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15: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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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집에 누가 거할까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찾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너무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일 년에 세 번은 의무사항이었습니다. 유월절, 초막절, 그리고 오순절입니다. 예수님도 어린 나이 때부터 성전을 찾았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나이 12살에 그의 가족과 함께 성전을 찾아 예배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국 내 이스라엘인들뿐만 아니라 먼 곳 이웃나라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도 순례자로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서 감격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절기마다 그 모이는 수가 27만 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해발 630미터의 높은 곳에 위치한 예루살렘입니다. 교통수단이 없었던 그 시대에 그 높은 곳에 세워진 성전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순례객이 드디어 먼 길을 걸어, 어떤 이들은 며칠 동안 길을 걸어 그 성전 앞에 이르렀을 때에 그 감동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웅장한 성전 문에 섰을 때에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성전 문 앞에서 서서 저들을 환영하는 자가 있습니다. 제사장이죠. 그들은 같은 유대인이면 들여보내고 이방인이면 성전 안이 아니라 이방인의 뜰에 거하도록 안내 했습니다.
그처럼 여러 날을 거쳐 성전에 도착하고 성전 문을 통해 성전 안 뜰로 들어갈 때에 감동에 젖어 하늘을 향해 하나님께 외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1절)
주의 장막은 성전이요, 주의 성산은 바로 성전이 세워진 땅,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올라가서 제단을 쌓은 모리아 산상입니다. 그 모리아 산상에 성전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거하고 싶고 그곳에 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이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명절 기간은 7일간입니다. 아쉽습니다. 명절이 끝나면 다시금 먼 길을 걸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그 곳에 더 거하고 싶은 마음, 그 아쉬운 마음을 품고 다음에 또 올 것을 마음에 다짐하며 마지막 기도를 하고 복을 기원하며 성전을 떠납니다.
우리교회 성도 중에도 주일이면 본 교회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서 예배드리고 가시는 분이 있습니다. 최근에 몇 주일 매주 올라와 예배에 참석하고 있어요. 거처가 충남 홍성이니 약100킬로 정도됩니다. 운전하고 올라올 때에 마음이 남 다를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자세나 기도할 때의 간절한 마음, 또 떠날 때에는 한 주간 삶을 위한 다짐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는 순례객들이 그 감동을 가지고 외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그 성전에 거하며 예배를 드릴 자격을 묻는 것이에요. 그때에 저들은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을 듣습니다. 물론 토라라고 하는 율법책에 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에 거하는 제사장의 입술을 통해 듣는 것입니다. 뭐라고 말씀합니까?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열 가지입니다. 외우기가 쉽습니다. 십계명도 열가지입니다. 완전수라고 하지요. 왜 열인가? 손가락이 열 개이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을 하나씩 굽혀가며 또는 주먹을 한 손가락씩 펴가며 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15편에는 열가지 중에 다섯 가지는 긍정적인 가르침으로 하라 하는 것이요, 나머지 다섯 가지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지 말라입니다. 긍정적인 것 다섯 가지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세요, 부정적인 것 다섯 가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손가락 열 개를 사용하여 암기하라는 것은 여하한 상황에서도 말씀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순례자의 마음에 깊게 새겨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주일에 예배를 드릴 때에, 주의 종을 통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이처럼 심령에 진하게 새겨져야 하겠습니다. 성전을 떠나기 전에 말씀이 계속해서 가슴에 남아 메아리쳐서, 전쟁터와 같은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죄악에 넘어지지 아니하고, 승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당시에 성경책은 짐승의 가죽에 씌어져 두루마리로 성전 안에만 있으니 순례자들은 잊혀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사장들은 말씀으로 줄때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순례자들이 더 오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신체의 부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연상하여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그 신체 부분이 발, 손, 입술, 눈, 마음이었어요.
2절을 보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첫째는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정직하게 행한다.” 그랬는데 여기에서 “행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원어의 뜻이 발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정직하게 진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공의를 실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의로워야 합니다. 불의 앞에서 비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신체의 부위로 말하면 손이 행하는 모습입니다.
