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열왕기하13:14-25 개역개정
-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15.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20.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22.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 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약속과 사람의 믿음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가 십칠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모습이 아니었음을 어제 새벽에 함께 나누었습니다. 여로보함의 죄를 버리지 못했다고 했어요. 즉 자신의 정치적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우민정책을 쓴 것이죠. 황금송아지를 없애지 않고 백성들이 그 우상을 섬기게 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가다보면 백성들이 마음을 유다에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모든 것을 개혁하고도, 새롭게 하고도, 마지막 한 가지, 정말 중요한 것을 개혁하지 않았던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전한 개혁을 포기했던 열한명의 왕들, 그러기에 북왕국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건질 수 없는 깊은 해저로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종말이 가까워옵니다. 때마다 나라를 살렸던 주군, 주의 종, 엘리사의 임종이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거에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기왕 믿기로 하였으면,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개혁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남겨 놓지 말아야 해요. 구습들, 욕심, 권모술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내 힘으로 안되지요.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검으로 끊어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호아하스를 이어 그의 아들인 요아스가 왕이 되어 십육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도 마찬가지로 여로보함의 죄를 끊어내지 못했다고 했어요. 이러고 보면 참 권력은 무서운 것입니다. 마치 늪과 같아서 거기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북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왕이 같은 모습이니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나도 그 자리에 가면, 권력의 자리에 서면, 그럴지도 몰라~!” 제가 가 보지를 않았으니 큰 소리 칠 수가 없어요. 주의 종이 그와 같은 자리에 갈 일도 없겠지만요.
우리가 정말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성령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어요. 그러므로 이 새벽에도 기도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이름과 같이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 매일 그래야 해요. 감사하게도 우리가 드리는 이 새벽기도시간은 내 더러운 심령을 깨끗이 씻어내는 시간, 날마다 새사람으로 입는 귀한 시간이 됨을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복 받으신 분이세요.
그런데 요아스 왕이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어요.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간 것입니다. 너무 늦긴 했지만 그게 어디입니까? 엘리사의 임종이 다가올 때에 그를 찾아간 것입니다. 왜 찾아갔겠습니까? 자신이 평안하면,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으면, 찾아가지 않았을 거에요. 나라가 어렵습니다. 이미 아버지 때에 아람으로부터 침공을 받고 나라는 기울어져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등 따숩고 배부르면 그래서 아쉬움이 없으면 천하태평이 됩니다. 주님을 찾지 않아요.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알지 않습니까?
선교지에서 자란 아이들을 미국으로 대학을 보내놓고 나니 보고 싶지 않아요? 너무 먼 나라에 있으니 항공료도 비싸요. 그러니 방학에도 못 와요. 참 마음이 짠하지요. 그러니 더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모만 보고 싶은가 봐요. 인터넷 폰으로 전화를 하면 정말 싸거든요. 전화를 안 해요. 제가 해도 잘 안 받아요. 받으면 ‘용건만 간단히’ 에요. 공부하느라 알바하느라 바쁘다는 거죠. 그런데 어쩌다 한번 전화가 오면 내용은 간단해요. 너무 반가워 받아보면 “아빠, 돈 떨어졌는데요~!” 지가 아쉬우면 전화해요. 그러니 목소리라도 듣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요? 돈 안보내면 되요.
우리가 우리 영혼의 주가 되시고 육신의 창조주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그러면 안되는데, 그러나 기도하고자, 이른 새벽에, 여전히 피로가 다 가시지 않았음에도 일어나서, 그 발걸음을 교회로 향하고, 주님 전에 나와 고개를 숙일 때...., 그 모습을 하늘에서 보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실까요? 다 주고 싶어 하십니다. 독생자 아들까지 아낌없이 제물로 주신 하나님 아니시겠습니까?
