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1:15-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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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일곱째 나팔소리와 마지막 날의 모습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는데 사도 요한이 들은 처음 소리의 내용이 이러합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세상나라가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고 찬송하는 소리입니다. 언제 이렇게 되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세상 끝 날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 정부들이 아닌 주께서 친히 세세토록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나라가 될 것이에요.
그러니 일곱째 나팔소리가 난 후에 되어 질 일은....., 우리 인류역사의 어떤 과거의 한때의 모습도 아니고, 현재 21세기 초, 이 세상도 이 아닌, 이 세상 마지막 날, 미래에 이루어질 新天地, 즉 새 하늘 새 땅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신천지는 오늘 말씀에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The Kingdom of God, 즉 '하나님의 나라' 라고 표현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에 이 하나님이 나라는 있습니까?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요?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짧게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2천 년 전 죄 많은 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친히 강림하셨을 때에, 이미 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미미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어요. 마굿간에서 한 아기, 예수께서 태어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나라의 출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 나라” 는 다른 말로 ‘天國’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를 시작하실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땅에 천국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로마 법정에 고발하면서 한 죄목으로 삼았습니다. 시민선동죄였어요. 다른 말로 국가반란죄입니다. 엄연히 이 세상에는 로마제국이 존재하고 있는데, 국민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대치되는 또 다른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것 아니냐?
성도 여러분, 이 하나님의 나라는 현 세상의 국가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나라가 나라 되기 위하여 세 가지 필수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영토입니다. 땅이 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영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물론 저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는 없는 것입니까? 아니요.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곳은 바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신 마음들이 그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 안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그리고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영토가 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 마음에 좌정하셔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토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하심을 따르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천국백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이 땅에 완전히 임하게 되는 날이 있으니 바로 주께서 다시금 재림하시는 날인 것입니다.
둘째, 나라가 나라 되기 위해서 국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의 국민은 누구일까요? 예,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셋째, 나라가 나라되기 위하여 주권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는 왕국의 주권은 왕에게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심령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신도, 재능도,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니 주께서 쓰십니다. 쓰시고자 하실 때에 우리는 기꺼이 내어 드려야 합니다. 은사도 물질도 힘도....., 하나님께서 창고의 문을 열라 하실 때에 열어드려야 합니다. “창고 안에 있는 쌀이 한 부분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러시면 종 된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창고의 키를 감추고 나만의 것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주께서 “열어봐라” 그러시는데 싫어합니다. “이거는 제 것입니다.” 고집합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도 주께서 주시고, 돈 버는 재능도 주께서 주시고, 사랑하는 자녀도 주께서 주시고, 먹을 수 있는 입맛도 주께서 주셔서, 우리 삶에 행복을 주시는 분이 주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 것을 주님의 것이라 생각하여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실 때에 드리시면....., 주께서 기뻐하시고, 더 많은 것을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셔서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나라 얘기가 길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점차적으로 자라나더니,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나더니 오늘 1절의 말씀처럼 되었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언제 그렇다는 것입니까?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에!
그 나라, 신천지! 새 하늘 새 땅!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배하는 나라입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십사 장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숫자 그대로 스물 네 명의 장로만 하나님을 찬양할까요? 아니죠. 그렇게 규모가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스물넷이라는 숫자는 모든 성도들의 상징하는 숫자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왜 굳이 스물넷으로 표현하였는가?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두지파로 나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로, 또한 그의 후손들로 이루어졌어요.
그런가 하면 신약시대에는 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모으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고 따르는 백성들이 그렇게 열두제자를 부르시면서 출발된 것입니다. 그러니 12지파 더하기 12제자해서 이십사로 표현되었으니 하늘나라 보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실제적인 숫자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요한 계시록 5장 11절에 근거하면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했습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것이에요.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도 주를 찬양합니다. 영적 창조물인 천사들이 함께 찬양하고 또한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그러니 그 예배의 모습은 정말 대단할 것입니다.
그 대단한 찬송 소리를 사도요한이 듣습니다. 그러므로 그 한 구절을 성경에 기록하였습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요한계시록 4장에도 하늘보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모습이 소개되었어요. 그때에도 같은 내용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4장 8절의 내용이 이러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두 구절을 비교하여 어떤 점이 다른가요?
4장 4절은 “장차 오실 이시라” 그랬는데 11장에 와서는 오실 분이 아니라 이미 다시금 세상에 강림하셔서 새 하늘 새 땅에서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하시는 주님”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도요한은 자신이 살고 있었던 주후 1세기, 성도들이 고난당하는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장차 이 땅에 재림하셔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까지 미리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계시록입니다.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힘내라! 견뎌라! 인내하라! 이겨내라!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금 소망 중에 일어나라고, 밝은 미래가 준비되어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 너무 가라앉지 말라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이처럼 세상 주관자가 되셔서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전진해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때가 되면, 이 땅의 종말이 되면 되어질 일이 있습니다. 18절의 말씀입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방들이 분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거절하며 살아온 그들은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땅에 내릴 주의 분노는 일곱 재앙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계15~16장)
그런데 말씀에 보니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가 고백하지요.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에 오실때에 하실 일입니다.
이 땅에서 이미 죽은 자들,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죽은 자들이 그대로 무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무덤에서 부활합니다. 믿고 나서 죽은 자들도 부활하고 믿지 않고 죽은 자도 부활합니다. 이미 하늘에 올라간 영과 이 땅에 흙이 된 몸이 연합하여 신령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런 모습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굴을 서로 맞대고 볼 것입니다. 알아 볼 것입니다. 저는 제가 그처럼 사랑하는 어머니, 제가 어릴적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볼 것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부활하였으나 심판을 받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이 있는 지옥으로 들어가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죽은 자들의 심판이요, 신학적 용어로 ‘제2의 사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소망이 있습니다. 사망도 두렵지 않습니다.
작금의 고통이 아무리 심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 판을 치고 사는 모습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복음으로 전하여 저들도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일에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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