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여호수아7:6-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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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두려움을 없애는 기도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 없이 전진하며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어제 말씀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살아있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여호수아의 모범을 통해, 여호수아의 승리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믿음이라고 했어요.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요점을 오늘 함께 나눕니다. 그것은 한 음성으로 따라합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난관 앞에서 그 난관을 이겨나가는 여호수아를 대합니다. 그 모습은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었어요. 10절 말씀에 보니 뭐라고 했습니까?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7:10) 여호수아가 엎드렸던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강청하며 기도했기 때문이었어요. 그 기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설명된 구절이 있어요. 6절과 7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수7:6~7)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이성을 점령하여 공격하였는데 승리가 아닌 패배를 당했습니다. 삼천명의 군사를 보내어 공격을 감행했어요. 그러나 거꾸로 예상치 못한 그들의 강한 공격에 기선을 빼앗기고 겁을 먹어 도망을 쳐야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36명이 죽었습니다.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어떻게 되었는가? 전의를 상실했어요. 성경 7장 5절 후반부에 그들의 겁먹은 심경을 표현하기를,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더라”(수7:5) 얼음덩이처럼 단단해야 할 마음이 녹고 녹아 물처럼 되었다는 것이에요.
철옹성같은 여리고성을 함락시키는 데는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약해 보이는 아이성을 점령하는 전쟁에서는 힘도 못 써보고 패배했어요. 그 결과로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사업이 잘 됐어요. 신이 났어요. 계속적으로 잘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예상치 않은 복병을 만나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종말을 알리는 어두운 먹장구름이 사업장을 덮고, 사업주와 동역자들의 마음을 엄습합니다. 불안과 우울감이 떠나지 않아요. 어디론가 멀리 도망가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에요. 가장이에요. 가정의 제사장이에요. 딸린 식구가 있습니다.
여러분, 뭐를 해야 할 때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때요, 너죽이 엎드려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미국에 윌리스 존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재소에서 일했었는데 40대에 정리해고를 당했어요. 미국 경제공황의 때였으니 너무 경제적으로 어려웠어요.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너무도 힘이 드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기도하는 신실한 부인이 그러한 남편에게 말했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 있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에요.” 평소 기도하는 부인이기에 그가 부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게 되었어요. 당시 250불을 빌려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가 지은 건물은 여관이었습니다. 호텔의 규모가 않되고 여관 수준이니 그 이름을 ‘홀리데이 인(Holiday Inn)’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건축이후로 하나님께서 계속 복을 주시게 되니, 계속해서 이 여관은 늘어갔습니다. 이 여관은 호텔의 규모로 성장해 갔습니다. 이 호텔은 오늘날에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홀리데이 인(Holiday Inn)’호텔입니다. 호텔인데도 이름은 여전히 Inn, 즉 여관이라고 붙이고 있어요. Inn이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사업주는 겸손해지는 거예요. “내가 죽을 때에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지!”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졌고, 하나님의 은혜로 운영되어진다는 겸손함이 그 이름에 배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 호텔의 창업주인 윌리스 존슨은 침례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호텔의 수익을 통해 많은 구제 활동으로 사회에 공헌했습니다. 그는 항상 고백하기를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내가 주님을 나의 영역 밖으로 내어 버린다면, 내 사업은 수개월 안에 분명코 무너지고야 말 것이다.”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연구 분야가 계속해서 잘 되어나가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가 있어요. 여호수아가 아이성 정복에서 패배하게 되니 곧 바로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에요. 철옹성같은 여리고 성도 무너뜨리도록 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어요. “육일동안 언약궤를 앞세우고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번씩 돌아라. 그때는 침묵하라.” 속으로 염원하며 기도하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을 돌며, 마지막 회 때, 제사장이 나팔을 불어 싸인을 보내면, 모든 군사들이 여리고성을 향해 큰 함성을 질러라!” 순종하며 행할 때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대승을 거두었어요.
수도 없는 경험을 통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믿었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엎드린 것입니다.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와서 기도할 때 여호수아와 같은 간절함이 있어야 해요.
6절에 보니 기도할 때 여호수아가 옷을 찢었다고 했습니다. 이 행동의 뜻은 마음을 찢는 것입니다. 큰 슬픔의 표현이요,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겸손과 진실의 표현이에요.
