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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01] 오늘을 위한 그 때의 啓示[계시]
운영자 2019-04-30 추천 1 댓글 0 조회 965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1-8 개역개정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늘을 위한 그 때의 啓示(계시)

 

오늘부터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함께 읽어나갑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의 맨 마지막 성경책이지요. 그래서 다 읽고 나면 누구에게나 더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다른 성경책과 달리 상징적인 숫자가 등장하고 또 짐승들의 형상이 자주 등장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경우 아예 읽지를 않고 덮어두거나, 또는 아예 혼자서는 읽지 못하게 하는 목사님도 계세요. 읽는 중, 엉뚱하게 이해를 해서, 잘못된 신앙을 가질까 염려해서 그런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 요한계시록 서두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읽으라는 것입니다. 읽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때가 가까움이라 그랬어요. 그러니 때가 되기 전에 이 내용을 미리 알고 있어야 그 때에 가서 승리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란 언제일까요? 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림으로 저는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의 원리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아주 오래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의 모세오경은 대략 주전1,500년에 기록되었고 마지막책인 말라기는 주전 약 400년에 기록되었어요. 그리고 신약의 완성은 주후 50년경에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 일어났던 역사의 기록과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이 신기하게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에요. 저의 자녀들도, 나중에 손들도 똑같이 이 기원전 1,500년에 기록된 창세기의 말씀이, 진리로 알게 될 것이고, 또 믿게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생명의 말씀, 바로 성경입니다. 믿습니까?

 

, 이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대해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기준을 말씀드렸어요. 13절에 때가 가까움이라 그러니 이 계시록에 주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러셨는데......, 그 때는 언제일까요? 세 가지 시점, 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어났던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고, 그리고 장차 일어날 어떠한 특별한 상황을 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과거의 때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기록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남은 임무를 말씀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뒤,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소아시아와 로마에까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사회는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어요. 로마제국은 로마 제국 변방에 있었던 팔레스틴 지방에 예수라는 인물을, 그저 뭔가 크게 잘못하여, 범죄자로 십자가의 처형을 받은 한 사람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로마제국은 영적으로, 문화적으로 로마 이전 제국이었던 그리스의 정신세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제우스나 아폴로나 포세이돈이나 아프로디테와 같은 저들이 믿고 있는 올림푸스의 12신을 믿었어요.

 

거기에다가 더 추가하여 로마의 황제들은 죽은 후에 신()으로 선포되었습니다. 황제는 죽은 후에 로마 제국을 지키는 수호신들의 목록에 추가되었고, 시민들은 신전에서 죽은 황제의 이름으로 향불을 피우며 제국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황제 숭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황제숭배를 통해 시민의 통일성과 충성심을 굳게 다지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황제의 상 앞에서 향불을 피우는 것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이는 과거 일제의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그러니 당시에 이를 거절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반역내지는 불충애국심이 부족한 사람들로 비난받고, 결국 핍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이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살아있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 제일 나이가 어린 제자였어요. 그러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성화에 보면 수염이 아직 안 난 청년,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나중에 에베소에 정착해서 연로할 때까지 목회를 했습니다. 네로 황제의 끔찍한 기독교 박해가 지나고 이어 도미티안이라는 황제에 의해서 집중적으로 기독교인 핍박이 올 때에 이 핍박이 로마에서뿐만 아니라 에베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로마당국은 기독교 지도자인 사도요한을 결박했으나 두려웠는지, 죽이지는 못하고, 더 이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도록 바위투성이의 섬인, 밧모라고 불리우는 섬에 유배시켰습니다. 그때에 사도요한의 나이가 95세였습니다.

