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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06] 첫 결혼 I
운영자 2024-02-29 추천 0 댓글 0 조회 45
[성경본문] 창세기2:18-25 개역개정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첫 결혼 I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으셨습니다. 스스로 기뻐하셨고 온 만물은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을 찬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었어요.

 

사실 모든 생물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짝이 있게 만드신 것이지요. 이는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고안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생물의 세계가 암컷과 수컷으로 짝을 이룬 것이 그것이죠. 심지어는 식물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꽃도 그래서 암술과 수술이 있고 서로 접촉이 되어야 꽃이 진 후에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또다시 재생산의 생명력을 품고 있어서 땅에 떨어지면 발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제집에서 가까이 보이는 논둑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는 거예요. 재는 왜 저러지? 분명히 은행나무인데 은행이 안 열려? 은행 먹고 싶은데!” 그때에는 뭐 죄다 먹었잖아요? 까마중도 먹고, 뽀루스도 먹고, 삐래기, 찔레꽃 순까지 꺽어서 먹었으니 뭐 말 다했죠. 열매가 없으니 어린 마음에도 의아해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두 나무 다 수놈이든지 두 나무다 암놈이든지 그런 것이지요. 그걸 모르고 있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 나무 하나는 암놈, 이 나무는 수놈, 이렇게 심었는데 자라고 보니 서로 짝이 아닌거에요.

 

사실 은행나무는 어릴적 묘목을 보아서는 그게 수놈인지 암놈인지 잘 모른답니다. 커서는 알아볼 수 있어요. 수나무는 가지가 45도 각도로 구성되고 암나무는 90도로 가지가 형성되며, 암나무는 잔가지가 많고 수나무는 웃자라는 성질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지의 뻗는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구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문제는 어린 묘목을 보아서는 구분이 안가는거에요.

 

그러면 나무가 어릴 적에 왜 사람들이 암놈인지 수놈인지 모르게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드셨을까요? 요즈음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어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단풍이 들면 노오란 이파리와 많이 예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은행 열매가 떨어지면 냄새가 진동을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해요. 그래서 도시 조경 전문가들은 생각했어요. 수놈 나무만 가져다 심자. 또는 암놈 나무만 가져다 심자. 그러면 서로 수분이 안 되니까 열매가 열리지 않을 거야!

 

생각은 맞아요. 어찌보면 기발한 생각이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묘목을 선별하여 심었는데 이런! 자라고 보니 마구 열매가 떨어지는 거에요. 왜요? 어릴 적 묘목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다 자라나고서야 알게 되니 방법이 없어요. 늦가을이 되면 열매가 마구 떨어지는 거에요.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들, 열매 맺지 못하게 하자!” 이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아니시겠지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그렇게 짝을 만들어 주셨는데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요. 자신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자.....얼마나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지 몰라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뉴욕에서 이 은행나무 열매로 인한 냄새의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궁금하지요? 바로 중국인들 때문이었어요. 중국인들은 은행을 좋아해요. 몸에 좋다하여 한약재로도 쓰구요. 집에서 볶아 먹구요. 이 중국분들 또 먹는거 대단하지요? 냄새가 무슨 문제겠어요. 죄다 먹어요. 그래서 시 당국에서 떨어진 은행은 주워가도 좋다 법적으로 허락을 하니까 은행 열매가 떨어지는 족족 다 주워가는 거에요.

 

은행나무 얘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교훈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그렇게 열매 맺도록, 재생산 되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좋다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편한대로, 동성애주의자가 되고, 독신주의자가 되고...., 또한 죄 없는 짐승에게까지 못된 짓을 하여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 임신하지 못하도록 불임 주사를 맞히고 자꾸 짖으면 시끄럽다고 수술을 해서 아예 목소리를 없애는 모습은 한 마디로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창조된 짐승들의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되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이름을 짓게 하셨는데 이는 자연 세계와 인간과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저는 저의 부친께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부친은 저에게 아버지의 권한이 있습니다. 돌보는 자의 권한입니다. 보호자가 되는 것이지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아담과 짐승들과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아담에게 창조된 세계의 청지기로 보호자로 관리자로 맡기신 거예요.