그 다음을 보니 여호와의 궤앞에서 땅에 엎드렸다고 했어요. 여호와의 궤 앞이란 하나님 존전에서란 뜻이에요. 이 시대에 예배당인 것입니다. 땅에 엎드렸다고 했어요.
지금은 의자에 앉아 기도하지만 저의 어릴적에만 하더라도 마루 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렸어요. 기도할때는 으레히 무릎을 꿇었어요. 지금도 기도원에는 그런 모습이 남아 있어요. 내가 죽겠다는데, 부도직전의 사업으로 인해서, 그런가하면 치명적인 질병으로, 자녀의 탈선문제로, 부부와 동기간의 깨어진 관계의 문제로, 어디에 하소연 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피멍든 가슴을 치고, 쥐어짜며....., 내가 죽게 생겼는데...., 너죽히 엎드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가장 기본요소는 하나님 앞에 ‘간절함’이에요. 짧게 기도하든 길게 기도하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우리의 ‘간절함’이 배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기는 울음으로 자신의 소원을 표출합니다. 엄마가 들어줄 때까지 울어댑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을 아십니까? 고아원의 아이들은 좀처럼 울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울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에요. 고아원에 어린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니, 여러 아이들을 돌보는 모든 일이 일괄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집니다. 또 그래야만 하겠지요. 밥 먹을 시간에 밥 먹고, 씻을 시간에 씻어야 하고, 운동시간에는 운동해야 합니다. 남들이 가만히 있는데, 내가 혼자 운다고 해서, 내게 관심을 더 가져 주는가? 원하는 바를 특별히 더 들어주는가? 그럴 수 없어요. 그러므로 처음에 고아원에 들어와서는 울어댈 수 있어요.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자동 알게 되지요. “울어도 소용이 없구나~! 땡깡을 부려도 소용이 없구나~!” 그래서 울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시니, 우리가 울 수 있어요.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때, 우리가 울 수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정 어머니처럼, 친정 아버지처럼, 우리를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어찌하든지 잘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 하나뿐인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시기 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울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을 보니 우리의 간절함이 네가지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첫째, 인내하며 기도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어떤 기도는 하루 이틀, 한달 두달이 아니에요.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응답이 더딘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아요. 왜 그렇겠습니까? 포기가 안되기 때문이지요. 포기할 만한 사안이 아니기에, 어찌하든지 견디며 인내하며 기도가 차기까지 그 응답의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간절함이 사무치면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금식이란 생명을 내어놓고 주께 간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절절한 간절함의 표현이지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어요.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58:6)
세 번째,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이를 통성기도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간절함이 우리의 음성에 배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성경에 “너희는 부르짖으라” 이 “부르짖으라” 란 말이 무려 200번 이상 등장합니다. 간절함이 사무칠 때에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슬픔으로 부르짖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이 귀가 먹었냐? 왜 이리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냐?” 자신이 그 어려운 상황에 처해 보지 않았으니 그런 소리를 해요.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수 없을 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저절로 눈물의 찬송이, 부르짖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간절함의 표현이요, 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시게 하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통성으로 부르짖는 기도!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네 번째, 간절하면 눈물로 기도합니다. 울면서 기도합니다.
성경에는 ‘눈물’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 수를 세어보니 마흔 두번 등장해요.
세상은 눈물을 싫어합니다. 부정적이죠. 왜냐하면 행복의 반대라는 개념 때문이죠. 눈물은 슬픔을 상징하고 눈물은 아픔에서 배어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눈물을 아주 싫어합니다. 상대적으로 눈물이 더 많은 여자인 아내가 눈물을 보여도 그 모습이 싫어 짜증내는 남편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눈물을 싫어하지 아니하십니다. 외면하지 아니하세요. 슬픔의 눈물, 기쁜과 감사의 눈물, 지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눈물 다 기뻐받으십니다. 그 모습은 마치 친정 어머니처럼 아버지처럼 함께 가슴아파하며, 어찌하든지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돕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눈물을 외면하지 아니하세요. 믿는 자의 눈물을 사랑하십니다.
시간상 오늘은 여기까지 합니다. 내일 새벽, 벌써 마지막인데...., 이 여호수아의 기도, 응답받는 기도! 승리하는 기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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