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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10] 전쟁이 선포되었다
운영자 2018-02-15 추천 1 댓글 0 조회 877
[성경본문] 출애굽기5:1-9 개역개정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3.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6.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출애굽기5:22-23 개역개정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출애굽기6:1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전쟁이 선포되었다

 

 드디어 전쟁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어요.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제는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고 애굽을 떠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예의 모습으로 노역으로 압제를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직접 바로왕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첫 요구사항은 히브리 민족이 광야로 사흘 길을 나가서 그곳에서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센 땅은 우상의 땅이요, 세상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유도 없이 압제와 노역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셔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질병과 칼로 치실까 두렵습니다.”(3절)

 

그러나 바로왕 입장에서 보면 이와 같은 요청은 말도 되지 않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새로이 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당시 최강국의 왕이에요. 애굽에서 이 왕은 사람이 아닌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권세는 이미 주어졌는데 그 권세를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국고성이 지어지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게 되면 결국 그 일을 못 이루게 됩니다. 그의 명예와 권세에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명분은 이러합니다. “내가 이 나라의 왕일진대 내가 알지도 못하는 너희들 신에게 왜 내가 복종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2절의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이러한 바로의 입장을 통해 우리는 이 출애굽의 사건이 단순히 바로왕과 모세의 대결이 아닌 영적 전쟁, 즉 애굽의 신적존재인 바로왕과 하나님 사이의 전쟁인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두려울 것이 없는 세상권세의 대표자인 바로왕입니다. 그는 “여호와가 도대체 누군데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느냐?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그 보다 하나님께서 훨씬 더 크고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신 분이심을 이제 하나님께서는 보이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 한번으로 보이시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둘씩, 열가지 재앙을 통해 바로왕과 애굽민족이 생각하는 신적인 존재들을 하나씩 둘씩 무력하게 만드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오, 능력자임을 드러내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능력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압제 받는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인류와 개인의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보호하십니다. 이 모든 일이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그러기에 평생에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두 번째 바로왕이 반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발전을 왜 멈추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센 땅에 세워질 많은 건물들, 국고성 건축을 비롯하여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왜 멈추겠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60만명의 이스라엘 장정들은 그 일에 아주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일도 멈추고 국가 경제 개발 계획이 차질이 올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존엄성도 없고 인권도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노예로 살아가야 할 잘못도 없습니다. 전쟁포로도 아니요, 요셉당시에 바로왕의 허락을 받고 정착했던 민족이었습니다. 저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져 두려움을 느꼈으면 떠나가기를 요청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들을 노예로 삼고 압제하고 부려먹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떠난다고 하는데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악인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에 침략을 당하고 36년간 나라의 주권을 잃고, 수 많은 노략을 당하고, 전쟁에 끌려 나가 생명을 잃고, 고난을 당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로왕이 거절합니다. 오히려 노역이 증가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일이 바쁘지 않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노역을 증가시켜서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겠다는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악한 정책입니다. 그 내용은 “흙벽돌을 만드는데 필요한 짚을 주지 말고 스스로 구하여 벽돌을 만들게 하고, 그 만들어 내야 할 수량을 줄이지도 말라”(7,8절) 고 엄하게 명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 땅에 흩어져 풀을 베어다가 짚을 대신하게 되는데 시간도 없고 지쳐서 벽돌의 수량을 맞추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벽돌 수를 세고 기장을 하는 이스라엘 기록원들이 애굽의 감독들에게 매를 맞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 기록원들이 바로왕에 나아가서 하소연합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나이까? 저희들이 매를 맞습니다.”(15절, 16절) 그러나 바로왕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 기록원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시작합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에게(모세와 아론)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만일 이러한 상황가운데 처한 모세와 아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한 일을 행합니다. 주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큰맘을 먹고 행합니다. 그런데 장벽에 부딪힙니다. 일국의 최고의 권세자 와의 대결입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일이 잘 되지 않으니 함께 하자던 동료들, 자기편에 있던 사람들까지 찾아와서 원망합니다. “어떻게 할 건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냐?”

 

 지난 2016년 청년들과 미국 비전 트립 중에 일리노이 주에 있는 링컨 기념관에 갔었습니다. 거기에는 흑인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남북전쟁을 불사하고 마침내 전쟁에 승리를 하였으나 저격을 받아 세상을 떠난 링컨 대통령에 관한 많은 자료가 있었습니다.

 

 그는 피부색깔로 인해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흑인들의 인권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지극히 성경적인 믿음을 가지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꿈에 찬 아브라함 대통령의 초기 사진이 있었습니다. 아주 당당하고 의기에 찬 모습이에요. 그런데 그 옆으로 비교되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늙어가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 길지 않은 4년이란 세월 속에 그의 얼굴이 초췌해져 갑니다. 주름이 늘어가고 거의 10년 이상 세월이 간 느낌의 사진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젊음을 잃은 모습이 되었겠습니까?

 

 그는 노예해방을 선한 의도로 시작했는데 원치 않는 남북전쟁이 발발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강한 성격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심성이 아주 착해서 짐승도 차마 죽이지 않았던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유우머가 많았던 대통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면서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밤 그 남북전쟁으로 인해 자기의 동족이 죽어가는 보고를 들으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전쟁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 상황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감내해야 할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가 전쟁으로 죽은 수 많은 북군 병사들을 묻기 위해 필라델피아의 게티스버그의 새로운 공동묘지에서 전쟁에 지치고 마음 상한 그들의 유가족들 앞에서 서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들 중에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왜 모세가 나타나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 차라리 그냥 내두지...., 왜 출애굽을 한다고 해서 이 지경으로 힘들게 만들었느냐?” 원망하는 자들도 있었을 거에요.

 

 그때에 링컨이 말문을 열고 저들을 위로하며 연설을 시작합니다.

 

 “여든 일곱 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 혹은 그같이 잉태되고 그같이 헌신된 나라들이 오래도록 버틸 수가 있는가 시험받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거대한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땅의 일부를,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이 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하거나… 봉헌 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그리고 혹은 살아남은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하였으며,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이상 보탤 수도, 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우리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의 가호 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의 연설을 통해 미국 국민은 다시금 일어나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자녀들의 헌신을 그 땅에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은 것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많은 헌신 가운데 노예해방은 시작되고 열매 맺게 되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백악관의 기도하는 대통령”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모세를 보십시오. 저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22절 23절 말씀,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6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를 행하다가 우리가 지치고 마음 상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포기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원하는 바 선을 행하고 일을 온전히 이루기까지는 여전히 힘든 일이 있겠으나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에 성령님을 통해 승리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심령에 울려 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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