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6: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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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일곱 봉인된 두루마리가 열리다
요한계시록 6장과 7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세지말에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가를 보여줍니다. 특별히 새 하늘, 새 땅이 임하기 전에, 이 땅에서 먼저 치러질 악에 대한 심판을 보여주시고 또한 선한 자를 어떻게 보호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첫 번째 질문은 그 때가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환란이 언제가 될 것인가? 앞으로 이루어질 일인가? 그렇게 말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볼 때에 사도요한에게 보여주셨으니, 사도요한의 시대에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핍박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니, 저와 여러분의 시대가 지나고 언젠가 앞으로 이루어질 일로 국한하여 해석할 것이 아닙니다.
이 환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초림 이후로 다시금 주님 오실 때까지 지난 2천여 년의 시기가 바로 환란의 시기가 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믿는자를 핍박합니다. 초대교회로부터 300여 년간 기독교를 박해한 로마제국과 같이, 그리고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순교자를 만들어낸 일본제국과 같이, 그리고 오늘날에는 적대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또는 기독교교회를 파괴하는 인도의 힌두교강경신도들과 같이, 또는 기독교인을 색출하여 감호소에 가두고 종신노역을 시키는 저 인권 없는 북한과 같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세계 여기, 저기에서 우리는 환란의 모습과 핍박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6장 1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보매” 누구를 말씀하는 것입니까? 예, 사도요한을 말씀합니다. 저의 기독교 신앙으로 밧모섬에 유배되어 95세의 나이에 주님 부르실 날을 기다리고 있을 그때에, 주께서는 저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보좌로 부르셔서 장차 일어나게 될 일을 보여주십니다. 그 환상을 보고 있는 자, 바로 사도요한입니다.
그 다음 구절입니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여기에서 어린양이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제물로 달려 돌아가신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두루마리를 여십니다. 일곱인 중에 하나를 떼십니다.
“일곱 인”에 대하여는 어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고 계신 두루마리인데 일곱 인으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열자가 없고 또한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종말의 날 전까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인류통치의 청사진, 마스터플랜, 그러나 비밀문서라고 말씀드렸어요. 아무도 열자가 없어 사도요한이 답답하여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등장하여 이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를 여실 분이 나타났으니 오직 한분, 죄가 없으시고 공의로우시며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시므로 인류역사의 죄를 도말하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저가 그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를 하나씩 여시면서 장차 되어질 일을 사도요한에게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뗄 때에, “네 생물 중에 하나가” 하늘보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던 피조물들 중에 하나가 우렛소리처럼 큰 소리로 사도요한을 부릅니다. “오라~!”
보라고 하는 것이지요. 2절에 말씀합니다. “이에 내가 보니” 사도요한이 보는 것입니다.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이 흰말을 탄 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여러 해석들이 있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다. 그가 최종적인 승리자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또는 “당시에 승리를 한 로마제국이다.” 영적해석으로는 “그는 적그리스도다.” 분분합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는데, 저가 다시금 흰 말 탄자로 등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니, 주는 하늘 보좌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사람을 보내시고 자연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실 분이십니다. 그리고 재림하실 때에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 흰말탄자는 예수께서 이 땅에 보내셔서 사용하시는 자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니 어떤 이단의 교주는 또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내가 흰말을 탄 승리자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내용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보니 흰말을 탄자는 면류관을 받았다고 했어요. 예수님은 면류관을 주실 분이시지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성경원어에 보면 이 면류관은 충성된 종들이 쓰는 “스테바노스”라는 면류관입니다. 예수님이 면류관을 쓰신다면 그것은 ‘디아데마타’라고 불리는 왕관을 쓰셔야 합니다. 그러니 이 흰말 탄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께서 사용하시는 충성된 종입니다.
흰말을 탔다고 했습니다. 흰색은 거룩을 상징하며 흰말은 당시 문화적 코드로는 전쟁에서 이긴 자가 타는 흰말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환란과 핍박의 때에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신실한 주의 종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복음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사도바울, 베드로, 스테반, 사도요한, 서머나 교회의 목회자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간 폴리갑, 이후에 근세사회에 전도자 D.L.무디나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 같으신 분들, 일제시대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북한군에게 순교 당하신 김익두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이 바로 흰말을 타신 분들입니다. 활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영혼을 살리고 사탄의 궤계를 멸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주의 종들을 사용하십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중권세 잡은 자에 의해 조장되는 세상의 헛된 풍조로 세상의 죄악이 관영해져 가고, 반 기독교적인 모습이 판을 칠 때에, 영혼을 살리는 멧세지로, 믿음을 세우는 멧세지로,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하라는 멧세지로 죽기까지 충성합니다. 이 반열에 설 수 있는 주의 종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도록, 주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받는 주의 종들이 나올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절에 보니 두 번째 말이 나오는데 붉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탄자는 큰 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붉은 색은 전쟁을 표시하고 큰 칼은 무기를 뜻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이 붉은 말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보니 “저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였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주께서는 악한 세력이 전쟁을 하도록 허락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악한 자를 향한, 그리고 악한 정부를 향한, 악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입니다. 그러니 모든 전쟁은 주의 손에 속한 것입니다.
어느 한날,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세상의 종말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5) 오늘날 이 시대의 이단의 교주들이죠. 그런가 하면 또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이 있을 것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기진이 있으리니.....” (마24:7)
바로 우리의 일대 선조들이 6.25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베트콩과 베트남의 전쟁, 그런가하면 이스라엘과 시리아, 인도와 파키스탄, 이라크와 쿠웨이트, 아프카니스탄에서도, 그리고 I.S.와 시리아....., 왜 전쟁이 일어나겠습니까? 죄성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이후, 죄성이 배였습니다. 이후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이 전쟁의 출발입니다. 이 죄성은 미움으로 증오로 욕심으로 강탈로, 복수는 복수를 낳고,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세지말에 반복되는 전쟁을 볼 때마다 오늘 말씀의 교훈은 그것입니다. “그렇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말세의 징조이다. 주님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전쟁으로 개인적 종말이 오기 전에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으로 전해야 하겠다. 예수 믿고 천국 가도록 전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하여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부흥하면 종말론적인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만날 날을 생각하면 욕심이 사라집니다. 죄악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이와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 세상은 변합니다. 영적인 부흥이 일어날 때에는 전쟁의 기운도 그 기승이 멈춥니다.
미국에서 9.11 사태가 일어난 이후로 교회마다 자리가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세상풍조에 휩쓸려 맘몬주의가 소비주의가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주께서 일곱 인을 떼시고 붉은 말을 탄 자를 말세에 내 보내시고 전쟁을 허락하시는 것은 다 뜻이 있어요.
환란은, 전쟁은, 기근은, 믿는자의 믿음을 불로 시험하여 더욱 신실한 자들로 세우는 과정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돌아오는 계기를 만들게 하며,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저버린 자들에게는 멸망의 심판인 것입니다.
전쟁의 기수인 붉은 말을 탄자가 큰칼을 받아 들고 서로를 죽이게 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받고 승리합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전체에 흘러가고 있는 대주제입니다.
“큰 환란이 임할 것이다. 전쟁도 임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지켜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오늘도 성도 여러분, 거친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이 믿음으로 이겨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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