 

그런데 이름을 짓다 보니 모두가 쌍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너는 사자야, 너는 호랑이야, 너는 사슴이야, 너는 여우야.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되었는데 정작 자신은 혼자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실 때에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어요. 18절 말씀이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돕는 배필이라고 했어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도움이 없으면 남자는 남자대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해요. 또한,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남자 없이 여자는 존재 목적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여자가 남자를 어느 때까지 돕는가? 돕는 사명을 다 이루는가?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낼 때까지 지켜봐 주셔야 해요. 그게 사명 다하는 것이고 그게 또 행복이에요. 남편 떠나도 아내는 잘 견디며 살아가요. 그렇죠? 그런데 아내가 먼저 가는 일도 있기는 해요. 그러면 남자가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 머지않아 몇 년이 못 되어 남편도 아내를 따라가는 모습이 왕왕 있습니다. 이렇게 남자는 약한 존재예요. 언제요? 곁에 아내가 없을 때, 돕는 배필이 없을 때, 그렇게 약한 존재인 거에요.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그러니 남편은 아내를 소중히 여겨야 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시는 과정을 보면 재미있지요? 21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왜 하필 남자의 몸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을까? 아담은 흙으로 만드셨는데 왜 여자는 남자의 몸에서 질료를 택하여 만드셨을까요? 그것은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서로 깊은 관계를 이루는 한 몸과 같은 존재인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부부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불가분리의 관계에요. 그러므로 부부는 합방을 해야 하고 분방을 하면 안돼요. 어떤 때를 제하고서는? 기도하는 기간에만 분방하라. 성경이 말씀하지요.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화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23절 말씀 읽겠습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여자라는 명칭을 누가 지었어요? 하나님이 아니고, 아담이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에요. 처음에 말씀드렸지요. 이름을 짓는 자는 보호자가 됩니다. 돌보는 자가 됩니다. 책임을 지는 자가 되는거에요. 남편이 아내를 책임지지 못하면 이미 남편이 아닌 것입니다. 남편이 그 아내와 자녀들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누가 책임지겠어요. 경제적으로, 주거적으로, 위험으로부터 추위와과 더위로부터 그러나 한 가지 더 한다면 영적으로도 책임을 져야 해요.

 

이 모습은 마치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탄생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드렸어요. 물과 피를 다 쏟으셨어요. 또한 아내는 남편을 섬기기를 교회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처럼 해야 해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신 거에요.

 

이러한 성경적 토대위에 세워진 서양문화는 굉장히 부부중심입니다. 영화만 봐도 보이지요. 상대 적이 아내를 잡고 총 내려놔! 안 그러면 네 부인 죽어!” 그러면 영화의 주인공이 어떻게 해요. 100% 다 내려놔요. ? 아내를 자기보다 더 사랑하니까! 자기는 잡혀가도 좋아!

멋있어요? 아니면 바보 같습니까?

 

그런데 이런 장면이 우리나라 영화에는 있어요? 기독교 문화가 없는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에요. 싫어해요. 재미없어요. 있으면 속으로 에고~! 어울리지 않아! 오버한다! 그래요.

왜 그래요? 아시아는 부부 중심 문화가 아니라 그래요. 가족 중심 문화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대신 이런 모습은 영화의 장면이 아니라 실제 삶속에 있어요.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아버지가 뼈 빠지게 일을 해요. 뼈가 빠지는게 뭐에요. 허리 디스크죠. 그 정도로 자녀를 위하는 일이라면 온몸 바쳐 일해요. 공부시키기 위해서 취직 잘하라고, 세상에 결혼 이후 집까지 마련해주려고 해요. .

에고~! 거기의 반만 아내를 위해서 해봐라~!” 하는 마음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아내들은 자녀 위하는 사랑의 수고를 남편을 위해서 반만 해봐라~!”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면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류의 근원과 또한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에덴동산의 삶의 법칙을 배워갑니다. 가정,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최초의 제도입니다. 우리가 귀담아듣고 지켜 나아갈 때 가정에 행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에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맘에 내주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지식은 그저 머리에서만 맴도는 지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내주하셔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도록 부부가 변하고 가정이 회복되도록 이 새벽에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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