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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4] 위기가 닥쳐 올 때
운영자 2019-07-26 추천 2 댓글 0 조회 1016
[성경본문] 시편3:1-8 개역개정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위기가 닥쳐 올 때

 

시편 3편을 그림으로 그려서 상상한다면 이 시의 저자인 다윗과 자신의 군사들이 적에게 완전히 포위 되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사방팔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소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럴 때가 없습니까? 내 능력 밖의 일이기에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는, 또한 알더라도 할 수 있는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 말입니다.

 

시편 기록자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적이 많다 라는 표현은 2절에도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이길 수가 없는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공격태세를 갖춘 적들은 먼저 시편 기록자를 말로 조롱합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셀라’(סלה) 라는 말은 음악적 부호로써 그 뜻은 멈춰서 들으라 라는 뜻입니다. 전통적으로 독자는 시편을 읽으면서 셀라 라는 말을 발견할 때면, 독자는 일단 멈추고 다시 한 번 묵상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분주히 행하는 뭔가를 멈추고 주님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셀라 라는 말이 나온 뒤에는 보통 높고 강한 어조로 그 다음 소절을 읽어야 했습니다. 변환을 알리는 싸인과 같은 것이에요. 그러니 음조의 변화가 시작되기 전에 셀라 가 나오는 것입니다.

 

2절을 다시 봅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고대 전쟁에는 양쪽에 군대의 진을 치고 먼저 말로써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했습니다. 우리는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먼저 말로써 기선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너희 중에 한 장수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삼상17:9) 그때에 그의 모욕하는 소리를 듣고 사울의 군대는 주눅 들었으나, 다윗은 나가서 물맷돌로 그의 이마를 쳐서 승리했습니다.

 

2절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다윗, 너는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적의 진영의 많은 적군들이 그렇게 말로써 다윗과 다윗의 군사들을 향하여 말로 겁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위기에 처할 때에 주변에 사람 중에도 그렇게 부정적인 말로 기를 죽이고 겁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돕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는 모습이죠.

 

제가 필리핀에서 사역을 할 때에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철에 교통사고가 났었습니다. 상대방 차를 몰던 운전자가 갈비뼈가 4대가 금이 가고 병원에 입원해 누웠습니다. 정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마닐라에 있는 선교사들 중에 이런 소문이 오고 갔습니다. 김연정 선교사가 교통사고를 내서 상대방 운전자가 죽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에 제가 정말 기가 죽었습니다. 전화해서 위로는 못해 줄망정, 기도하겠다고 격려를 못할망정, 쑥덕! 쑥덕!”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말들을 만드니 돌아서 제 귀에까지 들려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편 기록자는 셀라를 외칩니다. 시편을 은율있게 노래로 부르다가 또는 낭송하다가. “셀라좀 쉬고, 생각하고, 이제 음성을 고조시키며 분위기 반전을 가져오고자 합니다. 3절이죠.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이시니이다

 

이 상황을 상상하고 묵상하면서 저는 시인의 이 영성이 부러웠습니다. 상황이 절망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적군이 외워쌓습니다. 위기입니다. 조롱합니다. 그러나 침잠하지 않습니다. 주저앉지 않아요. 기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침내 일어서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여호와가 있다.” 나의 방패,” 즉 여호와는 나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 결코 주님은 낮은 곳으로 떨어지지 않으신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무슨 말씀입니까? 나를 승리자로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패한 군대의 장수는 승자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자 승자는 고개를 듭니다. 나의 머리를 드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나를 승자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의 선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전쟁의 결론이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가 그처럼 위기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를 선포하는 이유는 과거에 함께 하시므로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4절 말씀이 바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성산은 곧 모리아 산상, 해발 630미터, 그 위에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을 가리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상징입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우리가 위기 때에, 환란 중에 기도합니다. 간절한 기도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합니다. 때로 너무 간절하면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처럼 큰 목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데, 어디에서? 성산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성산은 예배당입니다. 예배드리는 장소, 곧 이 자리가 성소요, 성산인 것입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 으로 세운 것입니다.

 

저는 고국에 온지 3년 반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다보면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가 또 사라집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교우가 나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가면 사라지고, 그래서 이제 제가 감잡아요. “~!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리고 얼굴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그 이유가 새벽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지쳐서 그만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기도의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죠. 감사하죠. 저도 참 감사하지요.

 

이 모습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위급하면 기도하게 되고, 응답받거나 또 위기가 무탈하게 지나가고 나면 에고~! 좀 쉬자!” 하는 것이지요. 이해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도 최고의 방법은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고인 것처럼, 평소에 새벽으로 기도생활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둘째는 위기가 닥쳐 올 때에, 문제 해결의 응답을 받기 위해 새벽에 기도하시는 모습이요, 셋째는 좋기 보다는 안타까운 모습인데, 위기가 닥쳐오고, 문제가 터져도, 뭐 그리 뱃장이 좋은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취업을 눈앞에 두고도, 자녀의 대입을 눈앞에 두고도, 자녀가 군대에 가 있고, 부모 곁을 떠나 먼 곳에서, 먼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도, 생업의 현장에 재정적 압박이 다가오고, 오늘의 상황처럼 내 능력 밖의 것이다 여기면서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나태하고 게으른 것입니다. 본인들은 괜찮은지 모르지만 제가 오히려 조마조마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오늘 사방팔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한 시인의 모습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자꾸 그 모습 속에 빨려 들어가서, 침잠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래서 결국 주저앉기 보다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이 소망이 회복이 거기에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를 살리는 능력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로다(121:1,2)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12명의 사람들 중에 열 명이 좌절합니다. 아낙 사람들, 그 덩치에 완전히 주눅 들었습니다. 그 백성들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라고 했다. 그 모습은 똑같이 여호수아와 갈렙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다릅니까? 왜 다른 평가를 내린 것입니까? 자신의 눈을 돌려 함께 하시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보았기에 두려움도 사라지고, 저들은 우리의 밥 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우리에게 붙이셨습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래야 하겠습니다. 어려울 때에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눈을 들어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되시는 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도우신다. 주께서 해결해 주신다. 그러므로 나는 요동하지 않는다.”

 

또 다시 4절 끝에 셀라가 나옵니다. “셀라그 뜻이 멈추고 생각하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시편 기록자는 그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전투가 곧 일어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잠이 옵니까? 불안하여 뜬 눈으로 새울 것입니다. 편히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워 자고 깨었다 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만성두통으로 시달리지 않습니다. 오늘 시편3편의 기록자의 고백은 저가 얼마나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또한 기도의 응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심과 염려로 시작되어진 1절과 2, 그러나 저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청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나니 그 마음에 조금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6절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어제 나누었습니다. 그 희박한 성공률 앞에서 대한민국을 건지기 위해 함상에서 매일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던 하나님의 사람 맥아더 장군이나,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마르틴 루터가 그 진리에 생명을 걸고 왕보다도 권력이 더 큰 천주교 교황의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종교개혁의 선두 주자로 우뚝 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전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7절에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세게 그 원수의 뺨을 후려쳤으면 입안에 이 까지 부러져 나가겠습니까? 그러기에 이어서 구원은 오직 여호화께 있다 고 찬양하며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새벽에도 의지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응답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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