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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05] 회개와 말씀으로 구원을 이루라
운영자 2019-05-08 추천 1 댓글 0 조회 910
[성경본문] 요한계시록2:12-17 개역개정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회개와 말씀으로 구원을 이루라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었던 어느 날 그는 놀라운 광경을 대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래의 커튼을 열어젖히시고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그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소아시아의 세워진 일곱 교회에 앞으로 불어 닥칠 환란과 핍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환란은 당시 지중해를 제패하고 통치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도미티안 황제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유독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해야 했던 이유는 황제숭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다. 도미티안 황제 이전까지는 세상을 떠난 황제들을 신으로 모시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유독 도미티안 황제는 살아있으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신앙인들과는 달리 기독교인은 오직 살아계신 신은, 한 분 밖에 없으니 하나님이시오, 구원자는 그의 아들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었습니다. 

 

환란과 핍박이 다가올 때에 교회의 성도들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믿음 위에 견고히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성도들은 성결한 마음으로 돌아서야 하고, 그 깨끗한 마음에 주의 말씀으로 성령충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성도들을 하나씩 살피셨고,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잘 듣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그 불같은 환란에서 구원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교회 에베소교회는 주와 교회 안에 지체들을 향한 첫사랑을 잃어버린 냉냉함이 지적되었습니다. 차가운 지성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교회 안에서 출교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교회 안에 성도들이 서로를 향한 불신으로 가득했습니다. 서로를 정죄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교회는 형제우애와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 회복되도록.......,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단이 교회 안에 들어와도 내 버려두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이 살아나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심령마다 소생하면, 진정한 사랑이 회복됩니다. 그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 6절의 말씀대로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성도님도 이처럼 마음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셔서, 교회 안에 형제, 자매를 진리로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교회는 서머나 교회였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왜 그런고하니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핍박은 첫째, 재정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감춰진 그리스도인들을 로마정부에 고발을 하고 그러기에 직업을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신앙 때문에 핍박까지 임하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의 주 세력은 사단의 회당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옥에 갇힐 일이 일어날 것인데 그 믿음 지켜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자는 11절에 보니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어요. ‘둘째 사망’이란 믿지 아니하는 자, 또는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자가 죽었을 때에, 이것이 첫 번째 사망이요, 이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심판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 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는 첫째 사망을 거치고 난 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 영생복락의 상이 주어집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세 번째 교회입니다. 버가모 교회에요. 에베소 교회 위쪽으로 작은 도시에 서머나 교회가 있고, 그 위 북쪽으로 80킬로미터 내륙으로 버가모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버가모라고 하는 곳은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중심도시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에 제일 큰 신격인 제우스 신전이 있는가 하면, 뱀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으로 유명했습니다. 더욱이 로마의 통치를 받으면서 최초로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러니 버가모는 다른 도시보다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그야말로 영적전투의 최전방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13절에 보니 버가모 도시를 가리켜 말씀하기를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의 본부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핍박이 심했습니다. 사탄의 본부에 교회가 세워지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요. 이미 신실한 주의 종들 중에 한 사람인 안디바가 황제숭배를 거부하여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 있는 핍박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교회가 믿음을 지켜 갈 것인가? 그 자세를 알려주시기 위해 사도요한으로 하여금 편지에 기록한 것이 있으니 오늘 말씀 14절에 두어 가지 책망할 것으로 표현하십니다. 첫째, 버가모 교회 안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이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출애굽을 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에 적군의 선지자였던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 빠뜨리게 하려고 모압 왕인 발락에게 조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니는 길목에 우상의 제물과 미모의 모압 여인들을 준비해 놓으시오.” 

