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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19]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운영자 2019-09-06 추천 3 댓글 0 조회 1182
[성경본문] 시편18:1-19 개역개정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8.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9.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10.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11.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12.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14. 그의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그들을 깨뜨리셨도다

15.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16.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7.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18.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19.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모든 시편, 150편을 이 시대의 코드에 맞게, 노래로 만들어 부르면 참 좋겠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부족하지만 시편23편을 노래로 만들어, 지난 전교인 수련회 주제가로 우리 성도들과 함께 불렀었습니다. 괜찮았었나요? 그렇다고 답 좀 해주세요.

 

사실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로 만들어 불렀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맛이 납니다. 가슴에 더 와 닿습니다.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리고 다 함께 부를 수 있습니다. 다른 성경책들은 이해하기 위하여 머리를 총동원해야 하는데 시편은 그렇지 않아요. 시편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제18편도 그렇지 않습니까? 노래로 만들어져서 이미 우리가 친숙합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찬송으로 불렀습니다.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주는 나의 반석이 시며 나의 요새 시라/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나의 피활 바위 시요 나의 방패시라/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 찬송을 부를 때에 다가오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 다릅니다.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다 달라요. 암병에 걸려서 병원에서 또는 기도원에서 부르는 성도는 치유를 간절히 바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부를 것이고, 오랫동안 염원하던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에 부른다면 예를 들어, 승진을 했거나 진급을 했거나 논문을 패스했거나 사업에 대박을 쳤거나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면, 아주 힘차고, 기쁘게, 그 일을 도우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교회 함은정 집사님은 작곡을 전공했고, 또 이승혁 형제는 전공하고 있는데, 내가 그 정도 실력자라면 한번 시도하고 싶어요. 시편 전체를 각 장에서, 중요한 소절을 따와서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거죠.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함께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느낌이 팍 팍 오지 않겠습니까?

 

1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다윗처럼 주님을 향하여 이렇게 사랑을 고백하십니까?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직접적 표현에 많이 어색해하지요. ~! 목사님, 제 아내에게도, 제 남편에게도 그렇게 말하기 힘든데 어떻게 하나님께 그게 쉽게 나와요?” 저는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 말이 잘 안 나와요. 큰 일 났어요. 그러면 안되는데......, 글로만 써요. 결혼 전 아내에게 연애편지 꽤나 썼어요. 군에 있을 때에 한주에 한통씩 썼으니까, 많이 썼지요. 그리고 꼭 거기에다가는, 사랑해~!” 그러니까 군복무 30개월 동안 제 아내 후보자가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단일 후보였어요.

 

우리 다 같이 한 음성으로 하겠습니다.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그렇게 해 보세요.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주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래, 고맙구나~! 연정아,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 “그래 하준아, 나도 너를 사랑해~!” 우리교회 왜 그렇게 하준이라는 이름이 많은지...., 그래서 그렇게 불렀어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해 놓고서는, 또 다른 이름들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사랑의 표현입니다. 저절로 튀어나오는 거에요. 우리 민족은 정서상, 이름을 잘 안부르죠. 호칭으로 부릅니다. 여보~!” “당신~!” 여기까지는 괜챦은데, 어떤 분은 아빠 라고 부르고, 어떤 분은 철수 아빠, 영희 아빠 애 아빠이건 좀 아닌 것 같죠. 내 남편인데.... 중심이 애들에게로 갔어요.

 

서양 사람들은 참 잘해요. 성경적으로 불러요. 오늘 다윗처럼 하는거지요. “Honey~!" 또는 “Darling~!"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 허니,” “이라고 불러요. 아니면 “Tom~!" "Jenny~!" 남편과 아내의 이름을 직접 부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십시오. 그 이름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2절입니다. 다 같이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아멘~!

 

반석, 요새, 구원자, 하나님, 바위, 방패, , 산성 여덟개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그 이름들이 시인이 시에 등장시킬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들은 아닌 것 같아요. 보통 시인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래서 美辭麗句(미사려구)로 이름을 짓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하나님은 나의 태양! You are my Sunshine! 또는 나의 하늘, 나의 바다, 나의 그늘....,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피할 나의 바위, 요새, 방패, , 산성....,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 아니면 생명의 위협에서 피할 그 어느 곳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전쟁터에서 그의 생명을 지키시고, 사울의 추격에서 감추시고 지키시는 순간, 순간들을 체험할 때마다 그 이름이 하나씩 더 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머리에서 쥐어짜내어 나온 이름이 아니라 체험하는 순간, 경험하는 순간, 입술에서 튀어나온 이름인거에요.

