 시작합니다. 제자들과 떨어져서 홀로 시간을 보내곤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이었어요.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잠에 들어야 할 시간에 예수님은 조용히 사라지셨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어느새 예수님은 저들의 곁에 안 계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예~! 하루를 시작하시기 전, 그분은 한적한 곳을 찾으시고, 그곳에 머물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기 때문 이었습니다.
혹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으셨나요? 아침에 눈을 떠 보면, 곁에 어머니가 없는 거에요. 부엌에 밥하러 가셨냐구요? 아니 그 전에 새벽에 슬그머니 자리를 뜨시는 어머니,
저는 어릴 적에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어머니의 팔이 저의 베개가 되었었습니다. 분명히 같이 잤는데, 이른 아침 눈을 뜨게 되면 어머니는 안 계신 거예요. 새벽기도회에 가신 거지요.
이후 어머니가 질병으로 인해 육신적으로 어려우실 때에는 새벽기도회를 못가시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 곁에서 엎드려 기도하시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열 한살에 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오늘 이 아침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이제 일어나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궁금해 할거에요. “엄마가 어디 갔지? 아빠가 어디 가셨지?” 어디 갔긴? 월초 새벽기도에 가셨지~!“
이 모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이와 같은 새벽 기도의 모습은 장차 자녀의 신앙여정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칩니다. 저의 어릴 적 모친의 기도 모습은, 지금도 제 신앙 여정에 본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기도합니다.
제자들이 바로 그런 것이었어요. 예수님의 수 많은 기적을 곁에서 보고 놀라워하면서, 도대체 어디에서 그 능력이 나오는가?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의 일과 중에 함께 하시던 예수님께서, 새벽에, 여전히 어두운 미명에 사라지시고, 자신들은 여전히 자고 있을 때에 사라지시는 예수님......, “기도하시려고 일찍 일어나시는 구나~!” “그 능력이 기도에서 나오는구나!” 그 모습을 보고 깨달은 제자들이 기도를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요청했어요. 누가복음 11장 1절을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주님과 같이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에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 가운데 임하는 통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 담대해 집니다. 평소에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일들도 기도하면 할 수 있는 능력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저는 한국목회로 부름을 받았을 때에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인생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중에 예기치 않은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홍수로 인해 거반 물에 잠긴 집에 보트를 타고 가서 두 살난 어린 아기인 왕규를 구해낸 적이 있었습니다.
풍토병으로 완전히 늘어져 버린 아내를 업고 병원의 문을 두드리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공산당 추종청년들이 던진 흙벽돌로 인해 저의 짚차의 유리창이 깨어져 박살이 나고 유리 파편이 저와 아내의 머리를 때렸던 일도 있었어요. 이 일로 아내는 트라우마가 생겨 6개월 동안 아침이면 식도가 조여져서 물을 삼키기조차 어렵고 힘들었던 때도 있었어요. 크고 작은 어려운 일이 반복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60세면 충분하다. 선교사역을 접고 고국에 돌아가,강원도 속초에 거처를 정하고, 산은 높고, 넓은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선교학 책을 쓰고, 가끔 선교사 훈련원에서 가서 선교사 후보생들을 만나고, 조언을 주고......, 이렇게 살고 싶은 생각이 자주 마음에 있었습니다. 쉬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회를 하라고 하시니까 목회의 길이 어떤 길입니까? 잠시도 여유가 있나요? 목회는 양들을 돌보고, 사랑으로 섬기고, 새로 탄생하는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 일부터, 결혼하여 새가정을 이루는 자들을 축복하고, 생업의 현장에서 수고하는 성도들의 아픔과 기쁨과 위기와 기회를 나의 일로 알아 기도로 도우며,
먼저 세상을 떠나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환송하는 일까지 그야말로 쉴 틈이 없이 반복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인생길입니다. 뿐만 인가요? 사이, 사이 말씀을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하고,
그러므로 “나는 목회할 수 없다”가 결론이었습니다. 그 길은 도무지 쉴 틈이 없는 인생이다. 젊어서는 좋겠지만, 나이가 지긋해서도 그렇게 쫓기듯이 살며, 인생을 마감할 수 없다. 나도 내 인생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성령님께서는 저에게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포기한 저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열정을 주시는 거예요. “너는 할 수 있어, 능히 감당할 수 있어, 네가 하니? 내가 한다. 그러니 들어가라.” 그런데 와서 보니 정말 상상했던 대로에요. 개인 시간은 거의 없어요. 매번 말씀준비는 부담스럽습니다. 지난 3년간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새벽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벽에 기도할 때마다, 신비한 능력이 저를 사로 잡는 거예요.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데, 격려하시고 힘을 주시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루, 하루를 거뜬히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면 이깁니다. 어떠한 역경도, 어떠한 부담스러운 일도, 내가 할 수 없는 것 같은 일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위기에서도 해결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요즈음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금년에 우리 자녀들 대학 합격율이 좋아서 감사합니다. 우수한 대학에 들어가서 감사합니다. 취업소식도 감사합니다. 입시생 둔 자녀들의 어머니들이 새벽에 이 자리에 나와 얼마나 기도 많이 합니까?
육신의 질고, 고경자 권사님 남편인 강낙순 님도 담도암으로 고대병원에 누웠을때에 암담했지요. 믿지 않는 남편 위해 얼마나 새벽제단을 쌓았어요? 그 힘든 항암치료 잘 받고 어제 C.T. 촬영 했는데 어느 곳에도 전이도 없고, 깨끗하다는 거에요. 아멘! 또한 성탄절 감사예배 마치고 부랴 부랴 정금선권사님 남편되신 고창율 님, 간질성폐렴이라고 생존율이 40프로밖에 안된다고.....그러니 기도하는데 아내도 울고, 딸도 울고, 중간 중간 응급 수술해야 한다고 수술실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필요없다고 다시 돌아오고, 그런데 우리 교우 모두가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수술이 필요 없게 되었다 하고 결국 깨끗이 고침 받아 퇴원을 했으니 할렐루야~!
기도의 능력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거에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합니다. 제자의 모습으로 있을 때에 저들은 예수님을 곁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역사를 일으키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에 저들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하기 시작했던 것이었어요.
사도행전 1장 12절에 이하에는 승천 이후 제자들의 기도에 전무하는 모습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절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이후 아시는 대로 성령강림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합니다. 이후에 기도의 능력을 안 사도들이 어떻게 바뀝니까? 기도의 사람들의 됩니다.
사도행전 3장 1절에 말씀합니다.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쌔......”
사도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나면서 성전 미문에 날마다 앉아서 구걸을 하는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니 저가 걷기도 하고 뛰기고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전도 중에 욥바에서 과부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다비다를 기도로 살려내는 놀라운 역사를 행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2월이 시작됩니다. 기도로 열어 가시는 성도여러분, 올 한해 기도의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하고 기도로 결단하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제자들과 같이 기도에 힘쓰겠습니다.
찬송: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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