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24: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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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만남의 축복
만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만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한 번, 바다에 나간다면 두 번, 그리고 결혼생활에 들어가기 전에는 세 번 기도하라” 만남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또한 좋은 친구와 만남은 또 얼마나 중요합니까?
알브레히드 뒤러(1471-1528)는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어요.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학비를 댈 수 없을 형편이었습니다. 뒤러는 같은 처지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공부를 했어요. 그러다보니 두 사람 다 그림공부에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뒤러의 친구가 이렇게 제의를 했어요.
“네가 먼저 공부를 해라, 나는 네가 졸업할 때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며, 너의 뒷바라지를 하겠다. 네가 졸업 한 후에 네가 다시 나를 뒷바라지하면 되지 않겠니?”
친구는 뒤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서 꼬박꼬박 학비를 송금해 주었습니다. 뒤러가 졸업할 무렵에는 그의 그림도 하나씩 둘씩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뒤러가 오랜만에 친구를 찾아 식당에 갔을 때, 친구는 마침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여, 저의 손은 노동으로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몫의 능력을 뒤러에게 주시고, 주의 영광을 위해, 제 친구가 진실 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기도하는 친구의 모습을 볼 때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지금까지 헌신했는데도 불구하고, 앞날을 위해 기도하는 그 친구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본 순간 뒤러는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손은 식당에서 많은 일로 인해 그야말로 거친 손이 되었습니다. 뒤러는 곧 바로 붓을 들고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 되었습니다.
뒤러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독일이 EU에 가입하기 전에 독일화폐에 기록된 훌륭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헌신적인 친구를 만난 뒤러는 시대에 제일가는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고, 그 성공은 친구의 희생이었음을 감사할 줄 아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만남을 이야기하는 귀한 얘기로 남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여름에 우리 청년들에게 좋은 만남이 시작되고, 또 연인이 생겨서 사랑을 시작하게 해 주세요.” 정말 그렇습니다. 마음에 이상형으로 기다리고 있는 남편 후보, 그리고 아내 후보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러기를 축복합니다.
이게 또 개인적으로 제 가정의 소원이기도 해요. 제 아들, 제 딸이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우선순위는 첫째, 두말 할 것도 없이 예수 잘 믿는 사람, 둘째,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 셋째, 마음이 넓고 성품이 좋은 사람, 넷째는 있으면 좋을 법한 건데요......,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아버지 될 사람, 장인어른 될 사람에게, 용돈도 잘 드리고 효도 잘 하는 사람, 딱입니까? 예, 딱이에요.
우리 청년들이 또 자녀들이 이런 사람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아름다운 한 만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입니다. 성경에 구약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1부1처로 살아간 잉꼬부부입니다. 그 만남이 오늘 성경본문에 그려져 있어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장성하였고 아브라함은 많이 연로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40세가 되었고, 아들 이삭은 40세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삭이 아직 결혼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제 며느리를 찾고자 합니다. 그의 충복인 엘리에셀을 불러 이삭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상류의 위치한 하란으로 보냅니다.
하란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오면서, 머물며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 데라를 비롯하여 가족들이 함께 살았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75세까지 살다가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오게 되었고 이제 나이 140세가 되었으니 65년이 흐르는 동안 하란에 남아 있는 아브라함의 친 가족들도 그 수가 많아졌음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그곳에서 찾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이삭의 리브가의 만남과 결혼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영적 교훈을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는 부모된 아브라함의 결혼관입니다.
그 모습은 첫째, 결혼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주변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을 보았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세계가 다릅니다. 따라서 정신세계도 다릅니다. 문화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란으로 가서 배우자를 찾게 합니다. 그러면 왜 하란입니까? 그곳도 이방 땅인데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까?
예, 바로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들입니다. 왜 저들이 고향을 떠났는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어요. 아브라함 시대에 갈대아 우르라는 도시는 바벨론식 우상 숭배와 신(Sin)이라는 달의 신인 그 도시의 수호신 숭배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저들의 문화와 우상들을 버리고 하란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신부 감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결혼시키고자 했습니다.
오늘날 어느 형제나 자매는 믿음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인지, 믿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하고자 하면서 말하기를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잖아요. 신앙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은 취미가 아닙니다. 신앙은 가치관이요, 세계관입니다. 영적으로 다르면 부딪히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가정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가정의 소위 말하는 가문의 전통도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가정의 문화도 마찬가지지요. 이 세상을 봐도 알 수 있쟎아요. 문화가 먼저냐? 종교가 먼저냐? 다시 말하면 문화가 종교를 만드느냐? 아니면 종교가 문화를 만드느냐? 연구에 의하면 종교, 즉 신앙에 의해서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서구문명은 “기독교 문명”이다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신앙은 중요한 것입니다.
또 어느 자매는 또 신앙심이 너무 투철해서 말합니다. “저는요, 전도하려고 믿지 않은 사람과 결혼해요.” 그러나 그 생각 자체가 결혼의 목적을 혼돈하고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결혼의 목적은 전도가 아닙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결혼한다? 아닙니다.
결혼은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피차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같은 삶을 목적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이 다르면 삶이 너무 힘듭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신앙 안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같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형제, 자매와 만날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어릴 적부터 늘 얘기해 줘야 합니다.
