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2:1-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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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께 순종하므로 승리하는 인생
어제는 시편 1편을 통해 한 사람, 즉 개인적으로 복 있는 사람의 모습에 대하여 그 지침을 제시했다면, 오늘 시편 2편은 공동체적인 복, 즉 민족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얻게 되는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2편의 저자가 누구인지 오늘 시편에는 그 저자의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이 알려주고 있어요. 사도행전 4장 25절에 그 저자가 다윗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그리고 오늘 시편 2장의 1절과 2절을 인용합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이로소이다"
“오늘 다윗이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이라고 말씀하므로 오늘 시편 2장이 다윗의 고백이라는 것을 신약성경에서 명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2편의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또 한편 오늘 2편 2절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가” 누구인지를 우리가 알게 됩니다. 시편에서는 다윗왕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이해는 다윗왕 자신과 그의 후손에서 나타날 기름부음 받을 자, 즉 메시야 이신 예수님을 미리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우리가 시편 2장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전쟁을 통해 차지한 이웃 족속의 나라와 왕들을 봅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요. 이 모습을 또 다른 모습으로 이해한다면, 이 땅에 형성된 두 개의 영적 세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째는 영적 이스라엘,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요, 또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는 반대세력인 사단의 會(회)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이 기록된 때로 보면 이스라엘 주변의 족속들이 다윗에게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승리하게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 이웃 부족 국가의 왕들이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싫은 거에요. 그러니 저들이 모사를 꾸밉니다. 그것이 1절부터 3절의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2절과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성도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자신,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서양의 ‘개인주의’가 그 대표적인 모습이죠. 개인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동양은 좀 다르지요. 국가가 튼튼해야 개인의 행복도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양은 ‘홀로서기’가 살아가는 기본자세로 여긴다면, 동양은 ‘더불어 살기’가 살아가는 기본자세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기준을 제시할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그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삶의 기본자세다 라고 여깁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교회’라고 일컫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세우신 주의 몸 된 교회,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새 생명을 입은 자들이,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사처럼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하나의 영적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 땅에서의 기본자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한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이 관계는 너무 소중해서 천국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면 안 되겠지만 같은 가족인데도 천국에서 못 볼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믿으면 그렇겠죠. 그런데 함께 신앙 생활하는 저와 여러분은, 믿음 안에 한 형제, 자매가 되었으니 저 하늘나라에까지 가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잘 하고 살아야 해요. 교회 안에서 서로 다투고 살지 마세요. 그럴리 없지요.
오늘 새벽에 일어나니 어젯밤 10시에 보내왔어요.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와 있는데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김영술집사님이 보내온 거에요. 내용이 이러합니다.
“목사님~ 드디어 마지막 8차항암 치료 마치고 오늘 퇴원했습니다^^ 길고 길었던 항암치료는 이제 끝났구요. 회복되는 동안 추적관찰이 필요하지만, 6주정도 지난 후에 PET CT를 마지막으로 모든 치료과정이 끝날 것 같습니다. 항상 기도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저도 기도하고 여러분도 기도하고 그 젊은 나이에 이 왠 날벼락인가! 정말 많이 놀랬지요. 그리고 정말 온 교우가 함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무슨 관계이기에 이렇게 관심과 사랑으로 기도했을까요? 그리고 이 소식이 이렇게 반가울까요? 예, 예수 안에 영적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족인 것이에요. 그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정말 그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적인 가족관계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오늘 시편에는 그 모습이 다윗의 나라요, 하나님의 집이요,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세력을 누르시고 이 땅에 이루신 영적 나라입니다. 열왕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력들이, 모사를 꾸미고 대적하려 하나 어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4절에 뭐라고 표현합니까?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요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로다” “어림도 없다. 아서라. 관둬라.” 그런 표현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경은 끊임없이 수도 없이 승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마치 패잔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무기력한 모습이 너무 많아요.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지 않았나요? 마가복음 9장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니 제자들이 낭패를 겪었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고자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왔는데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거에요. 그 때에 그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그 아버지가 예수님이 오시니 실의에 차서 말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막9: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 25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내게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 말라” 그랬더니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그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와 떠나갔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무엇을 말씀합니까? “기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하늘의 능력이 이 땅에 임하게 하는 통로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에 그냥 중언부언, 습관적으로, 생각없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나는 능력이 없으나 주께서 행하신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으니, 아멘!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한다!” 이 확신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인 다윗은 이 믿음, 이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승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승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으니,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셨으니, 주님의 손안에 두셔서 천국까지 보호하시며 인도하실 것이다.” 아멘~! 이 확신과 믿음 더욱 굳세야 합니다.
오늘 다윗의 노래가 바로 그것입니다. 7절,8절,9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계속해서 쓰셨겠습니까? 그의 믿음에 찬 자세, 그 확신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후손 중에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확장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치루는 전쟁마다 승리를 이끈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영웅인 맥아더 장군입니다. 북한군에 의해 남한은 부산을 빼고 모든 땅을 다 빼앗겼습니다. 유엔군이 한국을 돕기로 했고, 유엔군 사령관으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임명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이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천의 지형으로 보아 간만의 차가 심해서 상륙작전이란 5000분의 1의 확률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반드시 실패한다” 가 그 결론이었습니다. 그때에 맥아더 장군은 기도했다고 그의 자서전에 써 있습니다.
“저에게 주신 이 한국 민족을 어떻게 구할 수 있습니까? 저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함상 위의 병사들은 보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매일 같이 함상 위에서 홀로 기도하는 맥아더 장군의 기도시간이 더 한층 길어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결국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실행하였고 그리고 그 희박한 가능성을 붙잡고 마침내 성공하였습니다.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엎었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중앙청에 인공기에서 태극기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전 10시 15분에 대한민국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서울을 인수인계하였습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맥아더 장군의 ‘인계인수서’의 내용이 이러합니다.
“친애하는 이승만 대통령 각하!
하늘이 저에게 주신 수도, 서울을 내가 다시 각하에게 돌려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
1950년 9월 29일
유엔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그것은 인수인계서라기보다 기도문이었습니다. 그 인수인계서에는, 맥아더 장군의 그 굳쎈 신앙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습니다.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오늘의 당신이 있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때에 맥아더 장군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어머니의 기도와 아버지의 지성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새벽에도 기도합니다. 아버지로써 어머니로써, 성도로써, 일터의 일꾼으로써, 그리고 주의 용사로써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승리의 선포가 필요합니다. 시편 2편에서 외치는 다윗의 승리에 찬 포효가 이 새벽에 우리의 가슴에도 메아리쳐 울려야 하겠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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