 

그 섬에서 사도요한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주님 뵈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연로한 고령의 사도를 바로 데려가지 아니하시고, 마지막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은 이제 머지않아 임하게 될 로마제국의 핍박, 특별히 기독교인이 많이 살고 있는 소아시아 지방, 오늘날, 터키입니다. 그곳에 일곱 개의 교회가 있었어요. 그곳에 신앙생활하며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미리 알려주어야 할 내용으로 서신을 쓰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서신의 주제는 명료합니다. 이제 머지않아 불같은 핍박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잃지 마라. 믿음을 지키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큰 주제입니다. 한 번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하겠습니다.이제 머지않아 불같은 핍박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잃지 마라. 믿음을 지키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주시는데 방법이 독특합니다. 아주 실감나게 눈에 보이도록, 그림으로, 환상으로, 말씀에 보니, 1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啓示’(계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성경에는 黙示’(묵시) 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원어로는 아포카립쉬스 라고 하는데 그 뜻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 보인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림처럼 실감나게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이를 쉽게 생각하면 진짜와 같은 환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시대의 족장들인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또는 모세나 여호수아나 선지자들은 주로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요. 그러나 때로 환상도 보았습니다. 에스겔은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살이 붙고 힘줄이 생기고 살아나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았고, 다니엘이 또한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못살게 구는 주변 나라들, 앗시리아와 바벨론과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그 키가 장대한 거인으로 표현되었는데, 뜨인돌, 즉 살아있는 돌, 산돌 아니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시죠. 그 돌이 날아와서 그 거인을 때려 부숩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다는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요한에게 장차 이루어질 일을 정말 실감나게,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총천연색 컬러로, 뿐만 아니라 입체적으로 오늘날 언어로 3D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마음에 각인이 되도록, 그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광대하신 영광을 보여주시고, 악한 사단 마귀의 세력을 옭아매고 무저갱에 가두시는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느끼고 기록하라고 하신 것이에요.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그 눈으로 본 것을, 정작 사도요한은 실감나게 보았으나,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다 실감나게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글로 표현하는 것의 한계이기도 하겠지요. 사도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 표현이 참으로 난해 합니다. 13절이하 16절까지 그 묘사한 것을 보십시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대단한 위엄의 모습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온다는 이 표현을 우리시대에 어떻게 이해되겠습니까? 너무 끔찍해 보이는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나 당시의 문화적 코드를 읽을 수 있으면 이해가 되겠지요. 히브리서 412절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고 예리하여......” 그러니 예수님의 입에서 검이 나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선포하시니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러한 환상으로 보았으니 그 실감이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온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글로 적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읽으라고 주신 성경책 아니겠습니까? 그 환상의 주제를 알면 우리가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 없으셨나요? 꿈을 꾸실 때에 말입니다. 정말 생시로 착각하고, 그 꿈속에서 울고, 웃고, 한숨쉬고, 다시 살아나고, 쫓기고, 도망가고, 온 몸이 실제로 땀으로 젖을 때도 있습니다. 깨고 나서도 너무 확실해서 잊혀지지 않는 그런 꿈이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제 구원에 대한 확신이 희미했습니다. 그것이 불안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구원받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며칠 고민 중에 꿈을 꾸었습니다.

 

저의 고향바다였습니다. 절벽 아래에 바다인데 마침 썰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벽아래 해변에 내려가서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용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하는 용을 보고자 그렇게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물이 사람들이 허리에 차오르기 시작할 때에 저 바다 깊은 곳에서 정말 용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아니고 커다란 용이 하나는 검은색, 또 하는 청록색깔의 용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공포의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이 두 마리의 용이 사람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밀물이 다 차고 들어와서 사람키가 넘게 되니 뛰어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세요.” 헤엄을 치며 도망하며 외칠 때에 제 앞에 거북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물위에 떠서 자기들끼리 서로 붙어서 그 등으로 도망갈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섯 마리 이상씩 붙어있으니 제가 그 위를 밟고 육지 쪽으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해변에 무사히 다다르게 되었고, 이제는 절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온 몸에 땀이 흘렀습니다. 가까스로 올라가서 보니 그곳에는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들은 그 바다에 용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저희 시골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저도 그 옆에 서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꿈이 깨었습니다. ~! 꿈이었구나~! 꿈이었어~!” 제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에 확신이 왔습니다. 그래 나는 구원받았구나~! 그래, 나는 구원받았어~!”

 

사도요한은 정말 실감나게, 미래의 커튼을 젖히시고 보여주시는 장차 될 일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글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우리의 시점에서 보면 2천년 전 과거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줄 것입니까? 이제 우리가 새벽기도회 말씀강해를 통해서 함께 깨닫고 은혜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한 말씀으로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 까지 하시고 마음이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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