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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강해 22]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로다
운영자 2025-09-02 추천 0 댓글 0 조회 20
[성경본문] 역대하22:1-4 개역개정

1. 예루살렘 주민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와서 진을 치던

2.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4.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로다

 

남 왕국 유다의 다섯 번째 왕 여호람이 창자에 병들어 통치한 지 8년 만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가 북 왕국 이스라엘 아합왕의 모습대로 행하였으니 산당을 세워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 앞에 아주 많이 악하였습니다.

 

이어 남왕국의 5대 왕으로 즉위한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는 일 년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죽었어요. 그는 북 왕국 장수인 예후에게 살해당합니다. 누구보다 불행한 왕이었어요. 왜 그렇게 비참했을까요? 그 답은 그의 아버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부전자전이란 말이 이럴 때 사용되겠지요. 4절 말씀이 이를 보여줍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대하22:4)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했어요.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거에요.

 

이 아하시야의 배후에는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 자가 있었어요.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바로 아달랴에요. 아달랴가 누구입니까?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 사이의 딸 아니겠습니까? 남왕국 유다 왕자였던 여호람과 결혼을 하고 선한

왕이었던 여호사밧의 며느리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남편된 여호람에게도 우상을 섬기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8년의 통치로 마감하고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의 아들 아하시야에게도 같은 안좋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었어요. 3절 말씀이 이를 나타냅니다.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대하22:3)

이런 모습을 보면 집안에 내력이 있구나!”라는 세상 말이 실감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축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많은 경우 자녀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밖에 나가 일하는 아버지보다는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는 어머니의 영향력이 더 큽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바울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했어요.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하노라(딤후 1:5).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일컫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장소였던 그 집에 당시 마가는 청년이었어요.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 그의 오빠가 바나바였습니다. 구브로 섬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온 마리아는 아들 마가를 어찌하든지 믿음으로 서게 하기 위하여 바나바에게 부탁을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떠날 때 자신의 철없는 아들 마가를 데리고 가라고 합니다. 철이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그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자고 있는 아들 마가를 깨워 얼른 가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염려가 되어서 그랬던 것이지요. 그때 자다가 일어나서 이불로 몸을 싸고 그곳에 간 마가는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대제사장의 병사에게 잡히게 되니 몸을 싸고 있던 이불을 버려두고 도망하여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마가는 외삼촌 바나바와 함께 선교여행을 가서도 중간에 돌아오게 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포기하지 아니했어요. 나중에 마가는 베드로가 전도하며 설교할 때 늘 함께 동행하며 큰 조력을 하는 헬라어 통역관이 되고, 날마다 사도 베드로로부터 듣게 된 예수님의 얘기를 기록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마가가 전한 복음, 즉 마가복음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가정교육, 어머니의 신앙교육은 단순한 지식교육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에요.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인격과 신앙과 대인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당시 북왕국 왕인 요람과 연합군을 조성하고 접경한 아람 나라에 쳐들어갑니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요람왕이 크게 다치게 되었고 아하시야는 병문안을 하러 가게 되는데 그 동맹군을 형성한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서 여호사밧 왕이 북 왕국의 아합왕을 도와 전쟁을 치르다가 가까스로 살아왔던 적이 있었어요.

 

무슨 뜻이겠어요? 악을 행하는 자와 연합하면 안됩니다. 그들을 도와서도 안 됩니다. 이 모습은 믿음의 사람들이 친구를 사귈때나 대인 관계형성을 할때 참으로 조심하고 피해야 할 모습이에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괜히 있겠습니까?

 

나아가서 나라의 외교관계에도 마찬가지겠죠. 6.25 동족상쟁의 그 큰 비극이 왜 일어났겠습니까? 김일성이 중공과 소련의 지도자들과 결탁하여 일어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얻은 것이 무엇이 있었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무수한 생명이 죽었을 뿐입니다. 동족 간에 더욱 원수지간이 되었을 뿐이에요.

 

하나님의 심판이 아하시야에게 임합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대하22:7) 해를 입게 된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어요.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이더라(대하22:7)

 

이 예후의 부하들에게 아하시야 왕이 죽습니다. 예후는 당시 북 왕국의 장수였으나 하나님께서 아합왕 가문을 심판하시는데 사용한 장수로서, 나중에 북왕국의 왕이 되고 예후 왕조를 이룹니다.

 

한편 이처럼 일년만에 아들 왕이 죽게되는 모습을 보는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어떠합니까? 깨달음도 없어요. 오히려 더 끔찍한 일을 벌입니다. 10절 내용이에요.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대하22:10) 권력이 뭔지, 권력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마력이 있어요. 함정이 있어요. 보통 주의하지 않으면 그 권력 때문에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고 맙니다. 차라리 권력을 갖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런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달랴는 자신이 직접 권세를 갖고 나라를 다스리고자 권력의 야욕에 눈이 어두워 왕의 가족들을 진멸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를 가만 놔두실까요?

 

그렇게 다윗의 후손이 죽어갈 때 하나님은 왕위를 이어갈 자를 살려내시고 보존하십니다. 일찍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하나님은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장차 그 족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대하22:11) 이렇게 살아남은 요아스가 결국 왕좌에 오르게 됩니다.

 

왕위를 찬탈하고 다윗 왕조의 왕족들을 몰살하려 했던 악한 왕녀 아달랴는 6년을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 난리 중에 왕이 될 요아스를 감추고 살려낸 그의 고모인 여호사브앗, 그의 남편인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혁명에 의해, 숨어 살았던 요아스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이 악한 여왕 아달랴는 결국 반역죄로 처형당하여 죽고 맙니다.

 

갈라디아서 67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성경의 가르침은 우주적인 진리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이지요. 결국 선이 이깁니다.

 

성경은 교훈합니다. “좋은 것으로 심어라!” “선한 것으로 심어라!”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로다!” 때로 눈물로 심을 때도 있어요. 선을 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기쁨으로 그 열매의 단을 거둘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6)

 

성도 여러분! 과거의 역사는 오늘에도 반복됩니다.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행하시므로, 복된 인생, 복된 가정, 복된 사회와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오늘도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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