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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17] 생명의 길, 충만한 기쁨
운영자 2019-09-04 추천 2 댓글 0 조회 919
[성경본문] 시편16:1-11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생명의 길, 충만한 기쁨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시편 16편은, 이 시가 어떤 시인가를 설명하면서, 다윗의 믹담 이라고 표현합니다. 믹담으로 표현되는 시는 시편에 시편16편과 그리고 56편부터 60편까지 다섯 편 해서 모두 여섯 편이 소개됩니다. 믹담 그러면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직접적인 뜻은 황금입니다. 그러니 믹담 그러면 황금처럼 귀한 교훈이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어요. 또 한가지 뜻은 의미적인 해석으로 돌에 새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교훈이란 뜻이지요. 오늘 16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1). 사울의 시기를 받아 생명의 위협 속에서 10년 이상 도망자의 삶을 살았던 다윗에게 안정된 삶은 꿈이요,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안정된 삶, 사실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안식처, 오늘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아비의 양들을 지키고 돌보았던 다윗은 야수들로부터 어린양들을 보호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성해서는 순간에 생명이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 상대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는 용사로써 살았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보호하시는 손길이 없으면 자신의 생명이 연장될 수 없다는 상황 속에서 살았으니, 그에게 있어서 평안, 안정, 이를 위한 안식처, 피난처는 늘 염원이었습니다.

 

그가 만들어 부른 하나님의 이름들에서 우리는 그의 피난처, 안식처 신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편 182절에서 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어느 이름 하나 머리에서 만들어낸 미사려구의 이름이 아닙니다. 거친 전쟁터 용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때때로 삶에 위기가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육신의 질병, 경제적 압박, 관계의 단절, 내일이 보이지 않고, 은혜는 떨어지고, 믿음도 떨어지고, 불안은 증폭되고.......,

 

그처럼 자신의 선지자 사명 잘 감당하고자, 바알을 섬기는 거짓선지자 450명과 대적하고 승리하고, 고군분투했으나 결과는 전혀 아니게, 이세벨의 생명의 위협이 닥쳐오고, 두려움으로 광야로 피신한 엘리야 선지자도 그 모습이지요. 광야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로뎀나무 아래에 누웠습니다. 로뎀나무는 겨우 한 두사람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는 작은 나무입니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합니다. 그때 저가 얼마나 힘들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왕상19:4). 쉬운 말로 이제 더 이상은 저도 못합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 주시옵소서~!” "Burn out"이라고 하지요. 소진되었습니다. 에너지가 다 떨어졌습니다. 마음도 육신도 그 생명력이 바닥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태가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닥쳐 올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세계최대의 교회를 이룬 조용기 목사님도 여의도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일이 꼬이고 자금은 충당이 안되고...., 너무 힘이 들어서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져서 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남포교회의 박영선 목사님도 너무 힘이 들어서 죽고 싶어서 수면제를 많이 먹은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죽고 싶은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딱 한번, 철이 없던 소년 시절에 죽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어머니를 여의고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된 저는 큰형님과 형수님의 돌봄 속에 크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형수님이 청계천 삼일 아파트에서 구멍가게를 했어요. 새벽에 일어나면 셔터를 올리고 가게 문을 열고 학교에서 오면 점원처럼 가게를 지키는 것이 저의 일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 둘이서 물건을 사러 들어왔는데 안쪽으로 들어와서 뭐 작은 물건을 하나 샀어요. 그리고 떠났는데..... 나중에 보니 앞쪽에 있었던 물건들이 여러 개 사라진 거에요. 한 청년이 안쪽으로 들어와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 사이....., 바깥쪽으로 있었던 또 한 청년은 몰래 물건들을 훔친 것입니다. 잡으려고 뛰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도망치고 사라지고 없었어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형수가 와서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결국 가게를 잘못 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한편, 어린 나이지만 책임감이 대단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형수가 올 때 즈음에 가게를 나섰습니다.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 내릴까 말까 한 참 고민을 했습니다. 그 날 밤 12시가 넘도록 옥상에 혼자 앉아 있다가 내려왔습니다. 나중에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물건들하고 내 목숨하고 바꾸기에는 내 목숨이 더 귀해~!” ^^! 그때의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심각했으면 지금도 제 마음에 트라우마처럼 잔영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끌어안기에 버거운 짐이 있습니다. 내 능력 밖의 것으로 인해 힘에 겨워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자신의 생명의 주, 인생의 주, 그리고 앞날의 주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주 만이, 그의 곤한 영혼과 육신의 피난처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냥 다 주께 맡긴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의 심령에 안식이 찾아옵니다. 감사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에요. 어려운 상황에 주님께 나아가는 다윗의 모습이 2절에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피난처를 찾고 하는 급박하고 어려운 때에 저가 하나님을 묵상하니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니....., 없었던 소망이 보입니다.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복이 보이는 거에요. 그 복으로 인해 자신이 살만한 힘을 얻고, 다시금 일어서는 것입니다. 어떠한 복이 생각납니까?

