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역대하23:12-15 개역개정
-
12. 아달랴가 백성들이 뛰며 왕을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백성에게 이르러
13. 보매 왕이 성전 문 기둥 곁에 섰고 지휘관들과 나팔수들이 왕의 곁에 모셔 서 있으며 그 땅의 모든 백성들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불며 노래하는 자들은 주악하며 찬송을 인도하는지라 이에 아달랴가 그의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4.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을 불러내어 이르되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5. 이에 무리가 그에게 길을 열어 주고 그가 왕궁 말문 어귀에 이를 때에 거기서 죽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때를 알기 위해 영적으로 민감하라
그처럼 남편 왕에게도 그리고 아들에게도 우상 신을 섬기게 하는 악한 영향력을 미쳤던 이세벨의 딸 아달랴 왕비는 아들이 통치한 지 일 년 만에 죽자 스스로가 왕좌를 차지하였습니다. 제대로 나라를 다스렸겠습니까? 나라가 도탄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여호야다 제사장이었어요.
여호야다는 기다렸습니다. 아달랴의 통치가 극에 달하고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그 여왕에게서 완전히 돌아설 때까지 6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어요. 그리하여 그의 거사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을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유지시켜 주신 다윗의 후손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일을 도모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대하는 역대하 23장의 내용은 바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중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9절, 10절, 11절을 찾아가 함께 읽겠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전 안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고 또 백성들에게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성전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곁에 서게 하고 무리가 왕자를 인도해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세워 왕으로 삼을새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이 그에게 기름을 붓고 이르기를 왕이여 만세 수를 누리소서 하니라”(대하23:9~11)
여호야다가 6년을 참고 기다린 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 중요한 때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기한과 때에 대하여 사람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기 때문이에요.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가라!’ 하면 새로운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막으시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응답이 없으면, ‘기다리라!’는 뜻으로 알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어요. 전도서는 말씀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 출때가 있다”(전3:2~4) 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때를 사람으로 알게 하시지 아니하셨어요. 미리 알면 오히려 유익이 아니라 화가 임하게 되고, 삶에 질서가 무너지게 되고, 화가 임할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그렇다면 그냥 마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될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영이 맑게 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때를 보여주십니다.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꿈으로, 그리고 때로는 현상으로, 변화되는 상황으로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주시고, 또는 아직 그때가 아니니 더욱 인내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때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을 창조하시고 택하셔서 이 땅에 생명으로 보내셨고, 예수 믿게 하셨으니,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그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을 흔들림 없이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눈물 골짜기에서도, 험산 준령을 넘을 때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며, 눈물 골짜기가 샘이 되고, 이른비가 되어, 그 손길로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마침내 시온의 높은 자리에 서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의 세월을 보낸 후, 100세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후손,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주의 종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어린 나이에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에 유다 지파의 왕좌에 올랐고, 그로부터 7년 후인 37살에 통일된 온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이렇게 긴 세월 뒤에야 응답으로 오는 것만은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향해 갈 때 앞길을 가로막은 홍해 바다는 강한 동풍이 일어 하룻밤 만에 바다가 갈라지고 맨땅으로 걸어서 홍해를 건너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룻밤이면 충분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어 오른 요단강의 흐름으로 인해 건너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으로 나아가 요단강으로 걸어들어가라!” 그때 요단강의 거센 흐름이 멈추었고, 200만 명의 모든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문제 해결에 사흘이면 충분했습니다. 급하면 급한대로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앞서 전도서의 말씀처럼 여러분 중에 누구는 작금의 상황이 너무 힘들어 하나님 앞에 울고 있는 때에 있습니까? 곧 웃을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슬픔에 잠겨 있습니까? 곧 춤을 출 때가 올 것입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6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아달랴의 악정 속에서도 요아스를 유다의 새 왕으로 옹립할 때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한순간도 그 뜻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소망 중에 그날을 바라보며 당연히 기도했겠지요. 그리고 온 백성이 그 사악한 아달랴 여왕으로부터 마음을 돌렸을 때를 하나님의 때로 알아 혁명을 일으켰어요.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여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했다면, 그 상황을 읽지도 못하고 그때를 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아 움직일 때, 패망한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놀라운 역사의 사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거칠 것이 없었어요. 하나님께서는 함께 그 거사에 동조하며 협력하고 응원하는 자들을 여호야다에게 붙이십니다. 1절과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제칠년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그들이 유다를 두루 다니며 유다 모든 고을에서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이른지라”(대하23:1~2)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주요 인물들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그의 거사 계획을 알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사는 개인 한 사람의 뜻과 권력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의를 충분히 이해하고, 생사를 함께 하기로 각오하는 영향력있는 자들과 백성과 대중이 뜻을 모을 때, 새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은 경거마동하지 않고 그렇게 6년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기에 새 역사의 물꼬를 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사의 명분과 대의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3절의 그의 선포가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가 대대로 계속될 것과 그 계통에서 메시아가 날 것이라고 하는 언약을 다윗과 세우셨다는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대의를 가지고 온 백성이 이를 위하여 함께 일어설 것을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과 사명을 이루어 갈 때,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묘수와 세상적인 방법론으로 운영할 때 잠깐은 통할지 몰라도 그러나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될 때, 대의명분이 서는 것이요, 모든 성도가 기쁨으로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악한 여왕 아달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달랴는 비참하고도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15절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에 무리가 길을 열어 주고 저가 왕궁 마문 어귀에 이를 때에 거기서 죽였더라”(대하23:15)
그처럼 권력을 잡기 위해 손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고 권력을 잡은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고 폭정을 베풀었던 아달랴는 여호와의 전에서 쫓겨나 마문 어귀에서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가던 나라가 다시금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고 악을 멸하시며 선을 높이셨습니다.
나라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마지막 두절 20절과 21절 말씀을 읽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백부장들과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 윗문으로부터 왕궁에 이르러 왕을 나라 보좌에 앉히매 그 땅의 모든 백성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칼로 죽였었더라”(대하23:20~21)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