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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15] 환란 중에도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주님
운영자 2019-05-28 추천 1 댓글 0 조회 1062
[성경본문] 요한계시록6:5-11 개역개정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환란 중에도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주님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밧모섬에 유배되어 노년의 때를 보내던 사도요한은 어느 날 위로부터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환란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더불어 그 환란 속에서 믿음을 견디는 자에게 주실 하늘나라의 상급을 그에게 보여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장차 되어질 일을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며 그것을 기록하여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서신으로 보내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 내용은, 이후로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적그리스도로부터 환란과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환란의 의미를 알려주며, 또한 그 환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자하는 자를 주께서는 반드시 보호하신다. 반드시 구원하신다.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 라고 하는 격려의 멧세지를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요한을 통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었습니다.

 

하늘보좌로 부름을 받아 올라간 사도요한은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그 일곱 봉인 된 두루마리는 하나님이 마스터 플랜이었습니다. 당시에 있었던 환란과 또한 앞으로 있을 환란 가운데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선한 자를 구원하시는 계획이 담겨져 있었으니 그것을 미리 볼 수만 있다면 악한 자는 두려워 떨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될 것이었습니다.

 

첫째 인을 떼니 흰말이 등장하였는데 그 말을 탄자는 활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환란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더 큰 환란이 임하기 전에 구원받을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인을 떼니 붉은 말이 등장하는데 그 말을 탄자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땅에서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였습니다. 이는 곧 악한 자들의 멸망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이제 세 번째 인을 떼니 검은말이 나왔습니다.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 말을 탄 자는 활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활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악한 자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여 그 심령에 찔림을 받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라는 마지막 경고였습니다. 두 번째 말을 탄 자는 큰 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전쟁에서 사용되어질 무기였습니다. 과거에는 칼과 창이었겠지만 오늘날은 미사일에 실린 핵폭탄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말에 탄 자는 저울을 손에 들었습니다. 이 저울은 무게를 측량하기 위한 것인데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먹을 곡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검은색 말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 검은색 말은 기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앞서 두 번째 말, 전쟁 이후에 오는 현상입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고 살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쌀 한톨이 귀한 상황이 되니 양식을 얻고자 하는 아비규환이 벌어집니다. 그 다음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루 일당 10만원을 벌어야 밀 한 되밖에 못산다는 것입니다. 보리 석 되밖에 못삽니다. 곡식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다는 것입니까?

 

믿지 아니하는 자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들, 끝까지, 세상이 좋아, 세상이 추구하는 쾌락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는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고 하나님의 심판은 부르심을 위한 심판입니다. 끝까지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그와 같은 심판 중에도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1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그러나 끝까지 오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이렇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심판 속에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선한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감람유와 포도주는 또 한편, 믿음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감람나무와 포도나무는 성도에게 자주 비유되었습니다. 이사야서 51절과 2절에 말씀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포도나무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의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열매를 잘 맺게 하시기 위하여 항상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로 부어주십니다.(4:14)

 

네 번째 두루마리의 인을 떼니 청황색 말이 나왔습니다. 이는 최후의 심판인 죽음을 상징합니다. 왜 청황색인가? 죽은 자의 색깔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이 색깔을 pale 로 표현했어요. 핏기가 없는 창백한 색깔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색깔이에요. 그러니 그 말을 탄자의 이름이 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에 보니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그를 죽이더라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망은 두 번째 사망을 포함합니다. 그러니 죽음 이후 음부가 곧 지옥이 그들을 기다립니다. 이는 육신의 사망뿐만 아니라 영원히 불못, 지옥에 거하는 영적인 사망을 포함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믿음의 사람은, 주 예수를 굳게 믿으므로 제 2의 사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할 수 있어요. 순교자들이 그 모습일 것입니다. 그 영혼이 음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불같은 사망의 환란 속에서도 생명으로 구원받을 자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입니다. 8절 후반부의 말씀입니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사분의 일의 권세라고 그랬습니다. 모두가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만드신 세상과 피조물을 결코 포기하시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환란가운데에서도 남은 자를 남기십니다. 선한 자를, 믿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다섯째 인을 떼니 그 불같은 환란에서 첫 번째 사망의 강을 건너온 믿는 자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곧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그 말씀을 증거하기에 죽임을 당한 자들입니다. 순교한 자들입니다.

저들에게 두 번째 사망은 없습니다. 대신 영생복락이 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들의 영혼이 하나님 보좌 앞, 제단에 있습니다. 저들이 하나님께 큰 소리로 탄원합니다. 10절 말씀이지요. 함께 읽겠습니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그랬더니 11절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우선 저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희고 흰 옷을 주십니다. 거룩한 자가 입는 옷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있는 자들이 예배와 찬송을 드릴 때에 입는 옷이에요. 순교자의 영광과 상급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말씀하십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지요. 아직 잠시 동안 쉬라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 땅에서 환란 날이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공중권세 잡은 사탄에게 조종을 받아 의인을 죽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그의 제자들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이후에 초대교회에 지도자였던 야고보가 그랬습니다. 소아시아 서머나 교회의 목회자였던 폴리갑이 또 그랬습니다.

 

선교지에서 처음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 당했습니다. 이 한국 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변에서 목 베임을 당합니다. 그때에 그가 던진 성경책을 읽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여러 목사님들이 순교당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순교합니다. 가까운 저 북한의 감호소에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성도들이 갇혀 있습니다. 총살형 대상자로 죽어가고 있으며, 살아 있으면 평생 노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 여전히 순교할 자가 남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순교자의 반열에 설 자가 누구입니까? 내 마음대로 순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자리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아무나 그 영광을 입은 자의 반열에 설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가, 아주 강한 믿음이 있는 자가 서겠지요.

 

저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입성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대하십니다. 빛나는 흰옷을 주시며 영광의 자리에 앉히십니다. 그리고 저들의 찬송을 받으십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저들의 후손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복으로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의 산다면 길어야 100년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영원합니다. 이 영원한 영생복락의 삶을 위하여 이 땅에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He is no poor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gain what he cannot lose." 라고 짐 엘리엇 선교사는 그의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는 더 이상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적은 마지막 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날 그는 소형 비행기를 통해 물품을 주며 지속적으로 접촉해 왔던 에콰도르의 아우카 부족에게 다시금 들어갑니다. 그런데 짐 엘리엇 그는 에쿠아도르의 쿠레라이 강변에서 사납기로 유명한 아우카 부족의 창에 찔려 그의 동료 네 명과 함께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저들의 허리에는 호신용 권총을 차고 있었으나, 그처럼 자신들을 죽이려고 창을 들고 공격해 오는 저들을 향해. 어쩌면 반사적으로라도 사용했을 법한, 호신용 권총을 한 발도 사용하지 않고 그렇게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약혼녀와 누이와 결혼한 아내들이, 다시금 선교사로 그 마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들을 죽인 장본인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창으로 찔렀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복음으로 변화되어 또 다른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들어갔다가 순교하게 됩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얘기지요.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 그 수가 다 차면 주께서 다시금 이 땅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저리로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숫자가 몇 명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알고 계시고 그러기에 세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때를 알 수 없으니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며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주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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