 

첫째, 곁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인해 소망을 갖습니다.

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땅에 있는 성도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존귀한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이들은 4절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4절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에 견고히 서 있는 자들이 곁에 있으므로 다윗이 힘이되고 거기에서 소망을 찾으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지칠 때에 교회 안에 구역 안에 직장 안에 꿋꿋이 믿음으로 지켜 행하는 자들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들을 바라볼 때에 내 자신과 비교가 됩니다.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삶의 압박 속에서 어려운 때를 기도하며 신앙으로 묵묵히 이겨나가는 모습, 그 가운데에서도 주 앞에 나와 예배하며, 미소 띤 얼굴로, 오히려 어려운 자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병으로 누워있습니다. 아내는 약하지만 그러나 엄마는 강합니다. 슬픔도 눈물도 잠시 주님 앞에 기도하니 성령이 그 맘을 두드립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다시금 일어서서 산업전선에 뛰어 듭니다. 하나님께서만이 힘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구역원이, 힘주고, 가족이, 또한 교우가 격려하고, 목사님이 기도해 주고 말씀으로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줍니다. 그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둘째,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인해 즐거워합니다.

5절과 6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5-6).

 

다윗이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래도 나에게 주신 산업이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는가? 줄로 재어준 구역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 산업, 재산, 기업, 가정, 자녀, 그 모든 것이 다 주께서 줄로 재서 나에게 맡기셨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그 모든 것이 아름답도다.” 라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하루가 힘들어도 저녁상에 가족과 자녀와 함께 앉아 밥을 먹노라면 그저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 보아도 피곤은 사라지고 다시금 힘이 납니다. 아프지 않은 것 만으로도 감사가 넘칠 때가 있어요. 하루 하루의 삶, 하나님께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그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예수께서 약속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6:26~33)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생각할 때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강과 시간과 재능과 지혜와 능력과 영권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며 주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훈계하시고 권고하십니다. 어디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일이 있기 전에 마음에 중심으로 기도하세요. 반드시 지혜를 주십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 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성령을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성경의 약속으로 주신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세요. 약속의 말씀을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솔직해라 진실해라 진실은 서로 통하게 되어있다. 오늘도 그렇게 해라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 기도하면 주시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의 말씀이죠.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7~9)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하면 일이 잘 됩니다. 결과가 좋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이 처럼 말씀으로 다가오고 지키는 자에게 은혜로 부어주십니다.

 

다윗은 1절에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어려운 때임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 11절은 이렇게 맺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기도회에 나올 때에는 언제고 가슴에 담고 있는 소원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언제나 응답으로 이루어질까? 오늘 다윗의 모습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가 나의 바위가 되시고, 산성이 되시고, 창이 되시고, 구원의 뿔이 되시고, 보호하시는 날개가 되시니......, 내가 주께 피하리로다

그럴 때에 그는 다시금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종래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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