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6:1-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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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역경 가운데 드리는 기도
역경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적게 배운 사람도, 많이 가진 사람도, 적게 가진 사람도, 권세가 없는 사람도, 권세를 가진 사람도 역경을 맞이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시편 6편은 역경 가운데 드리는 기도입니다. 저자는 다윗입니다. 음조로 말하면 화려한 바이올린 소리가 아니요, 무거운 저음의 첼로소리입니다. 밝은 장조가 아니라 슬픔이 배인 단조의 노래입니다. 이 모습을 시편 편집자는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스미닛)라고 표기했습니다. 이러한 여덟째 줄은 가장 낮고 무거운 음을 내는 G 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슬픔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의 성군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임에도 불구하고 큰 역경의 밤이 있습니다. 깊은 슬픔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그랬습니다. 잠 들을 수가 없습니다. 뜬눈일 뿐만 아니라 눈물이 침상을 적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외부적인 이유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여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눈앞이 캄캄하다” 라는 우리의 표현처럼 다윗도 고백하기를 “내 눈이 근심으로 인해 쇠하여 지고 어두워졌다” 고 표현했습니다.
다윗에게 적이란 목동의 시절에는 아비의 양을 칠 때에 어린양을 물어가는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이었습니다. 청년의 시절에는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는 사울왕이었습니다. 왕이 자신을 죽이고자 추적을 하게 되니 얼마나 정신적 압박이 있었을까요? 그와 같은 날이 10년이었습니다. 그의 노년의 때는 왕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아들들과 이에 합세하는 자신의 신하들의 반란이었습니다. 저가 차마 아들과 전쟁을 하기가 수치스러우니 백성들과 함께 광야로 피난을 갔었습니다.
제가 네팔에서 카투만두 한인교회를 담임목사로 섬길 때에 한 낮에 무심코 예배당 문을 열을 때에 혼자 그 어두운 예배당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한 선교사 사모의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저에게 먼저 얘기하지 않으니 저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채 뒤에서 기도로 도울 뿐이었습니다. 추측컨대 부부관계의 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별거생활이 길었거든요.
단기적으로 어려움이 왔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긴 시간을 두고 해결이 안 되는 역경의 때도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대로 육신은 수척해지며 영혼이 떨립니다.
저의 인생에 있어서는 청소년 시기가 그러했습니다. 어머니를 제 나이 열 살에 여의고 서울로 전학 와서 큰형님과 형수님 밑에서 성장하게 되니 처음에는 철이 없어 몰랐습니다. 나이가 먹어가며 성장할수록 어머니를 여윈 슬픔이 깊어 갔습니다. 이불속에 머리를 묻고 눈물을 흘렸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본디 밝은 성격이었는데 말없는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런 날이 7년이었습니다.
아무도 원치 않습니다. 생업의 현장에서, 사업이 가라앉고, 도산과 부도, 실직, 금전적 사기, 상관, 또는 동료와의 관계로 인한 갈등, 가정에서, 부부간의 관계의 악화, 자녀가 믿음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장애 있는 자녀를 출산할 때, 나이를 먹어도 독립하지 못하는 자녀를 볼 때, 재산분배로 인한 동기간에 갈등, 자녀들의 분쟁, 예고 없이 찾아온 질병과 사고....., 아무도 원치 않지만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책임이 있습니다. 사업주로서, 가장으로서, 어머니로써.....,
이와 같은 모습만 보면 인생은 정말 쓸 ‘苦’ 바다 ‘海’ 불교에서 말하는 ‘苦海’라고 하는 표현이 맞습니다. 불교에서는 ‘꺼르머’ 라고 하는 ‘업보’ 라는 말로 해석을 합니다. ‘인과응보,’ “전생에 산 그 어떤 모습의 결과로 이생이 이처럼 어렵다” 고 하는 숙명론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어쩌랴! 어차피 인생은 고해다” 하는 슬픔과 체념이 그 정신 기조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겨 내려하기 보다는 산스크리트 어로 ‘마야’ 라고 하는 것이죠. “인생은 일장춘몽, 한 봄밤의 꿈과도 같은 것이라, 실체가 아니니, 고통도, 기쁨도, 실제가 아니니, 너무 억매이거나 슬퍼하지 말라” 고 가르칩니다. 심리학적 접근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따르는 기독교의 진리는 소망을 놓지 않습니다. “회복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기쁨의 날이 온다”라고 믿음과 소망으로 전진해 갑니다.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의 생사화복이란 다스리는 자의 손길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 만물이 창조주가 계시고, 그 전지전능하신 분이 내 영혼의 창조주가 되시고, 분명한 목적이 있어, 이 땅에 나를 보내셨으니, “환란도 역경도 그 분의 손안에 있다. 불같은 환란 뒤에는 내가 정금같은 모습으로 나오리라” 하는 믿음과 소망이 우리 삶의 에너지가 됩니다.
이 하나님의 손길을 다윗이 알아요. 그러니 고백합니다. 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인간의 생사화복이 전능하신 주의 손길에 달려 있다고 하는 신전의식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요. 이 모습은 마치 어린 아가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에 엄마가 화를 내니 도망가는 모습이 아니라 울면서도 엄마의 품을 파고 들어가는 아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나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다시금 안아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죠. 소망 때문이죠.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요. 회개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예, 바로, 그의 독생자 되신 성자 예수님께서 그 고난 멸시천대 십자가를 지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우리의 죄를 다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금 안으시고 회복시키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결코 낙망에 자리에 주저앉거나, 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시인인 푸쉬킨이 쓴 시 중에 이와 같은 기독교의 소망신앙이 담겨져 있는 시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적 이발소에서 거울 위에 걸린 시를 읽으면서 평생 가슴에 담고 삽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쉬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고/ 지난 것은 다시 그리워지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다윗의 고백으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영적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슬픔의 노래를 부를지라도, 끝까지 좌절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두려움이란 늘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고난이 지속되면 그러지 못할까봐 그것이 염려가 됩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무슨 말씀입니까?
사망, 그리고 스올, 같은 맥락에서 해석됩니다. 음부이고 지옥입니다. 그러한 지독한 환란과 역경이 지속된다면 그 모습은 사망이요, 지옥인데,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내가 어떻게 주를 찬미하겠습니까? 이 말의 의미는 이러한 것입니다.
“나는 주의 종입니다. 평생에 주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니 내가 늘 주를 찬송하며 살아야 할 존재인데, 어느 한 순간도 주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싶습니다. 그러니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제는 이 환란에서 건져내주셔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그러니 주께 외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3,4)
다윗이 이러한 믿음으로 간청과 눈물로 간구할 때에 그의 마음에는 확신이 섭니다. 저가 하나님께서 그의 울음을 들으셨다고 확신 속에 고백합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어셨도다”
우리의 기도의 모습입니다. 아직 상황이 100프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9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기도는 이러한 Process, 단계를 거칩니다. 환란과 역격이 닥쳐 올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절망에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러니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어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기도하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성령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시고 역사하시면 환란도 역경도 문제도 해결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은 시편 6편에서 인생의 환란과 역경의 날에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몸은 수척해지고, 뼈가 떨리고,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적시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낙망하지 않았어요.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역전시키며 회복시키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게 되니 기도응답의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이러한 처지에 있을 때에 이 시인과 같이 소망을 놓치 마시고 기도로 승리해 나아가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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