더욱이 어떤 예기치 않은 일로 너무나 인생이 너무나 힘들어요. 마음도 아프고 육신도 아파요. 너무 무거워요. 그 무게로 인해 주님 앞에 눈물을 흘릴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바라보시고, 안아주시고, 위로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기도 응답의 역사가 기도하시는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아스가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요아스가 엘리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뭐라고 합니까? 14절에 보니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사실, 엘리야나 엘리사나 이스라엘을 살린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요아스가 아버지라 부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웬만한 군사 만 명, 아니 십만 명보다 더 큰 힘으로 적군을 물리쳤던 능력의 종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힘주셔서 그랬습니다마는.....,
임종이 코 앞에 있지만 엘리사가 힘을 냅니다. 저 같으면 이리 하겠나 생각해 봅니다. “야, 이놈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가지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정신 차려라!” 그랬을 것 같은데 엘리사가 그러지 않아요. 임종이 다가오니 무슨 기운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울며 간청하는 왕을 바라보는 엘리사는 목자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갖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도 저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아니겠습니까?
이 모습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오늘날 주의 종들이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 텐데 제 자신도 그래야 하는데, 이 목자의 영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많이 부족한 자신을 봅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
엘리사가 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게 합니다. 동쪽의 창을 열게 하고 활로 그 창밖으로 쏘게 합니다. 자신은 죽음이 다가오니 힘이 없어요. 그저 자신의 손을 그 왕의 손위에 올려 놓을 뿐입니다. 동편을 향해 활을 쏘았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7절에 보니 구원의 화살이라고 했어요. 동편에 있는 아람군대를 물리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화살로 땅을 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화살을 들은 요아스왕이 화살로 땅을 세 번만 칩니다. 엘리사는 왕에게 기대하기를 강한 믿음으로 적어도 대 여섯번을 치리라 생각했는데 세 번으로 그치고 마니 엘리사가 실망하며 노하였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더 많이 쳐야 멸절시키는데, 완전히 이기는데 세 번만 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임종 전까지 마지막 사명을 감당한 엘리사는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안겼습니다. 그야말로 선한 싸움을 다 싸웠으니 의의 면류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끝까지 쓰임 받다가 주님이 품에 안겼으면 좋겠습니다. 병석에서 너무 오래 있다가 가지 않고, 주님 부르시기 전까지 건강한 몸으로 주신 사명 다 마치고, 그 날의 할 일을 마치고 잠자는 중에 하늘나라 가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러시기를 축복합니다.
엘리사는 죽어서도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 마을에서는 장례가 진행 중인데 갑자기 도적이 출현하니 놀래서 도망을 치는 마을 사람들이 그 시신을 어디에 둬야 하나 생각하다, 급한 마음에 가까이 있는 엘리사의 묘실에 넣어두고 도망하게 되었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게 되자 곧 회생하여 다시금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죠.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요. 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은 인생, 100프로 소비된 인생, 하나님께서는 저가 죽어서도, 이와 같은 기적을 베푸시므로, 저가 그처럼 쓰임 받았던 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세인들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엘리사 제사장을 찾아와 눈물로 간청했던 요아스는 아람군대와 전쟁을 치룹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승리죠. 이미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것입니다. 함께 25절 마지막 절을 합독합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흉을 베푸신 것입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오래 참으시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뭘 보고 그렇게 긍휼을 베푸십니까?
그 내용이 23절에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돌보셨다고 말씀합니다.
약속으로 말씀하신 바를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오늘도 이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계셔서 말씀을 통해 약속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7천 여개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 약속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으로 주신 그 말씀이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를 살릴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 때문에 야곱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들의 후손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때때로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이 부족한데도 늘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늘 좋은 것으로 주시는 구나~! 뿐만 아니라 제 형제, 자매도 마찬가지에요.
무슨 이유 때문일까? 생각하다 보면 결론이 그렇게 나옵니다. “그렇구나! 어머니의 기도구나~!” 소천하시기 전까지 기도의 줄을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 기도가 오늘 나를 살리고 있구나~! 열 한 살 막내아들을 이 땅에 떼어 놓고 떠나실 때에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니 또 얼마나 하나님께 눈물로 간청하셨을까?
우리가 이 새벽에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의 삶에, 그리고 가정과 자녀들에게도, 은혜로 긍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