 

발락이 그렇게 행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하루에만 24,000명 죽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넘어가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선이 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은 논문을 쓰면서 남의 것을 도용하는 표절을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학위무효가 되고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 두고, 두고 구설수에 오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은 뇌물수수입니다. 밝혀지면 형사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됩니다. 성직자들은 성적인 죄가 치명적입니다. 그 즉시 신분을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거런데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여기, 저기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 들 중에 말입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 바로 이 버가모 도시, 당시 이 도시의 별명이 그리스 신을 섬기던 그곳에서 로마 황제숭배가 횡행하면서 ‘정신적인 창녀’라고 불리웠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교인들 중에 그 문화에 젖어버린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파에 젖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을 주께서는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15절에 보니 다시금 니골라당의 교훈이 나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에베소 교회에서 있었던 내용입니다. 영지주의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단입니다.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한 것이다. 그러니 육은 맘대로 굴려도 영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과 흡사합니다. 분리되었다는 생각이지요. 잘못된 생각이지요. 생명으로 살아가는 동안 영과 육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육신이 힘들면 영적으로도 다운됩니다. 영적으로 약해지면 육신도 병이 듭니다. 육신으로 튼튼하면 영도 살아나서 기도도 열심히 힘있게 합니다. 그렇게 쉽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에요.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의 속사람이 강해지면 우리의 육체인 겉사람도, 즉 육신도, 회복이 되고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은 오늘날에 적용점으로 해석하자면 율법을 무시하고, 도적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율법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이미 죄 용서 받았기에 죄를 더 지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천국에 가겠지요. 그러니 저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하려면 세상 사람들과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술취하는 것, 음행이나 우상 숭배도 별 것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거 쉽게, 쉽게, 신앙생활하는 모습입니다.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교회에 남는 것은 결국 인간적인 교제밖에 남지 않습니다. 신앙의 순결은 사라지고 맙니다. 교회에 왜 다니는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만나러 나오는 거에요. 또는 비즈니스 하러 오는 거에요.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목회하였던 시카고에 한 교회가 있습니다. 청빙을 받아서 그 교회에 가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교인 숫자가 많이 않으니 밖으로 나가 펜션을 빌려서 전교인 수련회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인들 중에 여러 사람이 자신들의 가방에 유명한 브랜드의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집회를 마치고 밤이 되니, 이 방으로 부르고 저 방으로 부르고, 그 좋다는 포도주 마시고, 기도는 하지 않고, 밤새 얘기하고, 이게 수련회입니까? 성도의 교제입니까? 그렇게 습관적으로 교회가 이어 온 거에요. 그러니 교회가 부흥, 성장하겠습니까? 그와 같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바꾸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어요. 

 

이와 같은 니골라당의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한 세상의 쾌락을 절충하는 잘못된 교훈이 여전히 버가모 교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책망하십니다. 16절에 “그러므로 회개하라” 안 그러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내 입의 검”은 12절에도 나왔습니다. “좌우에 날 선 검” 이라고 했어요. 1장 16절에도 말씀합니다. “그의 입에서 날 선 검이 나오고”  그러니 검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바로 “말씀,”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는 좌우에 날 선 검” 즉 말씀으로 물리치신 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이 살아있으면 성도의 영혼이 소생합니다.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면 심령이 기뻐 뜁니다. 말씀이 생명수가 되기 때문이에요. 말씀이 말씀대로 증거되는 곳에 빛이 임하니......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는 자는 17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시간이 없어 간단히 합니다. 

만나는 광야에서 먹던 음식입니다. 그런데 다시금 주신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양식 즉, 생명의 떡,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주심으로 그 말씀이 살아역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이 말씀은 어느 곳에 출입할 수 있는 표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종의 출입증과 같은 것이에요. 흰색은 곧 거룩을 상징하고 천국을 상징하니 이는 곧 Pass, 통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허가서와 같은 것입니다. 

 

그 통과증에는 새 이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은 곧 구원받은 자가 알 수 있는 이름이라고 했어요. 이 말씀은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누가 아느냐?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을 구원받는 자는 확신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이 알지 못해요. 남이 볼 때에 그럴듯해 보여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도 있어요. 안타깝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천국백성으로 승리로운 삶으로 사시고 이 땅을 떠날 때에는 천국에 입성하셔서 영색복락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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