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8: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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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 인간, 자연
시편 8편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기로 한다면 굉장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크고도, 깊고도, 넓은, 창공이 담긴 광대한 하늘을 그리게 될 것이고, 그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과, 보석처럼 반짝이며,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별들을 그릴 것입니다. 또한 그 하늘 아래로 지평선이 보이는 끝이 없이 넓고 푸르른 초장을 그릴 것이며, 그 초장 위에는 평화롭게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양과 들짐승들의 목가적인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지저귀는 새들과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아래로 내려가면 오색찬란한 산호초와 그 사이를 오고가는 아름다운 물고기들과 무수한 바닷 속 세계의 생물들을 그릴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림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움직임은 영상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가 지면 산과 들에는 어둠이 이웃처럼 찾아들고, 그러면 모든 자연 만물은 내일을 위해 안식을 취하며 깊은 잠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동녘에 해가 떠오르고, 온 산과 들이 햇살에 물들기 시작 할 때면, 자연도 동물도 그리고 사람들도 기지개를 피고 깨어나, 각 자에게 주어진 또 한 하루의 삶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 모든 자연만물이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어느 예술가도 이처럼 구석, 구석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자연세계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그리거나 또는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그것을 보고 느끼고 그리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손길!” 이처럼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를 보면서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저 자연을 묵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아아~!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작은 미물인 인간을 생각하고 자신을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무엇이관대 하나님은 그 가운데 나를 한 소중한 존재로 세우셨는가?” 소중한 존재를 넘어서서 그 자연만물의 주인공처럼 세우시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돌보게 하십니다. 그러니 또 고백합니다. 4절과 5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며, 변해가는 계절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이슬과 눈을 보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들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과, 시절을 쫓아 맺히는 수 많은 과일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쁜 삶, 무한경쟁, 세파에 시달려 지친 마음은 자연이 주는, 우리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멧세지를 듣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때 묻지 않은 자연 앞에 서면 마음도 정화됩니다. 순수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명산을 찾고, 계곡을 찾고, 그 길을 걷습니다. 걸으며 찬송합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이 자연의 모습은 마치 어린 아기의 순수함과 일맥상통합니다. 거기에 가식과 외식과 감춤과 인위적인 모습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 모습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요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이 시편 8편의 저자인 다윗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 그를 쫓고 해치려 하는 사울왕과 그의 병사들이겠지만, 예수님에게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아이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환호하는 어린아이들을 잠잠케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늘 시편 8편의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1장 16절입니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어린아이보다도 못합니다. 외식과 가식 권력과 명예로 순수함의 능력을 잃어버린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2절에 근거하면 저들은 “원수들과 보복자”들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그 완악함을 이기는 자가 어린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봅니다. 그것을 왜곡하거나 삐뚤게 보지 않습니다.
미국에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부부에게는 자녀로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가 병으로 위급하게 되고 급하게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피가 부족했어요. 작은 시골 마을 병원이라 급하게 피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니,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의 어린 여동생의 피가 같은 형이에요. 상황이 급하니 엄마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 딸아, 오빠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피가 필요해. 그런데 너의 피가 오빠 피하고 같아서......, 네가 허락을 하면 네 피를 썼으면 하는데 괜챦겠니?”
엄마는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얘기했습니다.
엄마의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던, 이 어린 여동생이 주저, 주저하더니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피를 주면, 오빠가 살을 수 있어?” 엄마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이 어린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침대에 뉘여졌고 헌혈을 했습니다.
감사하게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침대에 누워있는 딸에게 왔습니다. 엄마가 말했습니다.
“네 덕분에 오빠가 살아났어, 고마워, 오빠도 많이 고마워 할 거야.”
그랬더니 이 어린이가 엄마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언제 죽어?”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피를 주었으니까....., 이제 나는 죽는 거쟎아~!”
그 말을 듣는 엄마와 곁에 서 있는 아빠가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면 너는, 피를 주면 너는 죽는 건줄 알았어? 그런데도 피를 준다고 한거야?”
“응!” 이 딸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오빠를 많이 사랑하잖아, 그리고 나도 오빠를 많이 사랑하니까!”
그 딸아이의 말을 듣는 엄마는 딸아이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엄마의 눈에도 아빠의 눈에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시편 8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가식이 필요 없습니다. 솔직한 그 모습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에, 기도할 때에,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시는 말씀과 우리의 기도로 때묻은 마음을 씻어내야 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깨끗게 하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이 새벽기도회가 귀한 것입니다. 어제 혹 남에게 잘못한 일이나 또한 세상에 휩쓸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모습들이 있으면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무슨 말씀입니까? 심령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 말씀의 뜻은 우리의 심령이 깨끗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뜻대로 행하면 형통함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자연 우주 삼라만상의 아름다운 모습과 한치의 착오도 없이 운행하는 그 조화를 바라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의 손길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연보다 더 귀히 여기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인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피조물의 세계를 주시고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고, 관계가 더 친밀하고 깊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을 여시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그리고 아뢰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가장 선하신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만유의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개인의 심령에 주로,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주님과 더불어 승리하시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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