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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2] 복 있는 사람
운영자 2019-07-24 추천 5 댓글 0 조회 881
[성경본문] 시편1:1-6 개역개정

1. 제일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 있는 사람

 

히브리인들은 인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를 로 표현했습니다. 그 모습이 오늘 시편1편에도 나타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여기에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 는 표현은 () 된 인생을 살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인생은 길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최희준씨가 불렀던 노래 중에 하숙생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첫 소절이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미국의 국민시인이었던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이라는 시에서 그 첫 소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개의 인생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하는 우리네 제한된 인생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성경에 이 많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479절에, 야곱이 바로왕 앞에서 자신의 지나간 인생을 언급하며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나그네 세월의 길이 일백 삼십 년 이외다 그런가 하면 주의 시편 119105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여기에서도 내 길이란 곧 내 인생에 그런 뜻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인생여정을 인도하는 빛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우리 인생여정이 길 되신 예수님을 따르면 마침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 본문은 두 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는 복 있는 자이 길이요, 또 하나는 멸망당하는 자의 길입니다. 복 있는 자의 길은 의인들의 길이요, 이 길은 6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을 걷는 자는 망한다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복 있는 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겠습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많이 소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땀 흘리며 은행의 발란스를 높이려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인 신분의 상승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타이틀이 행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 같은 경우는 어떤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개 무명의 선교사 라는 타이틀에서 이제는 한 교회, 그것도 중형교회 담임목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는데, 사회적인 명망으로 보면 담임목사가 더 높으니 더 행복한가? 저는 경험해 보니 그렇지 않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교사는 더 고생하지만 일의 보람이라고 하는 면에서 많이 행복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행복하게 살면 덩달아 같이 행복합니다. 선교사는 선교사로써의 행복이 있고 담임목회자는 담임목회자만이 갖는 행복이 있습니다. 둘 다 주님의 일이니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100명의 재벌들과 100명의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행복하십니까?” 그랬더니 87명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 내가 갖고 싶으면 가지면, 누리고 싶은 것 누려보면, 행복할 것 같은데......!” 잠깐 동안은 그러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장난감도 시간이 지나면 싫증을 내서 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시골에서 막대기가 장난감인 어린아이나 도시에서 로봇 장난감을 가진 아이나 행복지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에맄 프롬이라는 철학자는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라는 책을 통해 행복은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있지 않고, 내 자신이 어떤 존재로 서느냐 가 더 행복을 준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오늘 시편1편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됨됨이로 인해 이미 행복자의 인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됨됨이는 소극적으로는 아니한다 로 표현했습니다. 적극적으로는 이렇게 한다 로 표현했어요. 무엇을 아니합니까?

 

첫째,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권모술수를 행하지 않는다. 그 말씀이죠.

 

둘째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삶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하늘 찬송을 부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복 있는 자이기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이란 원어에 보니, 보편적으로 복이라고 할 때에 사용하는 바라크가 아니라 아솨르 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은총,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애써서 갖는 그런 복이 아니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복 주시고, 동행하는 삶으로 사니 그 자체가 너무 좋은 것입니다.

 

셋째, 오만한 자들이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그랬습니다. 오만한 자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 계신 창조주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인정하지 않으니 교만하고, 거만합니다. 자주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쉬운 말로 내가 누군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상석을 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 합니다. 그런데 복 있는 자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나 보다 훨씬 더 크고 광대하신 분이 계시니 항상 코람데오의 신앙, 늘 하나님의 면전에서 서 있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됨됨이로 말미암아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시편의 복은 내가 쫓아가서 가지려고 노력하므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됨됨이로 인하여 복이 나를 쫓아오는 것입니다. 따라 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저도 이와 같은 복 있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임금이 한 마을을 시찰하다가 사거리에 큰 바위 하나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구경을 합니다. 임금님은 세 부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녀석이 길거리에 이런 큰 돌맹이를 갖다 놓았냐고 투털거리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지나갔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 큰 돌맹이를 보더니 피해 갔습니다. “왜 이게 여기 있지? 방해 되겠네. 누가 그랬어?” 생각을 하고는 그냥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농부가 수레를 끌고 지나가게 되었는데 사거리에 놓은 큰 돌을 보더니, 수레를 세우고 힘을 다해서, 수레를 끌던 소와 함께 그 큰 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옮기로 보니 그 큰 돌 아래 작은 구덩이에 한 자루가 있는데 이런 글귀가 써져 있습니다. 이 돌을 옮기는 자에게 이 자루를 드립니다.” 그 자루 안에는 금은보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교훈이 담겨 있습니까? 복 이란 것은 어떻게 누구에게 찾아오는가? 복을 받을 만한 심성과 그 심성에 의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복 있는 자가 됩니다.

 

이제 복 있는 자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겠습니다. 소극적인 모습은 하지 않는다였다면 적극적인 모습은 행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어떤가요? 2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율법을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늘 그 율법을 묵상한다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율법이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공자(孔子)가 논어의 이인편 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침에 ()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여기에서 란 길 자를 사용하는데, 이는 곧 眞理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께서 진리십니다. 그러니 참 진리 되신 예수님,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는 자는 자유함을 입습니다. 죄악의 굴레로부터 자유함을 입습니다. 죽음에서도 자유함을 입습니다. 천국사람이기 때문이죠. 세상의 권모술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쫓아온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부터 자유함을 입습니다. 어떻게 그 마음에 참 진리, 말씀이 예수님이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묵상한다 라는 말의 원뜻은 히브리 표현으로는 사자 울음소리라고도 표현합니다. “으르렁 으르렁하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문화로 표현하면 중얼 중얼하는 소리를 나타냅니다. 제가 어렸을때에도 그랬어요.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누르 황, 집 우 집 주....” 천자문을 깨우치기 위해 입으로 암송했습니다. 눈으로 보는 거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며 마음에 담은 것 하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리를 내어 읽음이 더 좋습니다. 가슴, 심비에 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 진리되신 예수님을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복 있는 자요, 그와 같은 자의 삶은 저절로 잘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은 삶이라고 아름다운 시적표현을 썼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보시면 금방 압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남부 지방은 척박합니다. 강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푸르고 우거진 곳이 있어요. 바로 시내가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시내를 따라서 푸르른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어요.

 

영국에는 테임즈 강이 있습니다. 그 강변에서 수확되는 포도는 최상품입니다. 맛이 좋고 향과 당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농학자들이 그 이유를 밝혀 냈습니다. 포도나무의 뿌리들이 길게 뻗어 테임즈 강 바닥에까지 다달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가뭄이 없어요. 퇴적된 자양분을 충분히 먹어요. 그러니 언제고 최상품의 열매가 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은 마치 시냇가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은 형통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형통함~! 너무 좋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시냇가는 무엇을 비유하는 것일까요?

,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시냇가에 흐르는 생명수!

예수님께서 인생에 실패하여 지치고 상하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었으리라 (4:10) 그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 같이 그 배에서 생수가 강 같이 흘러나리라 (7:37~3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시냇가에 심기워진 포도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셔서 그 곳에 심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구원받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시내가 되시고 생명수로 공급하시니 가뭄과 같은 시련이 와도 전혀 끄떡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불황, 불경기, 여러 어려움, 그러나 그 뿌리가 생명수 되신 주님에게까지 연결된 성도는 이겨나가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이 복된 정체성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할 때에 이 확신과 믿음이 우리의 영혼, 심령에 가득이 차서, 승리로운 삶으로 복된 이 날이 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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