셋째는 입술입니다. 진실만을 말하라고 명합니다.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는 날이 옵니다. 그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교훈은 신체부위 중 물론 입술입니다.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지켜야 할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4절에 있습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먼저는 눈이 지켜야 할 네 번째 교훈입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가 그 네 번째 조건입니다. 여기에서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을 멸시하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존대하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조건은 4절 후반부입니다.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서원기도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말 주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감동으로 임하면 이러한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장로님은 의사 분이신데 매년 6개월을 선교지에 와서 한국 코이카와 장미회에서 설립한 병원에서 무보수 봉사를 하고 들어가십니다. 젊은 날에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이지요. “주께서 저를 의사가 되게 하신다면 반드시 선교지에서 의료선교사로 어려운 자들을 돕겠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의사 둘이 개업을 하고 동업을 하면서 6개월 한국에서 그리고 6개월은 선교지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대단하죠? 사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힘과 능력과 물질과 건강을 주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보람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선교현장에 가족도, 자녀도 함께 가서, 아빠의 그 헌신적인 삶의 모습을 보니.... 성품도 반듯하게 자라서 미국의 명문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틀림 없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전에 들어갈 자, 그곳에 거할 수 있는 자의 다섯 가지, 사람과의 관계의 조건을 보겠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자, 첫째는 입술에 담을 교훈입니다. “남을 허물하지 하니하고,” 내가 잘 되기 위하여 비열하게 죄 없는 남을 내려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해야지 어리숙하다고 나 보다 부족하다고 이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회에도 있어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정치인들 중에, 단체장 중에, 상사 중에, 명문대학 출신들이죠.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속이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보다 더 적극적이죠.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 전에 거할 자격이 안됩니다. 행함이니 손과 발로 비유됩니다. 사기, 도둑질, 강도, 살인, 여기에 해당됩니다.
셋째, 이웃을 비방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남의 연약한 부분을 늘어놓기를 즐겨하고 험담하는 자입니다. 이와 같은 자 곁에 있으면 힘들지요.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와 다섯째, 5절에 있습니다. 같이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은행업을 하는 자에게는 할 말 없게 만듭니다. 이자로 먹고 사는 업이니까요.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자를 받지 않는 다는 의미는 당시에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어 생계가 어려운 자들을 말씀합니다. 전쟁터에서 또는 질병으로 남편을 잃어 홀로된 자들, 고아들, 질병으로 인해 일을 못해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자들, 나그네로 와서 아직 정착이 되지 않은 빈궁한 자들......, 그 어려운 자들을 도울 때에 이자 계산하지 말고 도우라는 것입니다. 물론 잘 돼서 원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선교사로 살면서 자녀 교육을 시키고자 하니 물질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영어를 학교 언어로 사용하다보니 한국에 와서 대학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결혼할 때에 구입한 작은 아파트를 팔아서 교육비로 썼습니다. 막내가 또 대학을 가야 하니 물질은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상황을 알고서 시골에서 농사짓는 형님이 1억원을 무이자로 빌려 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언제 원금을 상환할지는 저도 모릅니다.^^~! 달라는 말씀도 없어요. 저는 주께 기도합니다. “저에게 빌려 준 돈 빨리 달라고 하지 않도록 형에게 물질의 복을 허락해 주세요.” 돈이 떨어지지 않으면 제게 돈 달라고 요청하지 않을거 쟎아요? 내 맘만 그런가? ^^! 그래서 그렇게 기도해요. 제가 목회자인데, “제가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그래서 갚게 해 주세요” 차마 이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오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세요. 기도하며 믿고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러다가 주님, 오시면 어떻게 되는 거지요? ^^~! 예, 하늘나라에서 따따블로 저의 형은 받게 될 것이에요. 어려운 자를 도왔으니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삼심배 육십배 백배로 값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아직 형님께 이런 얘기 형님께 안드렸어요. 바라기는 믿음이 더 좋아지셔서 “그거 없던 거로 하자” 이렇게 하실 날이 올 지도 모르쟎아요.^^~!
마지막 다섯 번째로,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특별히 권력을 가진 자에게 뇌물을 전하고 또한 권력이 있는 자는 그 일로 뒤를 봐주고....., 언제고 나타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뻐보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약자는 돈없는 자는, 불공평한 대우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런 모습을 미워하십니다.
이렇게 열 가지 조건을 잘 지켜 행하는 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마지막 절 후반부에 말씀합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주의 성전에 들어가며 거하게 되니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자의 감동이 있습니까? 왜 감동이 없습니까? 그렇게 살지를 못해서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하신 열가지 조건,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지켜가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주님 앞에 예배자로 나올 때에 부끄러워요.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능히, 자연히, 주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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