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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새벽기도회1] 거룩한 분노
운영자 2018-03-26 추천 2 댓글 0 조회 919
[성경본문] 마가복음11:15-19 개역개정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목: 거룩한 분노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님은 가장 먼저 성전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으로써는 이것이 세 번째 예루살렘 성전 방문이 됩니다. 두 번의 방문을 통해 예수님은 이 성전이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셨습니다. 마음에 벼르셨을 것입니다.

 

~!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 되었구나~! 장사를 통해, 환전을 통해, 성전관리자들이, 제사장들이, 이처럼 항거도 하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구나~!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었거늘 어떻게 이렇게 돈벌이 시장으로 만들었는가!”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우셨습니다.

 

이번 예루살렘 성전 방문이 마지막 방문인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무릎 쓰고 성전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하십니다. 그 어누 누구도 감히 성전에서 행하는 일을 반대할 수 없었어요. 과거에 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던 성전이 변질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그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이 아니었어요. 이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아신 예수님이셨어요.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에 서 있는 성전, 그러나 부패로 잘못되어진 성전을 손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에서 무엇이 그렇게 잘못된 것입니까?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 성전에 내는 돈은 거룩해야 한다고 하여, 성전 안에서만 통용되는 은으로 만든 별도의 화폐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로마에서 온 사람들은 로마화폐를 성전화폐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헬라에 살던 사람은 헬라 화폐를 성전화폐로 바꾸어야 했어요. 거기에서 많은 환차 이익을 보았던 것입니다. 소위 Business 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성전에서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원하는 사람은 짐승을 끌고 왔습니다. 먼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짐승을 끌고 여행을 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짐승을 직접 끌고 올 필요 없이 돈만 가지고 오면 짐승을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처음에 이 환전소와 가축시장은 성전 밖인 감람산 지역에 있었습니다. 이 환전소와 가축시장은 산헤드린 공의회가 관할하였습니다.

 

그런데 환전소와 시장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나게 되자 대제사장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또 하나의 시장을 성전 내부에 개설하였습니다. 이방인의 뜰이 있는데 그곳을 가축 시장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말씀에 보니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니 노끈을 만들어 휘두르셨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상인들이 물건을 가지고 성전 뜰에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상상을 해 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 자리에 서 계신 예수님은 평소의 인자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십니다. 분노하시는 예수님!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데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그 성전을 보시며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리라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성정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는 기뻐하셨고, 때론 슬퍼하셨으며, 눈물을 흘리셨고, 또한 분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성경을 통해 대하는 예수님의 분노는 타당한 분노였습니다. 흔히 작고 사소한 일로 흥분하기 쉬운 우리의 감정과 달리 예수님의 분노는 타당한 것이어서 우리는 이는 거룩한 분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룩한 분노라고 말할 적에 제 마음에는 학창시절에 외웠던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변영로선생님이 쓴 논개라는 시입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립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논개의 분노를 변영로 시인은 거룩한 분노라고 표현했습니다. 논개는 조선시대의 기녀였습니다. 그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땅을 쳐들어와서 갖은 만행과 약탈을 일삼는 일본군의 수장의 술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일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습니다. 결국 논개는 결심합니다. 자신의 한 몸을 바쳐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비장한 각오로 일본의 장수에게 술시중을 들고 절벽으로 유인합니다. 그리고는 그를 안고 강으로 함께 뛰어 내립니다. 그녀가 얼마나 세게 그 일본장수를 안고 떨어졌는지 물속에서도 손에 깍지가 풀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거룩한 분노는 의기의 분노입니다. 이 분노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를 취하기 위한 분노가 아닙니다. 철저히 자신은 죽어지고 정의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분노와 상반되는 상황을 십자가의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예수님이 살고자 했다면 그는 유대인을 향하여 빌라도를 향하여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때에 예수님은 분노하지 아니했습니다. 아니 분노는 커녕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모릅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예수님은 분노하세요. 자신이 부당하게 취급당하고 죄인 아닌 죄인으로 가장 처참하고 무서운 십자가형에 처할 적에도 분노하시지 않던 예수님이, 마치 연한 순 같고 순한 양처럼 십자가로 나가신 주님이, 오늘 이 성전에서는 화를 내시고 노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노하심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인하여 분노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성전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우셨습니다(19:41). 누가복음에 보니 가까이 오사 성전을 보시고 우시며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분노와 슬픔은 성전이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갖으신 아픔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기능을 잃어버린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도 아니요, 그 성전은 더 이상 만방에 빛을 비추어 시온으로 이방인들을 인도하는 곳도 아니었어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 성전이 곧 무너지리라는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후 70년에 로마제국의 타이투스 장군과 군대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우리 주님은 이 아픈 상황 모든 죄악을 자신이 끌어안으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에서 말씀하는 이 성전은 곧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죽으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금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다시금 부활하실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이해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 성전을 헐라 그 말씀은 나를 죽여라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산다 이 말씀은 성전의 기능이 다시금 회복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성전의 기능이 회복될 것입니까? 따라서 하시겠습니다. 예수 안에서 회복된다!”

 

그렇습니다. 예수 안에서 성전의 기능이 다시금 회복이 됩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건물, 거기까지는 괜챦아요. 그런데 인간의 욕심을 수행하는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대신 영원히 거룩한 성전, 영원히 파괴되지 않을 성전, 더 이상의 탐심과 이윤을 취하고자 하는 강도의 굴혈이 아닌 기도하는 성전, 응답을 받는 성전, 기쁨과 감사가 회복이 되는 성전, 바로 이와 같은 성전은 오직 우리 주님 밖에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과거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짐승제사를 드리므로 죄를 용서함 받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헐었습니다. 그러나 짐승은 짐승일 뿐이에요. 사람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고 그 짐승을 죽이고 피를 뿌리므로 용서함 받는다고 하지만 짐승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짐승이 또한 죄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로 인해 타락했을 때에 모든 피조물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죄 없는 그 누군가가 이제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 제물로 드려져야 만 했습니다. 이 일에 바로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흠도 없고 죄도 없는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희생은 단번에 드려졌으며, 그리고 용서함의 효과는 영원하며, 그 범위는 모든 인류였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성전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용서함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예루살렘 성전에 갈 일이 없습니다. 그 성전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드려야 제물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드렸던 제사를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다 합니다.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성전이신 이 예수님 안에서 죄 사함을 얻습니다.

성전이신 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에서 복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성전 되신 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 생명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이 살아계신 성전을 통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져 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교회라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20-21절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아멘-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행하신 성전청결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교훈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을 닮기를 원하는 우리는 분노할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부정과 부패와 악을 도모하고 일삼는 패역한 이 세대를 보면서, 위정자들을 보면서, Mee too 운동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갑질을 하는 저 파렴치한 죄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거룩을 상실한 이 땅의 잘못된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분노는 예수님의 마음과 같이 아픔과 눈물이 가슴을 채우는 분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 인류의 죄악을 온 몸에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이 백성의 죄악을, 내 민족의 죄악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분노하며 아파하며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벽에도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 조국인 대한민국을 위하여 그리고 이 땅의 교회들이 거룩을 회복할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과 내 가정을 위하여 거룩이 회복될 수 있도록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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