“하민아, 하성아, 하준아, 하린아, 아일린아, 너는 이 다음에 커서 결혼 할 때에 꼭 예수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해~!” “상원아, 상진아 상명아, 인철아, 예슬아, 민지야, 은율아, 은비야, 은찬아 꼭 예수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해~!” 더 어려도 괜찮아요. “유수야, 너는 이담에 커서 꼭 예수 잘 믿는 아가씨와 결혼해야 해. 혜은아, 너는 꼭 예수 믿는 남자와 결혼해야 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명기 7장 3절, 4절에 “또 그들과(이방인)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가끔 믿는자가 아내나 남편을 구원시키는 일이 있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 않아요, 그런 모습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봐요. 안쓰럽지요.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영적 조건은 파트너가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며느리감을 신앙의 사람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둘째, 결혼 대상자는 성품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을 며느리로 삼고자 했다면, 그의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의 기대가 있습니다. 그 기준을 보세요. 성경본문 24장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14.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이게 지금 현실로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에요. 바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내용으로 기도하는 종 엘리에셀입니다. 자녀의 결혼을 위해 본인의 결혼을 위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 내용을 보니 성품이 좋은 여자, 마음이 넓은 여자, 그래서 나그네에게 길어오던 물도 나눠주고 또한 여행에 지친 약대에게도 자신의 물을 나눠줄 수 있는 도량이 있는 여자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품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사역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모토가 있는데요. 그것은 Ministry flows out of Being, 즉 “하나님의 사역은 성품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입니다. “사람 됨됨이”가 사역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성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모든 노력, 지식도 중요하고, 기술도 중요하고, 열심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의 바탕에 성품이 결여된다면, 사역은 풍성하지 못하고, 풍성하다 하더라도, 시간이 가면서 용두사미의 꼴이 되고 맙니다. 결국 병들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품이 건강하고, 주님 닮은 넓은 성품을 갖게 되면, 어려운 자, 힘든 자를 보면 함께 울고 체휼하는 성품을 갖게 된다면, 그는 목표를 이룸에 있어서, 더디 걸릴지 몰라도, 결국 사람들이 알아주게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그리고 사람들도 알아주게 됩니다.
엘리에셀의 기준을 하나님께서 좋게 보셨습니다. 그러니 15절에 리브가가 등장하는데 이 처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고 했습니다. 16절에 보니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이 모습을 영화로 본다고 하면 완전 클라이막스~! 커다란 화면에, 한 아가씨를 점점 클로즈업 합니다. 비록 시골스럽기는 하지만, 건강하고, 아름답고, 해맑은 리브가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물동이를 메고 걸어오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소녀!
그런데 보니 친절하기까지 합니다. 물을 달라고 하니, 피곤한 나그네에게 기꺼이 힘들게 길어오던 물을 나눠줍니다. 18절과 19절 2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19.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20.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입니까? 이 소녀의 모습을 보는 엘리에셀의 얼굴은 만면에 미소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보여주시는 구나~!” 이삭은 또 얼마나 가슴이 두근 두근 거렸을까요? 심쿵~! 심장이 쿵! 쿵! 하며 뛰었을 것입니다. “아~! 우리 며느리가 이랬으면 좋겠어요 !” 여러분의 며느리도 그러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셋째로 배우는 영적교훈이 있습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신실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인가? 왜 모든 민족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는가? 오늘 성경본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에셀에게 약속을 하라고 합니다.
“돌아오라! 이 땅으로 반드시 다시금 돌아오라!”
5절과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란은 메소포타미아 강의 상류에 위치한 곳으로 비옥한 곳입니다. 그러기에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지요. 가나안 땅보다는 훨씬 더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라고 합니다. 신부가 또는 신부의 가족이 이삭을 잡고 “여기서 살자” 하고 그리고 이삭이 그 좋은 모습을 보고 아리따운 신부를 보고 반해서, “그래 여기서 살자!” 할 수도 있어요. 이 소녀가 사랑하는 가족의 품을 떠나 이삭을 쫓아 그 머나먼 땅으로 가기가 쉽습니까? 쉽지 않아요.
딸 가진 부모님들, 사위될 사람이 여러분의 딸을 저기 네팔, 캄보디아, 이집트같은 곳에 선교사로 데리고 나간다면 “그래, 어서 데리고 가라!” 그러세요? 쉽지 않아요. 그 고생하는 곳에 왜? 제가 제 장모님, 장인어른으로부터 제 아내를 선교지로 데리고 가려니 처음에 허락을 안 하셔서 3년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쉽지 않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8절에 또 다시 반복합니다.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지요.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거기에서 내가 너에게 자손과 땅과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여러 차례 시련과 시험 속에서 그를 부유하게 하시고 땅을 갖게 하시고, 100세에 약속대로 아들을 주신 그 하나님을 그는 믿었습니다.
“비록 가나안 땅이 하란보다 풍요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원대한 역사가 이루어질 약속의 땅이 될 것이다. 반드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일에 이삭을 통해서 대를 이어서 일어날 것이니 돌아오라”
그리고 이삭이 돌아오므로 그 역사는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한자로 부르셨음을 믿습니까? 죄악의 땅에서 건져주시고, 오늘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해가시고 계심을 믿습니까? 주께서 또한 산돌중앙교회로 여러분을 부르셔서 지체로 삼으셨음을 믿습니까? 교회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여러분의 심령으로 가정으로 일터로 흘러 들어감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자를 들어 사용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따르고 행하는 자에게 반드시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임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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