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시편 강해 18] 억울함을 당할 때에
운영자 2019-09-05 추천 3 댓글 0 조회 840
[성경본문] 시편17:1-15 개역개정

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억울함을 당할 때에

 

제가 자라던 시대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단체기합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학생이 잘못했는데 같이 도매금 취급을 당하여 벌 받는 일입니다. 보통 학급에서 누가 돈을 잃어버리면 선생님은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모두들 눈을 감아라.” 그러게 해 놓고서는 , 아무도 보지 않으니 돈을 가져간 사람은 솔직하게 손을 들어, 그러면 용서해 준다.”

 

그런데 아이들도 약아요. 아무도 손 안 들어요. 그러니 시간이 갑니다. 5분이 가고 10분이 가고, 20분이 가고......, 그래도 아무도 들지 않으니, 선생님이 또 말씀하지요. 이제는 좀 언성도 높아져서 약간 협박조 수준이죠. 손 안들면 오늘 집에 못 가~! 그러니 가져간 사람 한 사람 때문에 다 집에 못가는 거야~! 그러니 어서 자수해라 그래도 안 들어요. 여하튼 한 번도, 그 방법으로 정말 진범을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매번 그런 방법으로 해요. 어린나이에 제가 봐도 지혜로운 방법은 아닌 거 같았어요. 그렇다고 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그때야말로 CCTV가 있으면 돌려보면 간단하데......,

 

문제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저나 다른 학생들의 마음에는 부아가 나는 거에요. 어떤 놈이 그랬길래~! 이 아까운 시간 집에도 못가고 이렇고 있냐~!” 제가 어렸을 때에 많이 착했거든요. 더군다나 반장 했쟎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게 너무 아깝고, 그러니 부아가 나고....., 더욱이 진범도 못 잡고 그렇게 끝이 나면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투덜, 투덜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진범도 못 잡아내는 선생님까지 원망스러웠다니까요.

 

오늘 시편 17편은 부당함에 대해 속 터지는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잘못이 없어요. 정직하고 의롭다, 죄 짓지 않았다.” 그러니 시편 기자는 억울합니다. 심지어 그 일로 억울하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되니 도망자 되었어요. 어디에 하소연 할 데도 없어요. 9절부터 12절까지 다시 읽겠습니다.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돈이 있고, 빽이라도 있으면, 그 처지에서 벗어날 것 같은데,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이 그 자리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니, 그야말로 분이 일고, 억울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런데 정작 저들은 그 부당한 모습을 가지고서도 호례호식하는 자들입니다.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요즈음 정계에 일어나고 있는 권력자들의 비리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입니다. 세금으로 배를 채우고, 자녀는 부모의 권력으로 가짜 상을 받고, 재산이 많으니 가족들, 자녀들 이름으로 재산을 늘려갑니다. 없는 자가 억울하고, 머리가 그렇게 약삭빠르게 잘 돌아가지 못하고, 학벌도 약하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바보처럼 여겨지고.....,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하겠냐는 것입니다. 에이 못된 놈들, 못된 세상~!” 그저 세상 한탄만 하고, 한편으로 기죽어 지내고,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까? 아니면 혁명가처럼 반정부 단체를 만들고, 세상 뒤집어 없을 기세로, 보장도 없는데, 인생 아까운 시간 다 거기에 쏟겠습니까?

 

이 억울함에 대한 호소가 오늘 시편 17편의 주제입니다. 부조리한 세상,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한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제거하려고 하는 파렴치한 부류의 사람들이죠.

 

이와 같은 사람은 이 자리에 한 사람도 없고, 반대편에 계신 분들이 있을 수가 있겠지요. 예수 믿기 때문에, 기도하기 때문에,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을 두려워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 그 심판의 손길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이 모습이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무력한 것 같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악은 질 수 밖에 없어요. 세계 역사는 누누이 그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그랬습니다. 믿음이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비폭력무저항주의 운동, 삼일운동이었죠. 기독교인들이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제일 많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편으로는 독립 운동한다고 여기 저기 전투도 있었지만 정작 광복의 해방을 불러온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눈물로 간청하며 기도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신 것입니다.