 

다윗이 그랬다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하고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이 느끼신 하나님은 그 이름으로 부른다면 어떻게 그 이름을 짓겠습니까?

 

저는 선교현장에서 필리핀의 26년만의 대홍수에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고 살던 집의 반이 물에 잠기고, 보오트를 타고 들어가, 두 살된 아이를 구출해 오고, 네팔에서는 도망도 여러 번 다녔어요. 공산당에게서 공작금 달라고 협박당하여 숨었고, 총리실에서 복음 전파하는 학교를 운영한다고 학교로 조사 나와서 숨었습니다. 아내는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서 좁은 논두렁길로 도망치고, 또 학교를 영원히 문닫아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공산당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발 그러지 말라, “내가 이렇게 사정하니 학교 폭파 시키지 말라고 공산당원에게 빌기도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건지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면서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You are my Protector~!" “지키시는 자~!” 그 이름이 특별하지 않아요. 멋있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것이 체험에서,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이름이 되니, 그 이름을 부를 때에 감동이 오는 거에요.

 

그런가하면 간증으로 여러번 나누었어요. 공산당이 공작금을 달라고 학교로 찾아와 협박을 하고, 아이들이 어떤 길로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지, 다 알아보고, 저의 차 플레이트 번호까지 적어와서는 도와라. 협조해라.” “안 도와주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전에 안 도와준 학교 컴퓨터실 폭파 당하고, 학교 버스 전소되고...., 교장은 잡혀가서 못되게 대했는지..... 결국 달라는 돈 다 주고 풀려 나왔을 때에, 실어증으로 한 주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에, 학교는 고아들의 학교요, 늘 재정이 부족하니, 저희 아이들, 사 줄거 못 사줘도, 생활비 아껴서라도 학교 운영비로 쓰는 마당에....., 돈이 어디 있어요. 사정해도 소용없어요. 그냥 외국인은 부자로 보이는 거죠.

 

그때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지혜는...., 요즈음 세상말로, 신의 한수 . 월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돈이 없습니다.” , 월부?” 공작금 뜯어내면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공산당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자가 듣더니....,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해서 열 번으로 나누어 두 번, 한달에 한번 두 번 주고 나니까, 전세가 역전이 되어 저들이 카투만두에서 지방으로 후퇴했쟎아요. 그때에 제가 부른 하나님의 이름은 “You are my Wisdom Giver~!" “주는 내게 지혜 주시는 분!” 으로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이름이 너무 평범하고 멋도 없지만, 어려움이 닥쳐 올 때마다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You are my Protector! 주는 나와 가족과 사역을 보호하시는 분!” “You are Wisdom Giver! 주는 어떠한 환란 역경속에서도 내게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분!”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힘이 나고, 자신감이 생기고....., 견딜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와 권세를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시인은 그 경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3절부터 7절까지 읽어갑니다.

“3.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7.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하나님께서 적들을 향하여 노여워하시고 친히 대적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니 누가 감히 그 앞에 서겠습니까?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죠. 악인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됩니까? 16절로 19절까지 또 읽겠습니다.

 

“16.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

17.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18.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19.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많은 물에서 건져내시고, 강한 원수에게서 건지시고, 재앙의 날에 의지가 되시고,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기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할렐루야~!

 

구원의 노래요, 승리의 노래요. 그러니 기쁨의 노래요, 감사의 찬송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웁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보호하십니다. 승리케 하십니다.

 

그런데 어제 17장과 같은 맥락에서 배우는 영적 Lesson이 있습니다. 어떤자를 이렇게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이제 등장합니다. 20절로 24절까지 또 함께 읽겠습니다.

“20.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21.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그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나니

2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 목전에 내 손의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내 손의 깨끗함 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도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율례를 버리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다고 했으며 여호와 목전에서 내 손의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주의 보호하심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은 정말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25,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27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이렇게 살아서 그렇게 보호함을 입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나?” 의문 가지실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제물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서 다시금 부활하여 살아나신 주께서 성령으로 여러분과 제 심령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주를 의지하고 말씀을 가슴에 담고, 믿고, 기도하면, 이와 같은 의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힘과 능력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축복의 역사로 오늘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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