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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05]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
운영자 2024-02-28 추천 0 댓글 0 조회 41
[성경본문] 창세기2:16-17 개역개정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심히 좋은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산 중앙에 두 개의 특별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요 또 하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를 아담에게 소개하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마음에는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첫째, 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을까?

 

둘째, 왜 만들어 놓으시고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차라리 없으면 먹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면 인간이 죄도 범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영생을 할 수 있었으며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일도 없었을 텐데!

 

셋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는 무슨 독성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에덴동산의 모든 창조물은 선한 것인데 이 열매는 악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악한 것을 창조하셨는가?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왜 에덴동산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만드셨는지, 그리고 결국 인간이 먹도록 내버려 두셨는지 이 문제로 인하여 믿음에 실패하고 또한 이미 믿는 자 중에도 믿음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이 새벽에 이 중요하고 예민한 성경의 진리를 함께 나눌 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이 신앙의 난제가 해결이 되고 여러분들이 믿음에 한 걸음 더 나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드립니다. 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을까?

만드신 이유는 이 나무를 통해 인간을 이롭게 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에덴동산의 창조물은 악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어요. 악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결과적으로 볼 때, 그 열매를 먹고 나니 새로운 눈이 뜨여지게 되어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게 되었고, 무화과 나무 이파리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웠습니다. 가린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입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겠습니까? 그냥 안 입고 살라 그러시지....! 선악과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좋은 나무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질문을 하겠지요. 그러면 왜 그 좋은 나무의 실과를 못 먹게 하셨습니까? 만들어 놓으실 때는 언제이고 만들어 놓고 나서 왜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순종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순종합니다. 그러나 듣고 안 듣고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이를 신학적 용어로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말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 열매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사람이 먹기에는 아직 때가 안 되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먹게 하실 것이고, 사람은 더욱 지혜로워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이 열매는 아주 좋은 것이니까요.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이 탕자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이었습니까? 때가 되기 전에 아버지의 재산을 요구한 것이고, 그리고 끝까지 요청하여 자신의 부분을 가져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재산을 요구했던 것은 아버지와 결별하여 먼 나라에 가서 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이 나쁜 것입니까? 나쁜 것이 아니고, 재산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있습니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족 모두를 위해 있습니다.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변동적입니다. 지금은 아버지의 것이나 시간이 가고 아들이 장성하면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는 아버지가 배분하여 줄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그 자녀를 위해서에요.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시기 때문에 줄 것입니다. 그래야 아버지의 마음도 좋을 것이에요. 사랑하니까! 좋은 것으로 주고 싶으니까!

 

그러면 아들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어련히 알아서 주실 것을 미리 요청한 것입니다. 그 행동은 아버지를 무시한 행동입니다. 그 재산은 여전히 아버지께 속한 것이고, 때가 되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인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고, 상식적인 것이고, 윤리적인 것인데,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했는데 무시했습니다. 호적에서 지워버려야 할 나쁜 자식이 되고 말았어요. 그 결과는 허랑방탕하고 탕진하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아직 때가 아닌데...., 어련히 아버지께서 알아서 주실 것을!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이해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 선악과의 문제를 안고 많은 시간 씨름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답을 얻었을 때, 그래,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데...,잘못이 사람에게 있구나! 책임이 인간에게 있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이시구나!” 깨달음이 오면서 믿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 탕자가 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부모 된 우리는 느낄 수 있어요. 언제나 변화되어 돌아올까? 그런데 오지 않습니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100년이 가도 돌아오지 않아요. 상하고 찟기고 병들고 죽어가요.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던 또 한 아들이 나섭니다. “아버지 제가 찾아 나서겠습니다. 어찌하든지 구해오겠습니다.” 이게 누구입니까? , 그렇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천상에서 영화를 내려 놓으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도성인신하십니다. 연약하고 지치고 상할 인간의 몸을 입었습니다.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체휼하시기 위해 이름도 없이, 누우실 곳도 없는, 말 구유에서 탄생하십니다.

 

그 이후의 얘기는 여러분이 다 잘 아시지요. 생명으로 다시금 살려내시기 위해, 그 죽어가는 탕자를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하시기 위해 고초를 당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고초를 당하십니까? 그 탕자의 죄를 대신 안고, 자기 것으로 해서, 아버지의 용서함을 얻기 위하여...,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은 빛이시니까!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으로 알려주셔야 하니까! 그래야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기에....!!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해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자유입니다. 여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놓아서는 안돼요. 이 말은 제 말이 아니고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쇼핑 센타를 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기입니다. 아빠의 엄마의 곁에서 손을 잡고 다녀야 해요. 내 의지대로 나 혼자 갈래!” 자유는 있지만 그러나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잘 몰라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그러면 미아가 됩니다. 누가 유괴하여 데리고 갈 지도 모릅니다. 사단이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자유! 주님 안에서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길이 복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아니하셨어요. 자유의지를 주셨어요.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는 일은 내 자유의지로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아니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죄 씻으심을 받는 우리 모두는 이제 성숙한 모습으로 복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 주의 성령이 우리 심령 안에 내주하심으로 그리고 역사하시므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강압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모습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새벽에도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 안에 기도할 수 있도록 자원하는 마음을 주셨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의 응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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