 

청교도의 후예로 성경위에 손을 얻고 헌법을 세우고 세워진 미합중국의 개입으로,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이웃민족을 식민지로 삼고 군림하려던 일본제국, 그 영토에,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리게 하심으로 무조건적 항복을 받고 그렇게 갑자기 조국광복이 이루어졌습니다. 역사는 원래의 모습으로 제 자리를 잡고 평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시니 자연도, 정세도, 역사도 급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반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하고 거꾸로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자 그렇게 행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청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기울이소서

 

172절에는 주의 공평하심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당한 처우와 대우, 약자는 경험합니다. 몇 달 전에 우리 교회 성도에게도 있었어요. 직장에서 사무직이었는데 그 자리에 회사 주인의 친척을 불러다 앉히고는 이 권사님은 원하지도 않는데 생산직으로 옮기게 했어요. 일이 서투를 수 밖에요. 그러니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어요.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러니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니 치료받는 기간이 필요하고 그러면 그 기간 노동력이 없어지는데 그래도 월급은 줘야 하고...., 그러니 회사입장에서는 싫은 것입니다. 엉뚱하게도 불만을 품고 고의로 다친 것 아니냐? 다칠 일도 아닌데....?” 이런 엉뚱한 발상이 나오더니 해고를 시키고자 하는 거에요. ,

 

치료를 다 받고, 회복이 되어 일을 하려 갔더니, 어찌하든지 해고 시키려고, 일감을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냥 세워놓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거지요. 고의로 그렇게 했다. “그러니 너도 당해 봐라 스스로 사표를 쓰도록 조장하는데, 스스로 사표를 써야 회사 측으로써도 물질적 손해를 덜 본다는 것이에요. 문제는 그렇게 사표를 쓰면, 권사님이 보험회사에서 받아야 할 것을 못 받는 처지가 되는 거에요. 그러니 출근을 해도 하루 종일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입니까? 얼마나 힘들고 억울하겠어요.

 

저를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고....., 그래서 제가 뭐 다른 방법이 있나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 이외에, 그래서 권사님 힘 내세요. 하나님 살아계시니까...., 함께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잘못한 거 없으니까! 이 모습이 오늘 시편 기자의 모습입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 앞에 양심이 부끄럽지 않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세상 사람들처럼, 상대방이 하는 것처럼, 악한 행위로 갚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해결해 달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바램이요, 기도인 것입니다. 6절과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절에도 간청합니다. 나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성경에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호하사 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지방에 흔히 볼 수 있는 독수리의 모습에서 온 것입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두고 하늘에서 빙빙 돕니다. 먹이감을 찾는 것이지요. 그런데 독수리 새끼를 물어가려고 하는 야수들이 나타납니다. 그때에 그 먼 곳에서도 저들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 독수리의 눈이 있습니다.

 

독수리의 시력은 대단합니다. 엄청납니다. 눈 시력이 좋은 사람이 2.0입니다. 더 이상 좋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독수리는 6.0입니다. 대단하죠. 그러니 먼 곳에서도 다 볼 수 있어요. 자신의 새끼들을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쏜살같이 날아와서 적의 공격을 하고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호하신다 라는 말이 숙어처럼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호하심을 믿습니까? 그럼요. 지켜 보호하십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눈길은 악한 자들에게는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고 심판하시며, 선한자들에게는 독수리의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호하심을 믿습니다.

 

앞서 얘기 계속합니다. 결국 권사님의 그 부당함은 잘 종결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눈동자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지혜를 주시고 좋은 변호사의 도움으로 통해 보험금을 잘 받고 그 회사에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마음 편하게 주께서 주신 일을 하루, 하루, 잘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주의 보호하심과 그 날개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것은 평상시 주 앞에 의로운 모습으로 서는 것입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하고 선을 행하는 모습이 있기에 위기의 때에 기도 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주가 해결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절이 시편 기자의 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의로운 중에, 의로운 자의 모습으로, 밤이 맞도록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리고 나니....., 그 다음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깰 때에,” 즉 아침에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철야기도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아침이, 매일 아침이, 주의 자비와 긍휼 속에 기도응답의 아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일 의롭지 못한 가운데에서 문제가 터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진심으로 회개하며 주님 앞에 용서를 간구하면 됩니다. 주께서 마음을 씻어주시고 그 깨끗한 심령에 새로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시편 강해 19]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운영자 2019.09.06 3 1181
다음글 [시편 강해 17] 생명의 길, 충만한 기쁨 운영자 2019.09.04 2 919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 FAX : 02-893-6737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72
  • Total275,515
  • rss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