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시편12: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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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7.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8.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교활한 말들
옛 속담에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알고, 사람은 그 언행을 보면 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과 행실이 사람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라는 말도 있어요. 언제든지 말은 정직하게 해야 한다 라는 교훈이죠. 말과 연관하여 이런 격언도 있습니다. “남아 일언 중천금이라.” 남자의 한마디 말은 천근의 금처럼 중요하다는 말로서 한마디 말에 신중을 기하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말을 함부로 할 때에 쓰는 한자성어로는 일구이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석하면 “한입으로 두말한다” 라는 말인데 말을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과 연관하여 안 좋은 모습은 감언이설(甘言利說)이라는 성어가 있는데 이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달콤한 말과 이로운 말로 남을 꾀는 것을 말합니다.
말의 중요성은 성경에도 많이 언급합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민30:2) 잠언에 말과 연관하여 귀한 교훈을 줍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잠4:24)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잠10:19-21)
신약성경에서는 야고보서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야3:2)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야3:6)
오늘 시편 12편은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에 슬퍼하는 시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끊임없는 자기자랑과 아첨과 거짓말과 중상모략을 하는 악한 자들과 그 모습에 어려움과 압제를 겪는 선량하고 순수한 자들을 비교하며 아픔을 토설하고 있습니다.
시편 12편 위의 타이틀이 있습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여덟째 줄은 수금에서 가장 낮은 소리를 내는 줄입니다. 슬픔을 표현하는 저음입니다. 다윗이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구이언”하는 자들, “감언이설”로 순진한 자들을 꾀고 “허위약속”을 해서 자신에게 충성하게 해서 하고, 자신들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못된 인간들,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해서 말을 막 바꾸는 못된 인간들을 보면서, 심히 마음이 상하고,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할 데 없으니, 억울하고 힘이 드니,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 당한 적 없으십니까? 다른 사람의 거짓말 때문에, 지키지 않는 약속 때문에 겪은 아픔과 상처가 없습니까? 왜 없겠어요! 저는 몇 번 당하고 나서는 이제는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말은, 사람의 약속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한번 속고, 두 번까지는 속아도, 세 번째는 속지 않습니다. 당하지 않아요. “차라리 말을 하지나 말지~! 약속을 하지 말지~!” 그와 같은 사람을 향해서는 신뢰가 깨어집니다. 더 이상의 존경심도 없어요. “신뢰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 으로 솎아내고, 그리고 때로 그를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그와 같은 경험이 있은 후에, 늘 제 마음에 되 내입니다. “너는 한 입으로 두 말하지 마라” “말을 하기까지는 세 번 생각하고 말하라. 그리고 한 말은 반드시 지켜라”
오늘 성경본분 1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과 2절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시편 기자가 이 아픔을 토해낼 때에 그 배경은 이러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왕인 사울 왕과 그 곁에 있는 신하들입니다. 힘이 있어요. 권력이 있어요. 힘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그 맛을 알고 나니......,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유지하기를 원하는 것이, 연약하고도 악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문제는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 약한 자들을 압제하는 것이에요. 아첨과 거짓말 중상모략으로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픔을 당하는 것은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자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양을 치는 목동 출신 아니겠습니까? 속임이 없는 솔직한 땅을 일구고 경작을 하고 열매를 얻는 농부와 다를 바가 없지요. 소와 양들이 뭘 속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솔직한 땅과 양이 대상이 아닌, 자신의 야망과 권력과 성공을 위해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삼은 정치와 권력의 자리에 있는 자들과는 멘탈리티가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자신의 동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아주 철저하게 믿었지요.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 장군에 대해 왜 다윗이 분노했습니까? 그의 외침에서 나오지요. 사무엘상 17장 26절에 다윗이 외칩니다.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다윗은 자신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요, 민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들도 자신과 같으리라는 생각에서였어요. 하나님은 목자가 되시고 자신은 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적으로 목자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 장군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 막상 나라를 다스리는 관리들, 왕, 그의 신하들 속에 들어가 보게 되니, 아닌 거에요. 거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행하는 아첨과 거짓말과 중상모략과 심지어는 죄없는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울왕의 모습과 신하들을 보면서 오늘의 시로 그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중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니이다” 왜 없어졌겠습니까? 사울왕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그렇게 고용했습니다. 정직하지 못하더라고 아첨하는 이들에게는 상을 주고, 반대로 하나님께 충성되고 정직하더라도 다윗의 편이라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니 다윗에 대해 고자질한 도액은 상을 주고, 도망하는 다윗을 도와준 선한 제사장 팔십오명을 다 죽였습니다. 공포정치죠. 여기에 두려움을 가진 신하들이 왕의 비위를 맞추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게 되니 잘못된 정치를 하고 순진하고 죄 없는 사울왕의 군사들은 그를 호위하다가 전쟁터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29:25)
필리핀에서 사역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자훈련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형제들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산속 길로 10킬로를 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움푹 파인 길에 화산재가 쌓여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만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되니 오토바이는 그 자리에 서고, 저의 몸은 앞쪽으로 붕 날라서 떨어지게 되었는데......, 제 몸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낙법을 잘 했는지...., 많이 다치지를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이지요.
그 날 이후로 몸이 불편하니 새벽기도회 안나가고 집에서 쉬다가 한 주간이 지났어요. 몸이 다 나았어요. 그런데 그 다음 주부터 다시 새벽기도회에 나가야 하는데 꾀가 난거죠. 그래서 한 주간 더 쉬게 되었는데, 소리야 라고 하는 형제가 제자훈련 받는 형제 중 하나인데 바른 소리를 잘 해요. 형제들 앞에서 저에게 그러는거에요.
“새벽에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쳐서, 우리는 농사지면서도 새벽기도회 열심히 하는데, 왜 선교사님은 새벽기도 안합니까?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형제들 앞에서 제 얼굴이 빨개졌지요. 그래서 한편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말이 맞다.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구나!” 다시금 새벽기도회가 시작되고 제자훈련이 이어졌습니다.
이 형제가 지금도 저와 연락하고 그저께도 메신저로 연락이 오고 사역보고를 해 오고 저는 또한 기도하고 물질로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축복하셨어요. 언제 다시금 필리핀에 가면 사역을 지속할 주의 귀한 일꾼입니다. 저가 그 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그 형제라서 검정고시 보라고 격려하고 도왔는데 합격하고 대학교 졸업하고 아이타 부족에서는 유일하게 대학원까지 졸업을 하고 지금은 아이타 부족의 대표역할로 힘 있게 사역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그 형제의 직언이 충언이 잠자던 저의 영성을 깨운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오늘 다윗은 이와 같이 믿을 수 없는 세상의 권력자들, 거짓말과 아첨과 중상모략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권력을 유지하는 자들과 비교하여, 전혀 다르신 분, 일구이언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소망이 없으나 그러나 나에게 소망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멘입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해서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순도 100프로의 은입니다. 순결하니 불순물이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너무 믿다가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대신 일점일획 한 점의 오차도 없이 가장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약속의 말씀에 마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을 높이십니다. 사람 앞에서 우쭐하고 자랑하려 하는 자들을 보실 때에, 그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서 보시면 얼마나 우스우시겠어요. 그 재능으로 인해, 지혜로 인해 높은 곳에 세우셨다면,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높여야 하겠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께서 원하시는 공의를 행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잊어요.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자의 혀를 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그리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횡포에 눌린 자들을 구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의인을 도우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보호하십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유익과 성공을 위해 그처럼 선량하고 약한 위치에 있는 자들을 이용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꿋꿋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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